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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대명산 산행기/영남

경주 남산(12. 3.31)인기/산림청 백대명산 76

by 산사랑 1 2012.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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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2012. 3. 31일 토요일)】인기/산림청 백대명산 76

 

경주 남산은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 경주시의 남쪽에 솟은 경주의 진산으로 신라의 흔적이 곳곳에 서려 있고 신라인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남산은 북의 황금빛 거북 모양의 봉우리를 뜻하는 금오봉(金鰲峰, 468m)과 남의 주변 봉우리보다 높다는 뜻의 고위봉(高位峰, 494m)에서 흘러내리는 용장·천룡·백운·부처·탑골 등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들로 이루어진 동서 너비 4㎞, 남북 길이 8㎞의 타원형으로,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불교를 특히 숭상한 신라는 남산에 그 자취를 고스란히 남겨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탑들이 남아 있으며, 그 대부분은 석탑과 석불로서 특히 마애불이 많다. 남산에 불상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7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 7세기 초에 조성된 동남산 부처골 감실여래좌상(佛谷龕室如來坐像)은 투박한 시골 할머니가 돌로 만든 집 속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듯한 모습의 한국 최고(最古) 감실불이다. 7세기 중엽의 장창곡 석조미륵삼존불의상(石造彌勒三尊佛倚像)과 선방곡 석조여래삼존불(石造如來三尊佛)은 티 없이 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웃음으로 잘 알려진 불상이다.

 

남산 전체가 마애불의 보고(寶庫)지만, 특히 냉골(삼릉계곡)에 마애불이 많다. 입가에 방글방글 미소를 머금은 채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마애관음보살입상(磨崖觀音菩薩立像), 다듬지 않은 넓은 바위 면에 사바세계(裟婆世界)에서 설법하고 있는 석가삼존불, 극락으로 왕생(往生)하는 중생을 마중 나오는 신비스런 모습의 내영아미타여래(來迎阿彌陀如來)를 한 폭의 그림으로 새긴 선각육존불(線刻六尊佛), 얼굴은 원만상으로 조각하고 몸은 억센 선으로 연화대좌는 부드럽고 희미한 선으로 처리해 기도하는 중생을 위하여 바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듯한 높이 6m의 상선암 마애대좌불(磨崖大坐佛) 등 남산 전체가 불보살의 세계를 옮겨 놓은 듯하다.

 

남산은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해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어 야트막하면서도 큰 산으로 왕릉13기, 산성지 4개소, 사지(寺址) 147개소, 불상 118체, 탑 96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등 686점의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으며, 이 중 미륵골(보리사) 석불좌상, 용장사터 삼층석탑, 칠불암 마애석불을 비롯한 보물 13점과 포석정터, 나정과 삼릉을 비롯한 사적 13개소가 지정되어 있는 노천박물관이다. 이들 문화재는 대부분 이름 없는 석공들이 무딘 정을 들고 마음을 새겼다. 이 때문에 남산에는 석굴암처럼 완벽하고 잘 생긴 석불은 그리 많지 않다. 만들다만 듯한 미완의 작품들이 많다. 불상의 뒷모습 처리도 깔끔하지 않다. 동네 아저씨 같은 서글서글한 부처상이나 옆집 아줌마 같은 넉넉한 보살상, 깊이 새기지 못하고 절벽에 윤곽만 새겨놓은 선각불 등이 바로 이런 연유에서 비롯됐다는 게 남산연구가들의 분석이다.

 

유적뿐만 아니라 남산은 자연경관도 뛰어나다. 변화무쌍한 많은 계곡이 있고 기암괴석들이 만물상을 이루며, 등산객의 발길만큼이나 수많은 등산로가 있다.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워 남산을 일등으로 꼽는 사람들은 "남산에 오르지 않고서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곧, 자연의 아름다움에다 신라의 오랜 역사, 신라인의 미의식과 종교의식이 예술로서 승화된 곳이 바로 남산인 것이다.

