본문 바로가기
  • 일본 북알프스
백대명산 산행기/중복

남한산성('09.7.18) 인기 백대명산 제95위

by 산사랑 1 2009. 7. 19.
반응형

 

【남한산성 산행 2009. 7. 18일 토요일】인기 백대명산 제95위(산림청 미선정)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都城)을 지키던 남부의 산성으로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 암문(暗門)·우물·보(堡)·누(壘) 등의 방어 시설과 관해(官해), 군사 훈련 시설 등이 있다.


이 산성의 주변 지역에는 백제(百濟) 초기의 유적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일찍부터 온조왕대(溫祚王代)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13년(673)에 한산주(漢山州)에 주장성 (晝長城, 일명 일장성(日長城))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로서 현재 남한산성이 위치한 곳이라고 믿어져 내려온다. 고려시대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으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에 일장산성(日長山城)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둘레가 3,993보이고, 성내에는 군자고(軍資庫)가 있고, 우물이 7개인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또한 성내에 논과 밭이 124결(結)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현재의 모습으로 대대적인 개수를 본 것은 후금(後金)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李适)의 난을 겪고 난 1624년(인조(仁祖)2)이다. 인조는 총융사(摠戎使) 이서(李曙)에게 축성할 것을 명하여, 2년 뒤에 둘레 6,297보·여장(女墻) 1,897개·옹성(甕城) 3개·성랑(城廊) 115개·문 4개·암문 16개·우물 80개·샘 45개 등을 만들고 광주읍의 치소(治所)를 산성 내로 옮겼다. 이때의 공사에는 각성(覺性)을 도총섭(都摠攝)으로 삼아 팔도의 승군을 사역하였으며, 보호를 위하여 장경사(長慶寺)를 비롯한 7개의 사찰이 새로 건립되었으나, 장경사만이 현존한다. 그 뒤 순조(純祖) 때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설이 정비되어, 우리 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을 완비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처음 축성의 목적을 대변해 주듯이 유사시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이 73칸 반의 규모이고, 하궐(下闕)이 154칸이나 되었다.


1798년(정조(正祖)22) 한남루(漢南樓)를 세우고 1624년에 세운 객관(客館)인 인화관(人和館)을 1829년(순조(純祖) 29)에 수리하였다. 관해(官해)로는 좌승당(左勝堂)·일장각(日長閣)·수어청(守禦廳)·제승헌(制勝軒)을 비롯하여, 비장청(碑將廳), 교련관청(敎鍊官廳)·기패관청(旗牌官廳) 등의 군사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종각(鐘閣)·마구(馬廐)·뇌옥(牢獄)·온조왕묘(溫祚王廟)·성황단(城隍壇)·여단(여壇) 등이 이루어졌고, 승도청(僧徒廳)을 두어 승군을 총괄하였다. 남한산성의 수어(守禦)는 처음에 총융청(摠戎廳)이 맡았다가 성이 완성되면서 수어청(守禦廳)이 따로 설치되었다.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수어사인 이시백(李時白)은 서성을, 총융대장(摠戎大將) 이서(李曙)는 북성, 호위대장(扈衛大將) 구굉(具宏)은 남성, 도감대장(都監大將) 신경진(申景縝)은 동성 망월대, 원두표(元斗杓)는 북문을 지켰다. 그러나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수항단(三田渡受降檀)으로 나가 항복하였으나, 그 뒤 계속적인 수축을 하여 경영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동문에서 북문 가는 길의 성곽...

 

▶09:55산행 시작(약 4시간 산행)

금일산행은 전날 야근으로 건강셀프등산회에서 추진한 부산 무박산행을 가지 못함에 따라 혼자 남한산성 일주를 하였다. 남한산성일주는 ‘07. 4. 23 처음 남한산성유원지입구에서 - 남문 - 서문 - 북문 - 동문 - 남문일주를 한 후 간혹 시간이 나면 혼자서 일주를 하곤 한다. 남한산성은 한강과 더불어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으며, 조선 왕조대는 선조부터 순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로 비록 인조 당시 병자호란의 치욕을 간직하고 있지만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항전 전적지로 최고 수준에 달한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지로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산림욕, 가을단풍, 겨울 설경을 자랑하며, 특히 사시사찰 푸른 소나무의 멋진 자태는 서울 인근에서 최고라 할 만하다. 금일은 남한산성유원지입구에서 - 남문 - 동문 - 북문 - 서문 - 남문 - 남한산성유원지입구의 원점산행을 하기로 하고 남한산성유원지 입구에는 09.55분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다.

 

• 남한산성유원지(09: 55) - 남문(10:25분)(들머리에서 30분)

전날 폭우가 솟아져 산행하는 사람이 다른 때보다는 적어 한결 여유있는 산행이 기대되었으며, 계속되는 장마의 영향으로 계곡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 물이 많이 흐르고 있었다. 남문 가는 길에는 탑 공원, 통일기원 탑, 소망 탑 등 돌탑이 있으며,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습기가 많았으나 계곡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으로 그리 덥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으며 약 30분이 지나 조선시대 임금의 출입문인 남문에 도착하였다.

 

 들머리 초입의 계곡...

 

 남문의 모습...

 

 남문의 모습(동문 가는 길에서...)


• 남문(10:25) - 동문(11:00분)(남문에서 35분)

남문에서 동문까지는 약 1.7km로 여기에는 옹성이 3개가 있으며 남문에서 약 10분쯤 가면 제1옹성이 나오는데 이곳은 현재 보수하는 중이었다.  ‘07년도 남한산성 일주시 느꼈던 사항으로 당시에도 이 구간은 성벽이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으며 아직까지 보수가 되지 않고 있었으며 폭우의 영향으로 산길은 곳곳이 패여 있었고 제3 남옹성을 복원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띠었다. 하루빨리 보수가 되어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동문은 남문에서 약 35분이 소요된 11:00에 도착하였다.

