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쇼를 구경하고..
남미 35일차 :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동
오늘은 아침식사 후 비행기를 타고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동할 계획이다. 요즘 아르헨티나는 경제가 워낙 안 좋아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들에게도 급여가 제 때에 지급되지 않아 치안도 엉망이고 택시기사들도 사기를 많이 치니까 조심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어제 낮에 그렇게 좋았던 날씨가 밤에 비를 뿌리고 아침까지 조금 내렸으니 정말 날씨 복은 타고 난 것 같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07:30분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입국수속 후 09:08분에 이륙을 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출발하였다. 출발과 동시에 잠에 떨어져 잠시 깨어보니 구름 위를 날고 있었고, 10시경 기내식으로 음료수와 과자 2개를 제공해 주었다. 12시 40분경 구름 사이로 살짝 도시가 보였는데 녹지가 엄청 많은 것 같았으며 구역 정비가 아주 잘되어 있었다. 12:43분 드디어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보였으며, 항로가 도심을 지나는 것 같았다. 버스로 19시간 갈 거리를 비행기로 3시간 35분 만에 도착하여 오늘은 조금 여유가 있을 것 같다.
짐이 늦게 나와서 30분 이상 기다렸고 벤(레미스)을 불러 호텔까지 가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도로가 더 막히는 것 같았다, 호텔에 도착하여 숙소에 들어가려는데 이틀 치 방값을 먼저 지불하라고 하였다. 현재 아르헨티나가 국가부도 위기에 있어서 그런지 한국인에 대하여도 방값 이틀 치를 선지불해야 호텔 숙박키를 준다고 하여 조금 황당하였다. 대다수 인원이 환전을 해야 됨에 따라 환전소를 찾아다녀 겨우 환전(1달러당 15.36)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숙박비를 지급하고 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저녁식사기간이 다 되었다. 만약 숙소에서 짐을 밭길 수 만 있었다면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구경을 할 수 있었을 것인데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낼 수밖에 없었던 점이 조급 아쉬웠다.
여행에선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반드시 예비일을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저녁식사를 위해 마트에 들려 빵과 와인을 싸고 어제 사 두었던 컵라면과, 소세지 등으로 식사를 하면서 와인을 마시니 아주 좋은 조합이 될 수 있었다. 식사와 와인을 마시다 보니 시간이 벌써 22시가 다되어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내일은 부에노스아이레스어서 자유일정을 가진 후 저녁은 탱고 쇼를 볼 계획이다.
라보카 거리의 화려한 색상..
남미 36일차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유여행(리꼴라타묘지, 엘라테네오 서점, 라 보카 거리 등)
오늘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자유여행으로 에바 페론이 잠들어 있는 리꼴라타 묘지, 오페라 극장으로 유명한 엘라테네오 서점과 벽화거리로 유명한 라보카 거리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탱고 쇼를 보면서 식사를 할 계획이다. 아침식사 후 룸메이트인 연셈과 손셈부부와 한 팀으로 움직였으며. 첫 번째는 코스인 에바 페론이 잠들어 있는 조각공원인 리꼴레타 묘지로 갔다. 숙소 앞에서 택시를 타고 20여분 가니 리꼴레타 묘지가 나왔고 에바 페론의 묘지도 보고, 묘지에 장식된 조각들을 구경하고 나가려는데 우리 팀의 다른 일행들이 다시 들어와 조금 더 구경하고 두 번째 코스인 오페라를 개조한 엘라테네오 라는 서점을 찾아갔다.
에바 페론이 잠들어 있는 조각공원인 리꼴레타 묘지 입구 입니다..
【리콜레타 묘지(Recoleta Cemetery) 】
아르헨티나의 국모로 불리는 에비타 여사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그녀의 묘지에는 언제나 생화가 놓여있다. 지금은 묘지를 사고 팔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 가족들만 사용이 가능하다. 간혹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관리가 안 되어진 묘가 있다면 몰락한 가문의 묘라고 보면 된다. 묘지의 묻힌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할 정도로 화려한 무덤이 있는 가하면 너무나 단조롭게 생긴 묘지들도 있다.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시내 투어를 신청해 가이드와 함께 방문하는 것이 좋다.(출처 :노컷뉴스)
묘지는 잘 관리되어 있더군요..