 

남산은 유적지인 만큼 산길을 탐방로라고 부른다. 잘 생긴 부처상이 있는 칠불암과 신선암, 탑이 아름다운 용장사지, 아름다운 숲이 있는 삼릉 주변 등이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마애불(바위에 새긴 부처)을 보고 싶다면 냉골을 추천한다. 남산을 두루 살펴보려면 동남산~서남산 횡단 코스를 권장한다. 서출지~남산동 쌍탑~칠불암~용장사지~삼릉계~석조여래좌상~선각여래좌상~마애관음보살입상~배리삼존불 구간(10시간)을 돌아보는 것이다. 군데군데 삼륜대좌불·마애여래좌상·삼층 석탑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경주남산연구소는 삼릉에서 냉골 석조여래좌상~마애관음보살입상~선각육존불~마애여래좌상~석조여래좌상~선각마애여래상~상선암선각보살상~상선암마애대좌불~금송정터와 바둑바위~상사바위와 소석불~금오산 정상~대연화대(삼화령)~탑기단석~용장사지삼층석탑~마애여래좌상~삼륜대좌불~용장사터~탑재와 석등대석~용장계 절골 석조약사여래좌상~용장마을까지 가는 하산 코스를 권했다. 등산을 하면서 문화유적을 탐방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다. 이 코스는 단순 등산은 3시간 30분 정도 걸리지만 유적에 대한 설명과 감상을 곁들이면 6시간 정도 걸린다.

 

중간에서 탈출할 수도 있다. 삼릉에서 상선암 위 바둑바위까지 갔다가 서남산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는 3시간이면 된다. 2시간 정도는 보물 666호인 석조여래좌상까지, 1시간 정도라면 선각육존불까지 왕복하면 된다. 이 코스는 신라시대의 석불을 시대적으로 모두 만날 수 있는 신라 석불의 보고로 꼽힌다. 먼저 삼국시대의 대표적 걸작인 배리삼존불, 통일신라의 문화적 성숙기에 조성된 풍만하면서도 늠름한 기상이 보이는 냉골 석조여래좌상, 하늘에서 하강하는 모습의 마애관음입상, 힘 있는 붓으로 한 번에 그린 듯한 선각육존불, 남산에서 유일한 고려 초기의 마애여래좌상, 통일 직후의 아름다우면서도 힘차게 타오르는 불꽃이 아름다운 석조여래좌상, 산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그림자를 살며시 보여주는 듯한 선각마애여래상 등을 잇달아 만난다.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크며 바위 속에서 현신하는 순간을 새긴 마애여래대좌불,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이면서도 거대한 바위산을 하층기단으로 삼고 우뚝 선 용장사 삼층석탑, 남산에서 가장 씩씩하고 아름다운 청년기의 마애여래좌상, 대현스님께서 기도하면서 돌면 불상 또한 고개를 돌렸다는 삼륜대좌불, 김시습이 머물면서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한 용장사지, 신라하대 방형대좌의 약사여래좌상 등 삼국시대부터 고려 초기까지 신라 불상을 두루 만날 수 있는 코스다.

 

남산을 비롯한 경주는 유적의 밀집도, 다양성이 뛰어나 '경주역사유적지구(Kyongju Historic Areas)'로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산재해 있는 종합역사지구로서 유적의 성격에 따라 모두 5개 지구로 나누어진다.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 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으며 52개의 지정문화재가 세계유산지역에 포함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됨으로써 일본의 교토, 나라와 같이 남산의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되었다.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남산은 온갖 전설이 남아 있다. 신라시조 박혁거세가 탄생한 나정(蘿井)과 초기 왕궁, 나을신궁, 도성을 지켜온 남산신성(南山新城)을 비롯한 4곳의 산성, 망국의 한이 서린 포석정지(鮑石亭趾)가 전설과 함께 지나간 역사를 전하고 있다. 포석정은 신라 천년의 막을 내린 비극이 서린 곳이다. 동남산에는 한국적 아름다움과 자비가 가득한 보리사 석불좌상, 9m 높이의 사면 바위에 탑과 불상 등을 새긴 불무사 부처바위, 바위에 아치형 감실을 파고 앉은 부처골 감실석불좌상이 있다.

