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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북알프스
길/한양도성 순성길

한양도성 인왕산 ~ 북악산 연계산행(20.2.8)

by 산사랑 1 2020.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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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 북악산 연계산행(2020. 2. 11일 토요일)】

 

인왕산(338m)은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암반이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지나며 동쪽 산허리에 북악산길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인왕산은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세종 때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인왕산(仁旺山)이라 하였으나, 1995년 본래 지명인 인왕산(仁王山)으로 환원되었다.

 

경복궁 왼쪽에 자리한 인왕산은 예로부터 황제가 태어날 명당이 있다는 말들이 심심찮게 돌았다. 도성의 풍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 한양을 대표할 풍경은 모두 이곳 인왕산 주변을 맴돌고 있다. 특히 필운대(弼雲臺), 청풍계(淸風溪), 반송지(盤松池), 세검정(洗劍亭)은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의 '국도팔영(國都八詠)'에 꼽혀 한양 명승지의 절반을 인왕산 자락이 차지했다.

 

정상에 오르면 경복궁을 중심으로 인왕산과 함께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내사산인 낙산, 남산, 백악산이 펼쳐진다. 북한산에서 볼 때, 북악산을 중심으로 좌측에 낙산, 우측에 인왕산이 있어 좌청룡 우백호를 이룬다. 특이한 형태의 암석과 암벽의 웅대함이 등산객의 감탄을 자아내며, 정상에 서면 서울 중심가의 빌딩들과 청와대 부근의 녹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출처 : Daum백과사전을 중심으로 재편집]

 

인왕산의 숨겨진 멋진 바위..

 

▶09:40분 서대문역에서 산행 시작 (4시간 55분 산행)

 

건강셀프등산회 제 682차 산행은 인왕산 ~ 북악산 연계산행이 추진되었으며 금일산행은 서대문역 ~ 돈의문박물관마을 ~ 홍난파가옥 ~ 권율장군집터 ~ 선바위 ~ 인왕산 ~기차바위 ~ 창의문 ~ 백악산 ~ 청운대 ~ 숙정문 ~ 삼청공원으로 추진하였다. 서대문역 4번 출구에 도착하여 돈의문터를 지나 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님 의 숙소이자 환국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인 경교장을 잠시 들렀다. 경교장은 감북삼성병원 옆에 있는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출입통제를 하고 있었다. 잠시 경교장 외관만 구경하고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지나 홍난파가옥을 잠시 들렀다.

 

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님 의 숙소이자 환국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인 경교장 입니다..

 

【경교장】

경교장은 이화장(梨花莊)·삼청장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위한 활동 3대 명소의 하나로 광화문과 서대문 사이에 있는 강북삼성병원 자리에 있다. 이 집은 1938년 완공 당시에는 친일파 최창학 소유의 별장으로 죽첨장이라 하였으나, 백범 김구선생이 경교장이라 개칭하였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함께 귀국한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집무실에서 육군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되기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건국활동 및 반탁, 통일운동을 이끌었던 곳이다. 2005년 6월 13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 앞에 있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한양 도성 성곽..

 

홍난파 가옥을 지나 권율장군의 집터를 들렀는데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만 우뚝 서 있었고 집터 맞은편에는 미국인 알버트 테일러(1875~1948)가 1923년 행촌동 지역에 건축한 '딜쿠샤' 건물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있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개항 이후 지어진 딜쿠샤는 서양식 주택 중에서도 평면 구성과 외관이 독특한 건물로 유명하고 특히 화강석 기저부 위로 붉은 벽돌을 세운 프랑스식 벽돌쌓기는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볼 수 없어 이국적 풍모를 더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권율장군 집터를 지나 행촌성곽마을 입구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산행을 실시하였다.

 

가곡 봉숭아 등 수많은 가곡과 동요를 작곡한 홍난파 가옥..

 

【홍난파 가옥】

홍난파 가옥은 1930년에 독일 선교사가 지은 벽돌조 서양식 건물로 작곡가 홍난파 선생이 인수하여 살던 곳이다. ′봉선화′, ′고향의 봄′ 등을 작곡한 홍난파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이 주택은 1930년대 서양식 주택 특성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고 그의 대표곡들이 작곡된 산실로 2004년 9월 4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었다. 홍난파 가옥이 갖는 의미는 독립운동과 친일을 했던 두 시절 모두를 아우르는 음악가 홍난파의 궤적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Daum백과사전을 토대로 재작성]

 

권율장군 집터..