에바 페론의 묘지..
【에바 페론】
'에비타(Evita)'라는 애칭으로 더 친숙한 에바 페론은 1919년 5월 7일생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자동차를 타고 서쪽으로 서너 시간을 달려야 도달하는 광대한 초원 팜파스에 위치한 로스 톨도스라는 작고 낙후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릴 적 이름인 에비타는 '작은 에바(Little Eva)'라는 의미이다. 그녀가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기간은 불과 8년 남짓이었고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러나 지난 20세기, 에비타는 전 세계에서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에비타를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가 '거룩한 악녀이자 천박한 성녀'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의 삶은 상당 부분 가려져 있지만, 열다섯 살 이후의 삶과 8년 동안의 공직생활, 그리고 그 기간의 어록은 스스로 구술한 자서전을 포함해서 여러 개의 전기에 의해 투명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녀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녀에 대한 평가는 평가자가 세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서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내 삶의 이유》는 1952년 출판되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무슨 이유인지 미국에서의 출판은 지연되어 1953년 《My mission in life》라는 제목으로 양장본이 출판되었지만, 이 책은 출판 당시부터 희귀본이었다. 이후 1980년 출판된 《Evita by Evita》를 통해서 비로소 대중들이 접할 수 있었다." 에비타는 1952년 7월 26일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내 삶의 이유(La Razon de Mi Vida)》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출간했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유년 시절의 생활은 물론 그녀의 고향이나 생일에 관한 것, 심지어는 어릴 적의 이름조차 빠져 있다.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도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할 정도로 이 시절 그녀의 삶은 악몽 그 자체였던 것이다.(다음 백과사전에서 일부 발췌)
에바 페론의 묘지에는 항상 꽃이 놓여져 있습니다..
묘지에는 조각들이 있습니다..
조각품들을 감상하세요..
리꼴라타 묘지 구경을 마치고 이동합니다..
서점은 2층으로 되어 있고 상당히 넓었으며, 서점을 둘러보고 거기서 커피 한 잔(45페소)을 마시고 11:24분 라보카로 이동하였으며, 12시에 도착하였다. 라보카 거리를 구경하면서 체게바라 티셔츠 한장을 구매(150페소) 하고 길거리 음식인 초리판(50페소/음료수 10페소)을 먹었다. 초리판 맛은 약간 짭짤하면서 먹을 만했으며 점심대용으로 적격이었다.
두 번째 코스인 오페라를 개조한 엘라테네오 라는 서점입니다..
서점으로 신호등에서 개 다섯마리를 끌고 가는 사람이 있어 찍어 봅니다..
엘라테네오 내부입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림..
옛날 무대였던 곳으로 커피 마시면서 본 그림..
라 보카 거리 입니다..
【라 보카지구 (La Boca)】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자랑을 꼽으라면 아마도 탱고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옛 항구 옆 뒷골목 빈민가에 자리한 보카지구는 신의 손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마라도나의 출생지이다. 그가 소속된 프로축구팀 ‘보카 주니어스(Boca Juniors)’와 탱고의 발생지로 유명하다. 스페인 식민시대 라이추엘로강 하구의 항구에 접한 보카지구에는 이탈리아계 이민이 많이 모여들었고 그들에 의해서 탱고가 발달했다.
길거리에서 파는 것인데 상당히 정교한 것 같더군요..
초입의 건물에는 교황의 조각품이 있고 그 아래에서는 돈을 받고 탱고포즈로 사진을 찍더군요..
관광객이 탱고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네요..
보카주니어 축구팀 소속이었던 마라도나 사진이 붙어 있고..
우리나라 국기도 걸려 있네요..
음식점에서 탱고 춤을 추고 있네요..