 

 남산 삼릉계 마애석가여래좌상(경북 유형문화재 제158호)

 

▶11:20 용장1리 남산분소에서 산행시작(3시간 20분 산행)

 

금일 산행은 '09.1월 건강셀프등산회 제107차 산행 당시 건강 회복기에 있어 장거리 여행과 추운날씨를 고려 참석하지 못했던 인기 및 산림청 백대명산이며 KBS의 1박 2일에 소개된 경주 남산으로 따뜻한 남녁의 봄기운도 느끼고 문화유적도 체험하기 위하여 지난주와 같이 안내 산악회를 따라 나섰다. 이번 산행은 용장1리 남산분소 ~ 용장사지 ~ 금오봉 ~ 상사바위 ~ 상선암 ~ 삼릉 ~ 서남산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비교적 짧은 코스로 추진되었다. 신사역에서 07:00분 2대의 차량이 출발하였으며, 08:55분 호서휴계소에 도착하여 약 20분간 휴식을 취한 후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계절은 봄이 지만 날씨는 겨울같이 쌀쌀하였으며 차가운 바람이 불어 다소 추웠다. 들머리인 용장1리에는 신사역에서 4시간 10분이 소요된 11:10분에 도착하였다.

 

산행안내도..

  

• 용장1리 남산분소(11:20) - 금오봉 정상(12:40)(들머리에서 1시간 20분소요)

 

들머리에는 이미 다른 한 팀이 도착하여 산행안내표지판에서 설명 중에 있었으며, 우리 팀도 약 10분간 정리를 한 후 마을을 따라 출발하였으며, 마을에는 목련이 피기 시작하고 벚꽃도 활짝 피어 남녁의 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약 10분이 지나 고위봉 갈림길이 나왔으며 고위봉은 길을 따라 직진하게 되어 있었고, 금오봉은 개울가를 건너게 되어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고위봉 방향으로 진행하였으나 대다수 사람들은 금오봉으로 향하였으며 개울가의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계곡이 있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목련이 피기 시작하고..

 

계곡을 건너는 산객들..

 

산길을 따라 약간 진행하면서 땀이 나기 시작하여 조끼를 배낭에 집아 넣었으며, 길가에는 금년 들어 처음으로 진달래가 예쁘게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용장계곡은 길이가 3km되는 남산에서 가장 크고 깊은 골짜기로 계곡을 따라 물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어 역시 봄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길은 마치 소풍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아주 평이하였으며, 약 23분지나 금오봉 2.2km 지점(용장마을 1.35km, 용장사지 1.1km)남긴 지점을 통과하였다. 길가에는 매월당 김시습이 7년간 이곳 용장골의 은적암에 은거하여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했다고 하며, 김시습의 작품 “용장골에서”란 시 한편도 적어 놓았네요. 당시 용장골에는 오는 사람 볼 수도 없고... 작은 창가에 사슴 함께 잠들고, 낡은 의자엔 먼지만 재처럼 쌓였다고 할 정도로 깊은 골임을 표현하고 있네요.

 

진달래도 피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물줄기를 통해서 봄이 왔음을 알 수 있고요..

 

진달래색이 곱습니다..

 

조그만 소들도 여럿 있더군요..

 

산행 약 30분지나 매월당 김시습의 법호를 딴 설잠교를 지났으며, 이후 가파른 길이 이어졌다. 잠시후 대나무 숲길이 나와 운치를 더해 주었으며, 대나무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땀을 씻어 주었다. 들머리에서 약 45분지나(12:05분) 넓은 공터가 나왔으며, 여기서는 앞쪽으로 고위봉 방향의 능선과 가야할 방향으로 용장사지 3층석탑이 조망되어 잠시 쉬어갔다.