 

• 행촌성곽마을 입구(10:12) ~ 선바위(10:37) ~ 인왕산 정상(11:15)(들머리에서 1시간 03분)

 

행촌성곽마을 입구에서 성곽 바깥쪽을 따라 진행하였으며, 성곽을 따다 건다보면 인왕산 정상이 보였다. 인왕산은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청와대습격사건 이후 입산이 금지됐었다가 25년 만인 1993년에야 민간에 개방되었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많은 날씨이나 산에서 보는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의 파란하늘을 보여주고 있었다. 들머리에서 약 25분지나 선바위에 도착하였다.

 

산행은 행촌성곽마을 입구 ~ 선바위 ~ 인왕산 ~ 기차바위 ~ 창의문 ~ 북악산 ~ 숙정문 ~ 삼청공원으로 진행..

 

성곽 바깥으로 진행합니다..

 

성곽을 따라 인왕상 정상이 보이네요..

 

성을 돌아보면 돌에 새겨진 이런 거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각자성석이며 한양 성에는 약 280개가 있다고 하며

여기는 황해도 봉산현 백성들이 공사를 담당한 시점을 표시한 것입니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씨이나 산에서 보는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의 파란하늘이네요..

 

스님이 잠삼을 입고 참선을 하는 형상이라는 선바위로 새 한마리가 앉아 있네요..

 

이쪽에서 보니까 남자의 거시기 같기도 하네요..

 

선바위는 비둘기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있었으며, 기도함이 설치되어 있어 몇사람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선바위 뒤쪽에서 보니 그 형상이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아서 ‘禪(선)’자를 따서 선바위[禪巖]라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바위가 비둘기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네요..

 

뒤쪽에서 본 모습으로 이 모습이 바로 스님이 기도하는 모습이네요..

 

【인왕산 선바위】

인왕산 선바위는 1억5천만 년 전에 생성됐다고 추정하는 바위로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상이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아서 ‘禪(선)’자를 따서 선바위[禪巖]라 불렀다고 한다. 신라시대 도선국사는 현재 인왕사 위에 있는 선바위를 두고 왕기가 서리는 길지라고 했다고 전한다.

 

선바위는 그 생김새가 기이하여 예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소원을 빌어 왔다. 특히, 자식 없는 사람이 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크다고 하여 정성을 드리는데, 작은 돌을 붙이면 효험이 더욱 크다고 하여 작은 돌을 문질러서 붙인 자국이 많이 남아 있다. 일제가 남산 꼭대기에 있던 국사당(國師堂)을 선바위 곁으로 옮기게 한 뒤로 더욱 선바위에 대한 신앙은 무속신앙과 밀착되게 되었다. 국사당은 무신당으로서 굿을 행하는 곳이니 바로 옆에 있는 선바위와 복합적으로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출처 : Daum백과사전을 중심으로 재편집]

 

선바위를 지나 뒤쪽의 조망이 좋은 바위에 올라서니 남산을 비롯한 서울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는데 미세먼지로 희미하게 보였다. 일제시대 당시의 서대문형무소도 보였으며. 인왕산에서 안산으로 가는 연결다리도 보였고, 모자바위도 볼 수 있었다. 모자바위는 조금 위쪽에서 보면 두 개의 바위로 되어 있는데 앞쪽의 삿갓형상의 바위를 모자바위라고 한다. 즉 모자바위는 어머니와 아들을 상징하는 모자(母子)가 아니고 머리에 쓰는 모자(帽子)를 말한다. 커다란 바위 위에 방랑시인 김삿갓이 쓰고 다니는 그런 삿갓 같은 모자를 얹어놓은 것처럼 생겨서 모자바위라고 한다.

 

남산이 보이네요..

 

모자바위..

 

안산도 바위산인 것을 알 수 있고 아래쪽에 인왕산에서 안산가는 연결다리가 보이네요..

 

일제시대 당시의 서대문 형무소 입니다..

