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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대명산 산행기/서울,경기

남한산성 야간산행(14.8.2)

by 산사랑 1 2014.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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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산행 2014. 8. 2일 토요일】인기 백대명산 제95위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都城)을 지키던 남부의 산성으로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 암문(暗門)·우물·보(堡)·누(壘) 등의 방어 시설과 관해(官해), 군사 훈련 시설 등이 있다.

 

이 산성의 주변 지역에는 백제(百濟) 초기의 유적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일찍부터 온조왕대(溫祚王代)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13년(673)에 한산주(漢山州)에 주장성 (晝長城, 일명 일장성(日長城))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로서 현재 남한산성이 위치한 곳이라고 믿어져 내려온다. 고려시대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으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에 일장산성(日長山城)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둘레가 3,993보이고, 성내에는 군자고(軍資庫)가 있고, 우물이 7개인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또한 성내에 논과 밭이 124결(結)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현재의 모습으로 대대적인 개수를 본 것은 후금(後金)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李适)의 난을 겪고 난 1624년(인조(仁祖)2)이다. 인조는 총융사(摠戎使) 이서(李曙)에게 축성할 것을 명하여, 2년 뒤에 둘레 6,297보·여장(女墻) 1,897개·옹성(甕城) 3개·성랑(城廊) 115개·문 4개·암문 16개·우물 80개·샘 45개 등을 만들고 광주읍의 치소(治所)를 산성 내로 옮겼다. 이때의 공사에는 각성(覺性)을 도총섭(都摠攝)으로 삼아 팔도의 승군을 사역하였으며, 보호를 위하여 장경사(長慶寺)를 비롯한 7개의 사찰이 새로 건립되었으나, 장경사만이 현존한다. 그 뒤 순조(純祖) 때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설이 정비되어, 우리 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을 완비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처음 축성의 목적을 대변해 주듯이 유사시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이 73칸 반의 규모이고, 하궐(下闕)이 154칸이나 되었다.

 

1798년(정조(正祖)22) 한남루(漢南樓)를 세우고 1624년에 세운 객관(客館)인 인화관(人和館)을 1829년(순조(純祖) 29)에 수리하였다. 관해(官해)로는 좌승당(左勝堂)·일장각(日長閣)·수어청(守禦廳)·제승헌(制勝軒)을 비롯하여, 비장청(碑將廳), 교련관청(敎鍊官廳)·기패관청(旗牌官廳) 등의 군사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종각(鐘閣)·마구(馬廐)·뇌옥(牢獄)·온조왕묘(溫祚王廟)·성황단(城隍壇)·여단(여壇) 등이 이루어졌고, 승도청(僧徒廳)을 두어 승군을 총괄하였다. 남한산성의 수어(守禦)는 처음에 총융청(摠戎廳)이 맡았다가 성이 완성되면서 수어청(守禦廳)이 따로 설치되었다.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수어사인 이시백(李時白)은 서성을, 총융대장(摠戎大將) 이서(李曙)는 북성, 호위대장(扈衛大將) 구굉(具宏)은 남성, 도감대장(都監大將) 신경진(申景縝)은 동성 망월대, 원두표(元斗杓)는 북문을 지켰다. 그러나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수항단(三田渡受降檀)으로 나가 항복하였으나, 그 뒤 계속적인 수축을 하여 경영되었다

 

남한산성은 1963년 1월 사적 제57호로 지정된 산성으로 성곽의 길이는 모두 11.76㎞로 본성이 9.5㎞, 외성이 2.71㎞이다. 면적은 총 3만6447㎢로 성 안쪽이 2317㎢(6%), 성 바깥쪽이 3만4130㎢(94%)를 차지한다. 산성 내에는 수어장대, 연무관, 숭열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등 6개의 경기도 지정문화재가 있으며 망월사지와 개원사지 등 경기도 기념물도 2개가 있다.

 

(출처 : 문화재청을 중심으로 재편집)

 

 

남한산성은 2014년 6월2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World Heritage Committee) 제38차 회의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 에 선정됐다. 남한산성은 동아시아에서 도시계획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증거를 지닌 군사 유산으로 세계 유산적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 2010년 '한국의 역사마을 양동·하회' 이후 4년 만이며, 국내 11번째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유산은 석굴암·불국사와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이상 1995년), 창덕궁, 수원 화성(1997년), 경주 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하회·양동 역사마을(2010)과 이번에 지정된 남한산성이 있다.