 

설잠교(매월당 김시습의 법호가 설잠이라고 합니다/11:52분)..

 

설잠교를 지나면서 다소 가파른 산길이 이어졌으며,

이와같은 대나무 숲길도 있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씻어 주네요..

 

 전망처에서 휴식을 취하며 경치를 구경하는 산객들..

 

전망처에서 본 모습(고위봉 방향의 능선이..)

 

용장사지 3층석탑이 보이네요..

 

 

쉼터에서 약 3분 정도 올라가면 처음으로 보물 두점을 만날 수 있는데, 첫째가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이요 둘째가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이다. 첫 번째 보물인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의 문화적 성숙기에 조성된 풍만하면서도 늠름한 기상이 보이는 8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 보물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은 석조여래좌상의 뒤쪽 바위벽에 새긴 것으로 자연 암벽을 이용하여 조각되었으며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

통일신라의 문화적 성숙기에 조성된 풍만하면서도 늠름한 기상이 보이는 8세기의 작품으로 추정..

 

미륵장육상으로 추정되며, 삼륜대좌위에 모셔진 특이한 구조로 1932년 일본인들에 의해 복원된 것으로 머리부분이 없어졌다. 대좌에 비해 불상은 작은편으로 목에는 세줄의 뚜렷한 3도(三道)가 있고 어깨는 다소 좁은편이나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으며,

좌측 어깨에는 매듭지어진 가사끈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석불 자체의 사실적인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주고, 제작시기는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석조여래좌상의 뒤쪽 바위벽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으로 자연 암벽을 이용하여 조각되었으며, 머리둘레의두광(頭光)과 몸둘레의 신광(身光)은 두줄로 표현하였다.얼굴은 풍만하고 머리에는 나선형 머리카락을 표현하고 귀는 눈에서 목까지 상당히 길게 표현하였다.  목에는  세줄의 뚜렷한 3도(三道)가 있고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옷의 주름선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고, 양어깨에 동시에 걸치고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보존 상태도 양호해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조여래좌상 있는 곳에서는 경주의 야트막한 산들이 조망되었으며, 바로 위에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있었는데 지나쳤으며 약 4분 지나면 금오봉 0.9km 팻말 및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따라 약 500m진행하면 다시 산길로 접어들 수 있으며 비파골의 전설이 적혀있는 간판을 지나면 금오산 정상이 나오며 정상에는 들머리에서 1시간 20여분이 소요된 12:40분에 도착하였다.

 

석조여래좌상있는 곳에서 본 풍경..

 

 

이곳에서 임도로도 갈 수 있고, 산길로도 갈 수 있으며 거리는 비슷한것 같습니다..

 

남산에는 생강나무가 무척 많이 눈에 보입니다..

 

 금오산 정상입니다(12: 40분)

 

• 금오봉(12:55) - 서남산 주차장(14:40)(금오봉 정상에서 1시간 45분소요)

 

금오산 정상은 다소 넓은 공터가 조성되어 있고 약수골 방향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멋진 조망을 구경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 약 15분간 후미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했다.

 

금오산 정상에서 본 모습..

 

이름모를 새도 산객을 반겨주고..

 

시간도 어느덧 식사시간을 지나가고 있어 대다수는 여기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으나 찬바람이 불어와 나는 조금 더 진행한 후 적절한 곳에서 먹기로 하고 12:55분에 서남산 주차장방향으로 이동을 하였다. 나무테그 길을 따라 진행하게 되며 약 5분후 바위가 병풍을 만들어 주고 있으며 그 사이로 마애석가여래좌상이 보이는 멋진 장소가 있어 여기서 약 20분간 식사를 하였다. 