거리가 원색인 것은 부두에서 쓰고 남은 페인트로 색을 칠했다고 합니다..
색이 상당히 화려 합니다..
보카쥬니어 팀 관련 장소 같네요..
길거리 음식인 초리판(50페소/음료수 10페소)을 판매하던데 장사를 아주 잘 하더군요..
어제는 비가 와서 오늘 구경을 하는데 조금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였는데 오늘 날씨는 화창하게 개어 시내 투어 하는데 최적이었다. 라보카 거리의 식당가에서는 음식과 함께 탱고 쇼를 하여 잠시 구경하고 13:50분 5.8광장으로 출발하였다.
식사 후 다시 보카 거리를 잠시 구경하였는데 역시 탱고 춤을 추고 있네요..
항구로서의 기능이 거의 상실된 것 같습니다..
58광장의 대통령궁은 막아놨으며 빙 돌아서 광장으로 오니 많은 인파들이 토론을 하고 있었다. 많은 인파들이 토론을 함에 따라 대통령궁을 막아놨는지 모르겠고, 대통령궁 옆에 있는 대성당에 가니 남미해방의 영웅 인 산마르틴의 무덤을 초병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는 산마르틴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었으며, 성당의 14단계를 둘러보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판을 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면서 쓰러진 장면, 물을 얻어 미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죄수2명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돌무덤으로 들어가는 장면들을 모사해 놓았다. 대성당을 둘러보고 79도로에서 오벨리스크를 둘러보고 16:00에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58광장의 대통령궁은 시위로 인하여 막아 놨어 들어가지 못하고 사진만 찍었습니다..
대통령궁의 옆모습..
조각품이 여러 곳에 있네요..
5월광장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5월 광장】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신적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5월 광장’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다. 스페인의 페르디난도 7세가 나폴레옹에 의해 쫓겨나면서, 1810년 5월 25일 아르헨티나에서는 1차의회(1st Government Junta)를 조직하여 스페인 식민국가 아르헨티나 국왕이었던 리오 데 라플라타 부왕의 퇴위와 자치정부 수립을 선언한다. 이 역사적 사건을 ‘5월 혁명’이라 부른다. 이후 1814년 남미의 독립 영웅 호세 데 산 마르틴의 지휘로 점차 독립이 현실화되어, 마침내 1816년 7월 9일 투쿠만(Tucuman) 의회 소집으로 완전한 독립을 쟁취한다.
이렇게 7월 9일 독립을 위한 출발이 되었던 1810년 5월의 그 날, 그들이 모였던 그 곳은 지금 ‘5월 광장’으로 불리며 이후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곳에서 그들의 마음을 모으곤 하였다. 특히 군부독재가 절정에 이르던 7-80년대 민주화 투쟁의 근거이며 특히 독재정권에 희생된 자식을 찾는 어머니들의 한이 깃든 광장이기도 하다.
5월 광장은 1536년 페드로 데 멘도사에 의해 조성되었다가 1541년 폐허가 된 후 1580년 6월 재건되었다. 방어목적인 ‘요새광장(Plaza de Fuerte)’을 거쳐 영국군 침략을 격퇴한 1807년부터 ‘승리광장(Plaza de Victoria)’으로 불리다가 독립선언 이후 ‘5월 광장’ 명명되었다. 5월광장은 아르헨티나의 격동기를 몸소 겪고 있는 그들의 상징적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정치 경제의 중심인 5월 광장에는 대통령궁, 대성당, 5월의 피라밋, 중앙은행 등이 있다.
철문이 굳게 닫힌 대통령궁 입니다..
【대통령궁】
5월 광장 동쪽 끝 커다란 분홍빛 건물이 ‘카사로사다(분홍빛저택)’로 불리는 대통령 궁이다. 스페인의 로코코 양식의 이 건물은 1873년부터 1894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원래는 외부로부터의 침략군을 막기 위한 요새로 건설되었으며 원 건물에 우체국과 성채를 보강하였다. 1873년 착공 당시부터 분홍색으로 칠한 이후 ‘카사로사다(분홍빛저택)’으로 불리며, 속설에 의하면 분홍색은 붉은색(자유당)과 하얀색(연합당)의 단합을 상징한다는 설이 있다.