 

【서대문형무소】

구 서울구치소(사적 제324호)의 일제강점기의 명칭. 형조의 지휘를 받아 죄수를 관장하던 전옥서가 전신으로, 1908년(순종 2) 10월 21일 일본인 건축가 시텐노 가즈마의 설계에 의해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인 경성감옥으로 건축되었다.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개칭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허위·유관순·강우규 등 수많은 애국지사가 수감되었던 민족수난의 현장이었다. 해방 후에는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간첩·사상범, 많은 운동권 학생과 재야인사 등이 거쳐간 곳으로서 한국의 교도행정상 빼놓을 수 없는 기념지였다. 1987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기존의 자리에는 기념공원이 조성되었다. [출처 : Daum백과]

 

새롭게 단장한 성곽길 너머 미세먼지로 인하여 건물들이 희미하네요..

 

좌측 군부대와 우측 모자바위..

 

여기서 보면 모자바위가 두 개의 바위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잠시 조망을 한 후 성곽을 따라 진행을 하였으며, 남산과 앞으로 가야할 북악산 등을 볼 수 있었다. 인왕산 정상 올라가는 길은 조금 가파른 계단 길로 이어져 있었으며, 범바위(?)도 지나고 명품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멋진 바위도 볼 수 있었다. 인왕산 정상 직전에 소나무 한그루가 있는 곳의 조망처에서 바라보는 뷰가 아주 멋지며, 인왕산 정상에는 들머리에서 약 1시간 3분이 지난 11:15분에 도착하였다.

 

성곽길이 남산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인왕산을 거쳐 가야 할 북악산..

 

당겨 본 불루 하우스..

 

치마바위..

 

범바위(?)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네요..

 

인왕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다소 가파르네요..

 

인완산의 숨겨진 바위로 최고의 바위라 할 수 있네요..

 

소나무 아래에서 경치를 조망하고 있는 이곳의 경치가 멋집니다..

 

인왕산 정상입니다..

 

• 인왕산 정상(11:18) ~ 기차바위(11:34) ~ 서시정(12:00)(인왕산 정상에서 약43분 소요)

 

인왕산 정상에서 잠시 머문 후 기차바위로 향했다. 기차바위 앞쪽으로 북한산 주능선이 펼쳐져 있으며 계속 진행을 하면 홍제동 벽화마을로 하산을 하게 되므로 다시 돌아와서 창의문으로 진행하였다. 창의문 가는 길에 연리지인 부부소나무를 볼 수 있는데 볼수록 신기하였다. 하산을 하다가 기차바위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왕산 종착지인 서시정에는 정상에서 약 43분이 소요된 12:00시에 도착을 하여 인왕산을 마무리 하였다.

 

 

기차바위길과 북악으로 이어지는 성곽길..

 

산아래 동네는 미세먼지로 뿌였습니다..

 

인왕산과 안산을 조망하고..

 

북악산으로 성곽이 이어져 있습니다..

 

기차바위로 앞쪽에 북한산 주능선이 펼쳐져 있네요..

 

창의문으로 진행 합니다..

 

연리지인 부부소나무로 특이합니다..

 

하산길 성곽 사이로 본 모습..

 

기차바위에 사람이 지나가네요..

 

인왕산 종작지인 서시정으로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북악으로 갑니다..

 

인왕산에서 굴러 내려온 돌로 만든 설치미술 입니다..

 

인왕산 산행을 마치고 인근에 있는 윤동주시인의 시비가 있는 청운공원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공원을 둘러본 후 북악산으로 갔다.

 

윤동주 시인의 슬픈족속이고 앞쪽에는 서시가 세겨져 있습니다..

 

기품있는 소나무를 뒤로 하고 북악산으로 갑니다..

 

• 창의문(12:45) ~ 백악산(13:20) ~ 심청공원 관리사무소(14:35)(창의문에서 약1시간 50분 소요)

 

창의문에서 팻말을 받은 후 북악산 산행을 시작하였다. 북악산은 인왕산과 마찬가지로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청와대습격사건 이후 40여년간 입산이 금지됐었다가 2007년 4월5일 전면 개방하였다. 2007년도 개방 당시만 해도 신분증을 확인 후 산청신청을 하고 팻말을 목에 걸고 산행을 하였으나 지금은 신분증이 없어도 산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북악산 성곽길은 가파른 계단을 따라 진행되었으며, 가는 길에 북한산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북악산 출입문인 창의문으로 요즘은 주민등록증이 필요 없습니다..