 

남산 삼릉계 마애석가여래좌상(경북 유형문화재 제158호)이 보입니다..

 

 

마애석가여래좌상 앞에 산객들이 보이네요..

이곳에서 약 20여분 식사를 하였습니다.

 

남산의 산그리매가 보기 좋습니다..

 

 식사 후 조금 진행하는데 두 개의 갈라진 바위 앞에 일단의 사람들이 있어 확인을 해 보니 문화해설사가 설명을 하는데 그 바위가 여성의 상징으로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하며, 철종 당시 어떤 사람이 이곳에서 소원을 빌어 5명의 아들을 낳았으며 이를 표시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약 2분후 상선암이 조망되었고 잠시후 남산 삼릉계 마애석가여래좌상(경북 유형문화재 제158호) 내려가는 길이 막혀 있었으나 옆길로 돌아서 가 보았다.

 

여성 상징으로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하며,

철종 당시 어떤 사람이 이곳에서 소원을 빌어 5명의 아들을 낳았으며 이를 표시했다고 합니다.

(우측바위 하단부에 産神堂 및  아들들 5형제 중의 일부 이름이 남아 있음)

 

여성바위에서 본 모습

 

상선암으로 조그마한 사찰이더군요..

 

남산 삼릉계 마애석가여래좌상(경북 유형문화재 제158호)으로 낙석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마애석가여래좌상】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약 6m로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 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 살펴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 있게 깊게 새겨서 돋보이게 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의 마애불로 추정된다.

 

 

 

마애석가여래좌상을 구경한 후 다시 올라 와 조금 가면 엽서를 쓰는 곳이 있었으며, 여기서는 무열왕릉, 포석정 등 경주일원이 조망되었다.

 

엽서를 쓰서 넣어두면 나중에 보내준다고 하며, 몇명이 엽서를 쓰고 있네요..

 

엽서를 쓰는 곳은 다소 넓은 공터로 전망이 좋습니다..

 

형산강이 흘러갑니다..

 

잠시 구경한 후 약 5분 정도가면 삼불사, 삼릉주차장 삼거리가 나오며 삼릉주차장으로 가야 문화재를 제대로 볼 수 있기에 삼릉주차장 방향으로 진행하였다. 상선암을 지나 약 10여분 가면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세 번째 보물인 삼릉계 석불좌상(보물 제 666호)을 만날 수 있었다. 불상이 참으로 단아한 형상이었으나 발굴 당시 불상의 얼굴과 광배가 파손되어 '07~'08년 정비한 것이 너무 표가 나 다소 아쉬웠다.

 

삼릉주차장 방향으로 가야 많은 문화유적을 볼 수 있습니다(11:43분)

 

삼릉계 석불좌상(보물 제 666호)

불상의 얼굴과 광배를 '07~'08년 정비하였습니다..

 

【삼릉계 석불좌상】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으며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얼굴은 원만하고 둥글며,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다. 가사는 왼쪽 어깨에만 두른 편단우견식이며, 가사는 얇게 몸에 밀착하여 신체가 들어난다. 허리는 가늘고 앉은 자세는 안정감이 있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에는 화려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8각 중대석은 각 면에 간략하게 눈모양의 안상을 조각하였다. 하대는 단순한 8각대석으로 되어 있다.

 

 

 

삼릉계 석불좌상에서 약 8분 거리에 바위의 표면을 정으로 쪼아 새긴 것이 아니라 붓으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이 각각의 암벽에 삼존불을 그려 넣은 것으로 안쪽 바위에는 현세를 주관하시는 석가삼존불이, 앞쪽 바위에는 내세를 주관하시는 아미타여래 삼존불이 새겨져 현재와 미래를 한 공간 안에 끌어들인 점이 독특한 삼릉계곡 선각6존불(경북 유형문화재 21호)을 만날 수 있었다.

 

삼릉계곡 선각6존불..

 

 

반대편에서 본 모습..