대통령궁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는 이곳 2층 광장방향 발코니에서 에비타(에바페론)가 10만 군중을 향해 연설하며 손을 흔들던 곳이다. 그리고 에비타의 남편 페론 대통령과 독재자를 포함한 역대 대통령과 주요 인사들이 이곳에서 연설을 하였다. 또한 대통령궁 앞에는 아르헨티나 독립영웅이며 아르헨티나 국기의 창안자로 알려진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의 기마상이 있다. 이 앞에서는 매일 대통령 관저의 위병교대식이 이루어진다.
광장 곳곳에서 집회를 하고 있고..
박물관 같은 외형이나 대성당으로 12개 기둥은 12사도를 상징하고 있다..
【메트로 폴리티나 대성당】
대통령궁 바로 옆, 5월 광장 북쪽에는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인 네오클래식 양식의 장엄한 부에노스아이레스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은 그리스 신전 모양을 띠고 있으며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코린트 양식의 열주가 받치고 있다. 성당이라기보다는 마치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같은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이 성당은 ‘알레한드로 부스티요가’가 설계했다고 하며, 18세기 중반부터 시작하여 50여년에 걸친 공사 끝에 1827년에 완공되었다. 프란치스코 1세가 교황이 되기 전 추기경으로 머물렀던 성당으로서 내부에는 18세기의 귀중한 성상들과 제단화 뿐만 아니라 네오르네상스 및 네오바로크양식의 장식물들로 가득하다.
또한 아르헨티나와 칠레, 페루를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킨 남미의 독립영웅 산마르틴(Jose de San Martin) 장군의 무덤이 있다. 1880년 프랑스에 있던 호세 데 산 마르틴 장군의 시신이 아르헨티나로 와서 대성당 오른쪽 통로와 연결된 자리에 마련한 무덤에 이장되었다. 대성당 벽에는 산마르틴 장군을 기리기 위해 횃불을 밝히고 있다.
이곳 성당에는 프란치스코 1세가 교황이 되기 전 추기경으로 머물렀던 곳입니다..
이곳이 남미의 독립영웅 산마르틴(Jose de San Martin) 장군의 무덤 있는 곳입니다..
성당이 상당히 화려한 것 같습니다..
성당 천장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성당에는 14단계의 그림이 있었으며,
이 그림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그림입니다..
예수님의 옷을 벗겨 가는 장면..
7.9도로의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네요..
오늘 저녁은 식사를 하면서 탱고 쇼를 보는(880폐소) 일정이 있어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휴식을 취한 후 17:30분에 로비로 내려갔다. 버스가 19시 넘어 도착하고 탱고쇼 하는 곳에는 몇 군데 들러 20:20분경 도착하여 스테이크 등으로 식사를 하고, 탱고 강습도 악20분 정도 받은 후 22:00경 탱고 쇼가 시작되었다. 탱고 쇼는 악기연주, 노래, 탱고 춤이 계속 이어졌으며, 23시20분경 탱고 쇼가 끝났는데 대체로 짜임새가 있었던 것 같았다. 탱고 쇼가를 보고 숙소에 돌아오니 23:40분으로 오늘의 마무리는 탱고와 함께 하였다
탱고 강습을 받으니 주더군요..ㅎㅎ
식사와 탱고 강습 후 탱고 쇼가 시작됩니다..
탱고 쇼는 무희들의 춤. 연주, 사회의 3가지 요소가 있어야 되는데 이층에서 연주를 하더군요..
이 분이 탱고 강습을 해준 분입니다..
사회자 입니다..
내일은 오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구경을 잠시하고 오후에는 약18시간 버스를 타고 남미여행의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로 세계 제일의 폭포가 있는 이과수로 떠나는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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