 

노을이 물들어 가고..

 

 

▶17:45산행 시작(약 3시간 10분 산행)

 

금일산행은 건강셀프등산회 제393차 산행으로 남한산성 야간산행이 추진되어 총 19명이 함께하였다. 남한산성일주는 ’07. 4. 23 처음 남한산성유원지입구에서 ~ 남문 ~ 서문 ~ 북문 ~ 동문 ~ 남문일주를 한 후 간혹 시간이 나면 혼자서 일주를 하곤 하였던 곳이다. 남한산성은 한강과 더불어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으며, 조선 왕조때는 선조부터 순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이다. 비록 인조 당시 병자호란의 치욕을 간직하고 있지만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항전 전적지로 최고 수준에 달한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지로 2014년 6월 국내 11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산림욕, 가을단풍, 겨울 설경을 자랑하며, 특히 사시사찰 푸른 소나무의 멋진 자태는 서울 인근에서 최고라 할 만하다. 남한산성의 일몰 및 야경 또한 볼만하며, 최고의 포인트는 서문 성곽 위로 해 질 무렵에 서문 위에서 바라보는 일몰 및 야경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다.

 

이번 산행은 남한산성의 멋진 야경을 보기 위하여 17:00시 남문을 출발하여 ~ 동문 ~ 북문 ~ 서문에서 야경을 본 후 ~ 남문으로 원점회귀할 계획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 행궁을 보고 남문까지 도보로 이동하여 일행과 합류하여 산행을 시작할 계획으로 남한산성유원지 행궁입구에 15:30분에 도착하여 구경을 한 후 16:40분에 남문에 도착하였다.

 

 행궁입니다..

 

행궁은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으로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 까지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1626년 건립되었다. 실제 인조 2년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을 한 곳이다. 남한산성행궁은 우리나라 행궁 중 종묘(좌전)와 사직(우실)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유사시 임시수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16:40분에 남문에 도착하였습니다..

 

 

남문에 도착하여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데 16:44분 일출대장에게서 "한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산성역에서 출발이 지연되고 있다"는 전화가 왔으며, 먼저 출발한 고산대장 차량에 나의 위치를 알려주겠더고 하여 일행을 기다리면서 남문 반대편으로 나가 남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약 38분동안 전화가 없었으며, 17:22분 남문에서 약20m 아래지점에 일행들이 도착하여 수박을 먹으려고 하니 내려오라고 하여 내려가지 않았다. 다시 약 20분이 경과하여 일행이 남문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별로 기분이 좋지 못하였다. 오늘 산행의 목적은 사실 남문에서 동문, 북문을 거쳐 서문에서 일몰을 보는데 있는데 혼자의 경우에도 남문에서 동문을 거쳐 서문에 가는데 최소한 2시간 20분 이상이 소요되어 일몰을 보기가 빠듯한데 19명이 단체로 움직이려면 최소 3시간 이상 소요되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행들이 수박을 먹고 17:43분이 넘어 도착하여 일행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짜증이 난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로 인하여 깨운하지 못한 마음으로 산행을 출발할 수밖에 없게 되어 기분이 별로 였다. 사실 오늘은 처음에는 남한산성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행궁등을 보면서 여유롭게 시작하였지만 정작 산행은 40분 이상 지연 시작되었고, 이런 여파때문인지 산행도중 벌에 쏘이는 등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남문에서 본 모습들..

 

위 나무 아래쪽에 덩굴식물이 올라가고 있네요..

 

 

남한산성유원지 입구쪽에서 올 때 볼 수 있는 남문의 모습..