 

북악산 성곽길도 예쁘네요..

 

북악에서 바라 본 북한산의 위용..

 

상당히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갑니다..

 

백악산(북악산) 정상가는 길에 작년 3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함께 갔었던 김포 교장선생을 우연히 마주쳤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이런 곳에서 만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는데 정말 반가웠다. 금년 1월 안나푸르나 눈사태로 충남교육청 소속 4분의 선생이 실종이 되어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비극적인 사태가 일어났지만 작년 우리 팀이 갔을 때에도 이번 눈사태가 난 구간에서 우리 팀이 통과하기 며칠 전에 역시 눈사태가 일어나 우리팀도 정상에 가지 못할 뻔 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우리 팀은 아마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안나푸르나를 경험했었는데......이 지면을 빌어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조속히 시신이 수습될 수 있기를 기원드린다.

 

작년 3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함께 갔었던 김포 교장선생을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북한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족두리봉, 향로, 비봉, 사모바위, 보현봉, 문수봉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각설하고 북악산 정상에는 창의문에서 약 35분이 소요되었으며, 잠시 정상에 머물고 다시 출발하였다. 정상에서 약 5분후 1.21 사태 당시 무장공비가 쏜 총알 자국이 있는 소나무를 지났으며, 잠시후 멋진 소나무가 있는 청운대에 도착하였다. 청운대를 지나 천천히 진행하면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성곽길이 길게 이어진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산행을 하던 길을 걷던 가끔 가다가 지나온 길을 한 번씩 돌아보면 지나가면서 느끼지 못했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백악산 정상입니다..

 

【북악산(北岳山)】

북악산(342m)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하며,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북악은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북악은 남산에 대칭하여 칭했으며,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북악산은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자락인 북한산 보현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터널 위의 보토현(補土峴)으로 이어진다. 북악산은 1395년(태조 5) 시축한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기점으로서 북악산에서 낙산·남산·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쌓았다. 북악산에서 청계천이 발원하는데, 2005년 11월 종로구청에서 조사한 청계천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자하문 고개에 있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이다.[출처 : Daum백과사전을 중심으로 재편집]

 

1.21 사태 당시 무장공비가 쏜 총알 자국..

 

 

멋진 소나무 아래 운대 표지석이 자리잡고 있네요..

 

음지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고..

 

성곽 안쪽으로 멋진 나무가 한 그루 있고..

 

 

나 온 길이 멋지네요..

 

 

촛대바위를 지나 운치있는 소나무 숲길이 나왔으며, 숙정문에 도착하였다.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쪽문으로 1395년(태조 4)에 건립되었으며 당시에는 숙청문(肅淸門)이라고 하였다. 이문은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창의문(彰義門, 일명 紫霞門)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출처 : 다음 백과사전) 그 결과 현재 이곳 소나무 숲길이 아주 운치 있게 되어 이곳의 풍경이 북악산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다.

 

촛대바위..

 

 

나무 숲길이 아주 운치가 있습니다..

 

소나무 숲이 잘 조성되어 있네요..

 

운치있는 성곽입니다..

 

숙정문 앞의 소나무..

 

정문입니다..

 

숙정문을 지나 조금 진행하면 말바위 안내소가 나오고 그곳에서 팻말을 반납하고 말바위 방향으로 진행하였다. 말바위는 조선시대 말을 타고 온 문무백관이 녹음을 만끽하며 시를 읊고 쉬던 자리였다고 전해진다. 또 백악(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바위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말바위를 지나 말바위 등산로로 하산을 하여 삼청공원에서 약 4시간 55분에 걸친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소나무가 특이 합니다..

 

운치가 있습니다..

 

북악스카이가 보이고..

 

삼청각 입니다..

 

 

말바위 입니다..

 

말바위 등산로로 하산합니다..

 

산행을 마치고 인사동을 거쳐 종로3가에서 배추전, 부추전에 막거리 한잔으로 산행의 피로를 풀었다.

 

철도 카페네요..

 

인사동 길을 걸으며 포착한 고양이..

 

안국에서 종로3가 가는 길에서..

 

배추전, 부추전에 막거리 한잔으로 산행의 피로를 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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