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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축제, 볼거리 등)/풍경(충청)

칠백의총, 만인산 자연휴양림(20.10.28)

by 산사랑 1 2020.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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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동우회에서 매년 가을에 실시하는 안보견학이 당초 파주 방면으로 계획이 되었으나 코로나 19의 여파로 서울, 경기 지역 단체관람 금지 결정에 따라 충남 금산의 칠백의총으로 변경하여 다녀왔다.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때 조헌 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이 왜군과의 싸움에서 순절한 700 의사의 묘로 싸움이 있은 4일 후 조헌 선생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이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한 곳이다.

 

칠백의총 묘역..

 

【칠백의총】

임진왜란 때 조헌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이 왜군과의 싸움에서 순절한 700 의사의 묘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 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선조 25년 8월 1일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수복하고, 18일에는 호남 순찰사인 권율 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함께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권율 장군은 왜적의 기세로 보아, 아군은 중과부적의 열세임을 탐지하고 작전을 바꾸어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조헌 선생에게 띄웠으나 미처 받아보지 못한 채 출병한 선생의 의병부대는 필사 무퇴 결전을 벌이다가 모두 순절하였다. 조헌 선생의 제자 박정량과 전승업은 싸움이 있은 4일 후 칠백의사의 유해를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이라 했다.

 

그 후 선조 36년(1603)에 [중봉 조헌선생 일군순의비]를 세우고 인조 25년(1647)에는 사당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현종 4년(1663), 이 사당에 종용사라는 사액과 토지를 내렸으며 대대로 제사를 받들어 왔다. 종용사에는 칠백의사 이외에 금산 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 선생과 그 막좌 및 사졸, 그리고 횡당촌 싸움에서 순절한 변응정 선생과 무명 의사 등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 하여 왔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종용사를 헐고 순의비를 폭파한 후 칠백의총의 토지를 강제로 팔아 경역을 황폐하게 만들어, 항일유적을 말살하였다. 광복 후 1952년에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다시 지었고 1970년에 묘역을 확장한 후 종용사와 순의비를 새로 지었으며, 1976년에는 기념관을 신축하여 순절한 칠백의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이어받게 하고 있다.

 

이 비각에는 중봉 조헌선생 일군 순의비의 파비가 보존되어 있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조헌 선생과 승장 영규대사를 따라 청주를 수복하고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기까지 행적을 쓴 것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금산 경찰서장 일본인 이씨까와 미찌오에 의하여 이 비가 폭파되었던 것을 인근 주민들이 뒷산에 묻어두었다가 8.15 해방 후에 다시 파내어 보관 중 1971년 4월에 그 파비를 붙여서 다시 세우고 비각을 건립한 것이다. (출처 : 다음 백과)

 

금산 지역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어 절정으로 치닫고 있네요..

 

칠백 의총문 ..

 

1970년에 묘역을 확장한 후 새로 지은 순의비각....

 

비각에는 중봉 조헌 선생 일군 순의비의 파비가 보존되어 있다. 이 비는 임진왜란 때 조헌 선생과 승장 영규대사를 따라 청주를 수복하고 금산 싸움에서 순절하기까지 행적을 쓴 것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금산 경찰서장 일본인 이씨까와 미찌오에 의하여 이 비가 폭파되었던 것을 인근 주민들이 뒷산에 묻어두었다가 8.15 해방 후에 다시 파내어 보관 중 1971년 4월에 그 파비를 붙여서 다시 세우고 비각을 건립한 것이다.

 

연못 주변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고 있고..

 

 

칠백의총 문 앞에서 단체인증을 하고..

 

종용사에서 순절한 호국선열에 대한 분향을 합니다..

 

종용사는 현종 4년(1663)에 종용사라는 사액과 토지를 내렸으며 대대로 제사를 받들어 왔다. 종용사에는 칠백의사 이외에 금산 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 선생과 그 막좌 및 사졸, 그리고 횡당촌 싸움에서 순절한 변응정 선생과 무명 의사 등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 하여 왔다. 일제 강점기 때 종용사가 헐렸으나 1952년에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의총과 종용사를 다시 지었다.

 

칠백의총..

 

 

 

 

칠백의총(七百義塚)은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에 위치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순절한 조헌, 영규 대사를 비롯한 700여 명의 의사가 묻힌 묘역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칠백의총을 둘러보고 있는 국방동우회 역전의 용사들..

 

칠백의총에 분향과 참배를 한 후 식사를 하고 만인산 자연휴양림을 잠시 들렀다..

 

【만인산 자연휴양림】

만인산 자연휴양림은 대전광역시와 충남 금산군 경계로서 대전역에서 17번 국도 17㎞ 지점에 위치해 있다. 주봉인 만인산을 비롯하여 봉수레골, 큰배 골, 작은배골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산세가 수려하여 태조대왕과 왕자의 태를 모시기도 하였던 곳이다. 골짜기에는 항상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활엽수가 울창한 산림을 이루고 있는 도시근교 휴양림으로 자연능선을 이용 가족 휴양지구, 청소년지구, 피크닉 지구 등으로 나누어져 조성되어 있어 도시민들의 쾌적한 휴식처이다.

 

만인산휴게소는 1990년도에 민간자본으로 건축된 자연휴양림의 편의시설로서 건축 당시 전혀 산림훼손을 하지 않고 자연계곡을 그대로 이용하여 골짜기에 테크 시설을 만들고 지상 2층, 반지하 1층으로 건축되었으며, 주 골조는 철근콘크리트조로 주재료는 목재로 건축하고 휴게소 앞에는 연못을 조성하여 자연경관과 조화되도록 건축함으로써 전문가들로부터 우리나라의 휴게소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건축물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으며, 지금은 시민들이 여가를 보내기 위하여 즐겨 찾는 명소로 정착하고 있다.

 

곳곳에 휴식용 벤츠, 편안한 쉼터가 설치되어 있어 풍광을 느끼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만인루각은 만인산의 상징적인 휴양 건축물이며, 루정(樓亭)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이 루각의 건축은 서울 북악산 기슭에 있는 세검정(洗劍亭) 건축양식을 취하되 주 골조는 철근콘크리트조로 지붕은 목조 와가 2층으로 응용 건축하여 한국 고유의 전통 건축양식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면서 유지관리를 고려하여 건축되었다. (출처 : 대전관광)

 

 

 

거위 두 마리가 연못에서 놀고 있네요..

 

에도 가을이 내려앉았고..

 

못 위쪽에 있는 쉼터..

 

잘 조성된 산책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봅니다..

 

곳곳에 유격 시설이 있고..

 

관광객들에게 반응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인산 자연휴양림을 둘러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예당호 출렁다리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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