 

 

• 남문(17:45) ~ 동문(18:27분)(남문에서 42분)

 

남문은 조선시대 임금들의 출입문으로  남한산성의 정문으로 4대문 중에 규모가 가장 크며 1779년(정조 3년) 성곽을 보수할 때 개축하고 지화문(至和門)이라 하였다고 한다. 동문가는 성곽 길은 깨끗하게 단장이 되어 산객들을 맞이하고 있었으며,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성곽 길을 걷다 보면 세상의 모든 걱정, 근심도 사라지고 편안한 마음이 될 수 있으므로 혼자 걷기를 좋아하는 코스인데 오늘은 산행출발 지체 및 많은 인으로 인하여  다소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남문에서 동문까지는 약 1.7km로 여기에는 옹성이 3개가 있으며, 남문에서 약 5분정도 가니 예전에는 없던 옹성을 복원중에 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제1옹성이며 다시 10여분 정도 진행하면 남한산성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제2옹성이 나오는데 이곳은 다른 옹성과 달리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으로 현재 제2옹성 앞 쪽을 옹성치(치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적을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시설물 중의 하나로 남한산성에 5개가 있다)를 복원 중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문에서 서문방향 쪽입니다..

 

남문에서 봉문을 향하여 출발합니다(산누리님 작품)

 

 

남한산성의 오르막 성곽 길은 어김없이 하늘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남한산성 성곽 길은 서울에서 하늘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길로 정평이 나 있어 하늘이 드높은 가을철 산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하늘과 맞닿아 있고..

 

길이 새로이 단장되어 있습니다..

 

제1남옹성을 발굴하고 있네요..

 

《옹성》

옹성은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경사가 완만한 지역의 성문 밖에 또 한 겹의 성벽을 둘러쌓은 이중 성벽으로 총 5개(동문, 북문 각1개, 남문 3개)가 있다

 

 암문도 보완이 끝났고..

 

성남시가지가 보이네요..

 

마치 뱀이 기어가는 형상으로 남한산성 성곽은 곡선미가 아주 뛰어 납니다..

제2옹성에서(일출님작품)

제2옹성(멀리 검단산이 보이고..)

 

 

’07년도 남한산성 일주 당시 남문에서 동문가는 구간은 성벽이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보수가 이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2옹성을 지나 가는데 무릎위가 따끔거려 보니 말벌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떼어 내었으며, 나 이외에도 두사람이 더 말벌에 쏘였다. 다른 사람들을 우회시킨 후 확인을 해 보니 말벌집이 성곽에 붙어 있었다고 하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앞으로 엎어져 무릎부위를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큰 사고가 아니라서 다행이었으며, 동문에는 남문에서 약 42뷴이 소요된 18:27분에 도착하였다.

 

 

성곽이 잘 보수되어 있고요..

 

남한산성의 성곽 축성술이 특이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일조를 하였다.

 

정말 성벽길이 멋집니다..

 

요 지점에서 말벌에게 쐬인 것 같네요..

 

맞은편 성곽은 동문에서 북문가는 길의 성곽입니다..

 

 

 

동문입니다..

 

후미를 가다리면서 본 남문성곽의 끝지점..

 

 

• 동문(18:32분) ~ 북문(19:55분)(동문에서 1시간 23분)

 

동문에서 약5분정도 후미를 기다린 후 북문으로 출발하였으며, 동문에서 북문까지는 2.9km로 성문간의 거리가 가장 길며 길도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해야 하므로 힘이 가장 많이 드는 구간이라 할 수 있다. 북문가는 길 도중에 송암정, 장경사 신지옹성, 동장대지터, 돌탑 및 작은 군포지터 등이 있다.

 

황진이가 심명한 불도를 설법하여 이에 감명 받은 기생 하나가 자괴하여 투신자살한 지역인 송암정은 동문에서 약 6분 거리에 있으며, 커다란 바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문을 출발합니다..

 

이곳 성곽들도 잘 보수되어 있네요..

 

멋진 모습입니다..

 

성곽의 돌을 자세히 보면 형태가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보수시기에 따라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황진이가 심명한 불도를 설법하여 이에 감명 받은 기생 하나가 자괴하여 투신자살한 지역인 송암정 지역..

 

《송암정》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 하산하여 이곳을 지나는 도중 기생2명과 함께 술을 마시던 유생이 황진이를 희롱하려 하자 황진이가 심명한 불도를 설법하므로 이에 감명 받은 기생 하나가 자괴하여 투신자살한 지역임.