 

선각6존물을 뒤로하고 약 3분 정도 내려오면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불상은 1964년 8월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30m땅속에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바로 위에 삼릉계 마애관음 보살상(경북 유형문화재 19호)가 있었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옆에 동백이 피어 있더군요..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길가 옆에 훼손된 유물들이..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경북 유형문화재 제19호

이 불상은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 새김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으로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 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상으로 삼릉계의 불상들을 구경하고 내려오다 보니 어느덧 삼릉가는 운치 있는 소나무길이 보였으며 잠시 후에 삼릉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삼릉보다 부근의 소나무들에 더욱 눈길이 갔었다. 소나무들이 하나도 똑바른 것이 없었으며, 아마도 이것 때문에 벌목되지 않고 살아남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릉가는 운치 있는 소나무길..

 

삼릉의 명물 소나무 숲.. 

 

올바른 마루가 하나도 보이지 않네요..

 

배리 삼릉은 밑으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해지고 있으나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 곳에 모여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삼릉을 잠시 구경한 후 서남산 주차장에는 금오봉 정상에서 1시간 45분이 소요된 14:40분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안정하게 마쳤다.

 

 배리삼릉..

 

 

 

 

산행후 시간이 많이 남아 서남산 주차장에서 1.1km 떨어진 신라 천년의 막을 내린 비극이 서린 곳인 포석정을 둘러보았으며, 오는 길에 삼불사를 들러 보물 제63호인 석조여래 삼존입상을 둘러보았다.

 

포석정 부근에 목련이 피고 있습니다..

 

 사적1호인 포석정..

 

 

포석정 내의 운치있는 모습..

 

삼불사에 있는 보물 제63호인 석조여래 삼존입상..

 

 

잠시 삼불사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왔습니다..

 

 

당초 예정대로 16:00에 경주를 출발하여 17:50분 속리산 휴계소에서 20분 휴식을 취한 후 19:40분 죽전에 도착하여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산행 후기

 

이번 산행은 ‘09.1월 건강상의 이유로 가지 못했던 경주 남산을 안내산악회에서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문화유적도 둘러 보고 남녁의 봄도  느껴보고자 신청하였다. 경주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탑들이 남아있어 그 자체가 문화유적지로서의 가치가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자연경관도 뛰어나 변화무쌍한 많은 계곡이 많고 기암괴석들이 만물상을 이루고 있어 "남산에 오르지 않고서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할 정도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산행 간 여러 불상들을 보았지만 이 분야에 문외한으로 깊이까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과거 신라인들의 신앙심이 매우 깊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삼릉 주변의 소나무들의 굽은 모습을 통하여 세상의 삶도 이들 소나무와 같이 살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으며, 산행 후 시간이 남아 포석정도 둘러 보고 삼불사에 있는 보물인 석조여래 삼존입상도 볼 수 있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 점은 좋았다. 또한 진달래, 매화, 목련 등이 피어나는 모습과 계곡의 물이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모습에서 남녁의 따뜻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어 경주 남산산행을 추진했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산행시간이 놀멍쉬멍 하면서도 3시간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쉬웠다.  

 

개략적인 이번 산행을 정리 해보면 다음과 같다.

- 07:00 삼각지 출발 ~ 11:10 용장1리 도착

- 11:20 용장1리 출발 - 12:40 금오봉 정상 도착(들머리에서 1시간 20분소요)

- 12:55 금오봉 출발 - 14:40 서남산주차장 도착(금오봉에서 1시간 45분소요)(산행종료)

 

 

 

 

 

【오늘의 팁】: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나더라도 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오는 오후나,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열어 보일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 형제나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있을까.

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라도 좋고 남성이라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으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으면 된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 쓸 것이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을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혜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

우리는 푼돈을 벌기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살아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내가 길을 가다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져도 그는 날 주책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게다.

나 또한 그의 눈에 눈꼽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추가루가 끼었다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 <芝蘭>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