 

《옹성》

옹성은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경사가 완만한 지역의 성문 밖에 또 한 겹의 성벽을 둘러쌓은 이중 성벽으로 총 5개(동문, 북문 각1개, 남문 3개)가 있다. 

 

 제2 남옹성...

 

복원중인 제3남옹성...

 

동문의 모습(북문가는 길에서...)

 

• 동문(11:00) - 북문(11:57분)(동문에서 57분)

동문에서 북문까지는 거리가 가장 길며 다소 가팔랐으며 도중에 송암정, 장경사 신지옹성, 동장대지터, 돌탑 및 작은 군포지터 등이 있으며 송암정은 동문에서 약 6분 거리에 있다

 

송암정 있는 곳...


《송암정》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 하산하여 이곳을 지나는 도중 기생2명과 함께 술을 마시던 유생이 황진이를 희롱하려 하자 황진이가 심명한 불도를 설법하므로 이에 감명 받은 기생 하나가 자괴하여 투신자살한 지역임.


장경사 신지옹성은 동문에서 0.8km 거리에 있으며 동문에서 약 23분이 지나 도착하였으며 이곳에서 0.35km만 가면 남한산성의 5대 수어청 중에 하나인 동장대지가 있었다는 표식이 있으며 잠시 후 동장대 암문이 나오며 북문에는 동문에서 57분이 소요된 11:57분에 도착하였다.(예전에 북문에서 동문까지 53분이 소요된 것과 비교해 볼 때 동문에서 북문으로 가는 길이 더 가팔라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됨을 알 수 있었다.)    

 

 

장경사 신지옹성....

 

 동장대 암문...

 

북문의 모습...


 

• 북문(11:58) - 서문(12:28분)(북문에서 30분)

북문에는 이번 폭우로 산성이 일부 무너져 보수중이며 약 300m 가면 북장대지 푯말이 있는데 여기서 잠시 요기를 하기 위하여 쉬었으며, 부산 금정산의 무박산행(서울에서 6명이 내려가고 부산에서 1명이 합류) 중인 일행에게 전화를 하니 금정산 등산 후 현재 해운대로 이동중이며 금정산은 안개가 많이 끼어 있었으나 지금은 해가 나서 쾌청하다고 하였다(원래는 함께 산행을 해야 되는데 하지 못해 아쉬움이 약간 남았다.) 약 15분간 요기 및 휴식을 하고 서문으로 출발하여 서문에는 북문에서 30분이 소요된 12:28분에 도착하였다. 서문은(일명 우익문) 적의 공격(광나루나 송파나루)을 가장 받기 쉬운 지역임을 고려하여 문루를 다른 문에 비해 약 1/3수준으로 작게 하였다

 

서문의 모습...

 

• 서문(12:28) - 남문(12:58분)(서문에서 30분)

서문에서 남문까지는 수어장대, 영춘정 등이 있으며, 수어장대에서 남문가는 길은 7090년생의 멋진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등산객들의 그늘이 되어주고 있다.

 

 

남한산성의 소나무...

 

 

《남한산성 소나무》

남한산성의 소나무는 일제시대 당시 국유림으로 조성하여 벌채를 금지하는 금림조합으로 보호하여 서울 근교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남문북문에 대다수가 위치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문에서 남문 방향의 소나무의 자태는 너무 아름다워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수어장대는 서문에서 10분 거리에 있으며, 수어장대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1호로 주변에는 청량당과 매바위가 있으며, 또한 보호수인 향나무가 있다.

 

수어장대...


《장대》

장대는 전쟁시 장군의 지휘소로 남한산성에는 5개장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영조때 증축한 수어장대만 보존되어 있다.(수어장대는 최초 서장대로 단층이었으나 영조가 2층으로 증축하였다


수어장대에서 약 10분 남문쪽으로 내려가면 일명 팔각정인 영춘정이 있으며 여기서 남문까지는 0.7km며 영춘정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으며 남문에는 서문에서 30분이 소요된 12:58분에 도착하였으며 남문에 도착하니 비가 폭우로 바뀌어 남문에서 약 10분간 비를 피하며 휴식을 취했다.

 

 

남문의 처마... 

 

남문의 보호수... 

 

• 남문(13:08) - 남한산성유원지(13:30분)(남문에서 22분)

비가 어느 정도 수그러져 버스를 타기 위해 남한산성유원지로 내려갔으며, 약 30분간 내린 비로 인하여 계곡의 물줄기는 흙탕물로 바뀌었으며 남한산성유원지 입구에는 남문에서 22분이 소요된 13:30분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산행 후기

이번 산행은 회사 업무 때문에 당초 가기로 했던 부산 금정산 무박산행을 가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남한산성은 「칼의 노래」작가 김훈 선생의 작품에서 병자호란 당시 한겨울 고립무원의 남한산성내에서 벌어지는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 간의 말싸움과 '죽어서도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처절한 고뇌를 엿보게 해주는 역사가 있는 곳이다. 당시 사정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조선은 싸움다운 싸움을 할 수 도 없는 전력으로 청나라에서 포위만 한 채 자중지란이 일어나도록 기다린 것 같은 생각이 들며, 결국 청의 뜻대로 이듬해 봄 당시 임금인 인종이 삼전도에서 항복을 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남한산성은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항전 전적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허명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하루빨리 성이 완전히 수리되고 아울러 5대 수어청이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음 산행은 충북영동과 경북상주의 경계에 있는 백화산(933.8m) 산행이 계획되어 있으니 많이 참석하여 좋은 추억을 만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