 

이런 성곽길을 거는 것 자체가 힐링이라 할 수 있겠지요..

 

구비구비 성곽길이 이어지고..

 

한 산객이 무엇을 조망하는 모습이 마음에 와 닿네요..

 

보수가 필요하네요..

 

남한산성의 특징은 성벽을 따라 소나무들이 잘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한산성 소나무》

남한산성의 소나무는 일제시대 당시 국유림으로 조성하여 벌채를 금지하는 금림조합으로 보호하여 서울 근교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남문 ~ 북문에 대다수가 위치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문에서 남문 방향의 소나무의 자태는 너무 아름다워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멀리 검단산이 보이네요..

 

 

장경사 신지옹성은 동문에서 1.1km 거리에 있으며, 가는 길의 성곽 길은 멋진 소나무가 도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장경사 신지옹성에는 동문에서 약 23분이 지나 도착하였으며, 옹성이 아주 멋지게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장경사 신지옹성은 길이가 159m로 한봉성과 봉암성에 대한 방어를 주목적으로 설치하였으며, 옹성 끝에 2개소의 포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0.35km만 더 가면 남한산성의 5대 수어청 중에 하나인 동장대지가 있었다는 표식을 볼 수 있었으며,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올라가면 성곽들이 내려앉아 보수가 필요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지역은 ’09년까지만 해도 잘 보수가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많이 무너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남한산성의 성곽 길은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되며 대다수가 경사가 심함에 따라 폭우, 폭설 등에 자주 무너져 성문과 함께 성곽들에 대한 보수소요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경사지 옹성..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이 구비구비 이어지는 성곽 길이 계속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장경사지 옹성에서 약 15분 정도 간식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하였으며,  동문에서 약 50분지나 동장대터를 지났고, 이곳에서 노을을 볼 수 있었다. 오늘 일정을 제대로 지켰더라면 이 노을을 서문 근처에서 볼 수 있었을 겄이며, 여기서 휴식을 취하면서 멋진 석양과 아울러 야경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인데 조금 아쉬웠다. 남쪽에 태풍이 몰려옴에 따라 바람이 불어 하늘이 맑아져서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는 오늘은 정말 날짜는 최고로 잡았지만 산행 출발시간이 늦어 서문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지 못하였지만 이 정도 나마 볼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오르막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첩첩산중인 것을 알 수 있네요..

 

장경사지 옹성이 앞으로 돌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네요..

 

저 위에가 동장대지 터입니다..

 

동장대지 터에서 노을을 볼 수 있더군요..

 

 

 

 

단체인증을 하고..

 

한강이 멋지게 조망되네요..

 

멋집니다..

 

유구무언입니다..

 

멋진 일몰을 보면서 다시 출발하였으며, 북문에는 동문에서 약 1시간 22분이 소요된 19:55분에 도착하였다.

 

 

 

 

 

 

 

 

 

북문입니다..

 

 

• 북문(20:00) ~ 서문(20:30분) ~ 종로(20:55분)(북문에서 55분)

 

북문에서 일부 부상자들은 종로로 바로 하산을 하고 나머지는 서문으로 출발하였으며, 서문 조금 못미쳐 야경을 카메라에 담는 진사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 팀도 잠시 구경을 한 후 시간을 고려하여 서문에서 남문을 거쳐 종로로 가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바로 종로로 내려갔으며, 종로에는 북문에서 약 55분이 소요된 20:55분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서문 부근에서 본 야경(산누리님 작품)

 

 

일출님 작품..

 

산행을 마치고 차량으로 남문휴계소 부근으로 이동하여 부산에서 공수한 회로 산행의 뒤풀이를 하였는데, 회가 숙성이 되어 정말 부드러웠으며 특히 문어 숙회는 압권이었다.

 

뒤풀이용 회와 문어숙회(산누리님 작품)..

 

 즐거운 뒷풀이가 이어지고(산누리님 작품)

 

 

▶산행 후기

 

이번 산행은 건셀 393차 산행으로 남한산성 야간산행이 추진되어 19명이라는 대다수 인원이 참여하였으며, 이중에 여성분들이 13명이나 참석하여 건셀을 여성들이 점령한 기념비적인 산행으로 기억이 될 것이다. 산행시작이 당초계획보다 약 45분 정도 지연되어 최초 서문에서 일몰을 보려고 했었던 소기의 목적은 비록 달성하지 못하였지만, 북문 부근에서 멋진 일몰을 볼 수 있었던 점은 그 나마 위안이 되었다. 앞으로는 시간 약속을 좀 더 철처하게 지키기를 기대해 보며, 나의 짜증으로 인하여 초반 진행이 원만하지 못한 점 이 자리를 빌어서 이해를 구합니다. 산행 도중 나를 포함하여 세명이 말벌에 쏘이고 한 명이 엎어져서 부상을 당하였으나 별 탈이 없어서 다행이었으며, 산행 후 뒤풀이가 깔끔하게 진행되어서 좋았다.

 

사실 남한산성은 「칼의 노래」작가 김훈 선생의 작품에서 병자호란 당시 한겨울 고립무원의 남한산성내에서 벌어지는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 간의 말싸움과 '죽어서도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처절한 고뇌를 엿보게 해주는 역사가 있는 곳이다. 당시 사정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조선은 싸움다운 싸움을 할 수 도 없는 전력으로 청나라에서는 포위만 한 채 조선의 자중지란이 일어나도록 기다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며, 결국 청의 뜻대로 이듬해 당시 임금인 인종이 삼전도에서 항복을 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남한산성은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항전 전적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치욕을 간직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각설하고 남한산성의 성곽길은 오르락내리락 이어져 마치 우리네 삶의 한 단편처럼 느껴지는 곳으로 기회가 되면 조용히 음미해 가면서 걷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끝으로 이번 산행을 위하여 멋진 계획도 수립하고 차량지원과 산행 리딩을 해 주신 일출대장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추가로 차량을 지원해 주신 고산님과 심통님에게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처음 산행에 동행하신 수정님, 무지개님 만나서 반가웠으며, 산행에서 자주 뵐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모처럼 산행에 동행한 바우, 은하수, 바람의 여신, 수빈, 미소, 하트, 장금, 샛별님 등도 자주 산에서 뵐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또한, 산행간 시종일관 함께 하면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한 천송님 등 산행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의 수고에도 감사드립니다. 이번 산행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도 다음 주 산행은 계곡산행이 계획되어 있으니 많이 참석하여 무더위도 식히고 즐거운 추억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금번 산행에 참석하신 19명은 심통고문, 일출대장, 천송, 산누리, 초코, 바우, 햇살, 봄짱, 은하수, 바신, 수빈, 장금이, 하트, 샛별, 미소, 미미, 수정, 무지개님 그리고 산사랑)

 

 


 

 


 

남한산성 행궁의 이모저모..

 

행궁을 둘러보기 전에 침괘정과 종묘(좌전)을 먼저 들러보았다. 침괘정은 정확하게 지어진 시기나 용도를 알 수 없으나 무기제작소의 사무를 관장하는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하며, 좌전은 종묘로 남한산성은 행궁 중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우실)을 두고 있어 유사시 임시수도의 중요한 역활을 수행하한 곳이다.

 

침괘정으로 무기제작소의 사무를 관장하는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행궁 내의 이위정(활을 소쏘기 위해 만든 정자)에서 본 좌전의 모습..

종묘와 사직은 실제 가져오지 않아 비어있는 상태라고 하더군요..

 

좌전은 산성내에 행궁을 건립하면서 숙종37년(1711년)에 종묘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좌전이라 한 이유는 좌묘우사의 유교 풍습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즉 왕궁을 중심으로 좌측에 종묘, 우측에 사직을 배치하는 것이다.

 

행궁으로 들어가는 문의 역할을 하는 한남루는 정조 22년(1798년)에 세워졌다.(입장료 2,000원)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천흥사 동종의 모형으로 크기가 실제 동종보다 약 3배로 제작되었으며,

그 이유는 타종시 울림을 좋게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외행전으로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의 홍이포가 이곳에 떨어졌다고 한다.

 

 

 

왕의 생활공간인 내정전으로 들어 갑니다..

 

왕이 집무를 보던 곳..

 

복원중인 인화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