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릉에 있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합장릉..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은 대한민국 사적 제195호로, 조선 제4대 세종과 그 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합장릉인 영릉(英陵)과
제17대 효종과 그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능인 영릉(寧陵)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세종대왕의 재실(2020년 완공)로 새로 지어 운치가 없네요..
왕릉의 재실(齋室)은 제관(祭官)의 휴식, 제수장만 및 제기 보관 등의 제사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로 재방, 안향청, 제기고, 전사청, 행랑채(대문 포함), 우물 등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조선 왕릉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멸실되어 원형이 훼손되었다.
인공연못인 연지..
세종대왕 동상이 있고..
세종전 밖의 잔디밭엔 전시되어 있는 해시계들로 좌로부터 현주일구, 정남일구, 천평일구, 앙부일구 등이다..
좌로부터 일성정시의(해시계와 별시계), 물시계인 자격루,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등이다..
좌로부터 앙부일구의 받침대인 일구대, 비의 양을 측정하는 측우기, 별자리 관측하는 혼창, 천체관측기구인 혼천의 등이다..
좌로부터 하천의 물높이를 재는 수표, 바람의 방향과 세기 측정 풍기대, 천문관측기기인 소간의 등이다..
좌로부터 고도와 방위, 시간을 측정하는 간의, 24절기를 측정하는 규표..
홍살문으로 들어갑니다..
조선 제4대 세종과 그 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동봉이실합장릉으로 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이다.
【영릉(英陵)】
영릉(英陵)은 조선 제4대 세종과 그 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동봉이실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이다. 광주(廣州, 현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릉(憲陵)에 있던 것을 1469년(예종 1년)에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지세는 층층이 해와 달의 모습을 띠면서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형국이라, 최고의 명당자리라고 한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재실과 세종대왕 동상이 오른쪽에 서 있고, 왼쪽에는 세종대왕 기념관인 세종전이 있다. 세종전 안에는 집현전 학사도를 비롯한 여러 유물들이 대왕의 업적을 기리며 모작 혹은 진품으로 진열되어 있고, 세종전 밖의 잔디밭엔 해시계·자격루·관천대 등이 전시돼 있다.
봉문 앞에는 4개의 돌로 받친 혼유석 2개를 놓아 합장릉임을 표시했다. 봉분 둘레는 돌난간을 두르고 동자기둥에 십이지를 문자로 새겨 넣었다. 그 앞에 팔각으로 다듬어진 장명등과 능 앞으로 석상·석마·문인석·무인석을 배치했다. 정자각은 합장 봉분에 축이 맞추어진 배치이나, 홍살문의 위치가 틀어져 있어 참도는 꺾인 축형이 되었다. 현재의 홍살문은 후대에 옮겨진 듯하며 원래의 위치에 초석이 남아 있다. 또한 수복방과 수라간의 위치가 정자각 바로 옆까지 올라간 특수한 예에 속한다. 1977년 능역 성역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 한글날을 전후하여 각종 행사가 열리며, 평소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 매년 5월 15일(양력)에 세종대왕릉 정자각 일원에서 세종대왕탄신 숭모제전(崇慕祭奠;탄신일을 기념하여 올리는 제사)을 봉행하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출처 :위키 백과)
세종대왕릉에서 바라 본 모습..
세종대왕릉을 떠나 효종대왕의 능으로 갑니다..
두 영릉을 연결하는 700m의 길인 왕의 숲길..
왕의 숲길에는 운치 있는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효종대왕릉의 홍살문..
정면에서 바라본 인선왕후(1618~1674) 장 씨의 능..
우측(앞쪽)에 있는 능이 인선왕후릉, 좌측(뒤쪽)에 있는 능이 효종대왕릉..
【영릉(寧陵)】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과 그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무덤을 좌우로 나란히 하지 않고 아래·위로 만든 동원 상하 릉으로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구리(九里) 건원릉(建元陵) 부근에서 1673년(현종 14년)에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정자각 뒤 봉분은 오른쪽이 왕비릉이고 왼쪽이 효종릉이다. 왕비릉엔 둘러쳐진 곡장이 없고 왕릉에는 곡장이 있다. 영릉은 다만 쌍릉이면서 앞뒤로 엇비슷하게 위치를 잡고 있어 지형과 상관없이 애당초 ‘나란히’ 놓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의 석물들은 똑같이 갖춰져 있는데, 배치와 양식은 조선 전기 '국조오례의'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영릉의 재실은 조선왕릉 재실 중 기본 형태가 가장 잘 남겨져 있어 보물 제1532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재실 안에 심어진 수령 300년의 회양목은 키가 크고 나무의 모양이 양호한 노거수로 평가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출처 :위키 백과)
효종대왕릉..
인선왕후의 능..
운치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재실 건축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아 보물로 지정된 효종대왕 재실..
【조선 효종 영릉 재실】 보물 제1532호(2007.11.29 지정)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대왕(1619~1659, 재위 1649~1659)과 인선왕후 장 씨의 능이며, 재실(齋室)은 제관(祭官)의 휴식, 제수장만 및 제기 보관 등의 제사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효종대왕릉은 1659년 경기도 양주군 건원릉(현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의 서쪽에 조성하고, 능호를 익릉(翼陵)이라 하였으며, 그 앞에 재실을 건립하였다. 이후 1763년 석물에 틈이 생겨 현 위치로 옮겨오면서 능호를 영릉으로 고치고 재실도 함께 옮겨왔다.
일반적인 조선시대 재실은 재방, 안향청, 제기고, 전사청, 행랑채(대문 포함), 우물 등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조선 왕릉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멸실되어 원형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이곳 영릉 재실은 조선 왕릉 재실의 기본 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고, 공간 구성과 배치가 잘 되어 있다. 또한 경내의 재향과 관계있는 향나무와 느티나무, 회양목(천연기념물 제459호) 등의 고목도 함께 어우러져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공간 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대표적인 조선시대 재실 건축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재실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회양목..
【여주 효종대왕릉 회양목】
2005년 4월 30일에 천연기념물 제459호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약 30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4.4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는 동쪽이 29㎝, 서쪽이 43㎝이다. 수관 폭은 동서 방향이 4.4m, 남북 방향이 6.5m이다. 나무는 지상 15㎝ 높이 정도에서 동서 방향으로 분지 하여 전체적으로 반구형(半球形)의 단정한 수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가지의 끝이 지상 약 1m 높이까지 늘어져 있다. 효종대왕 영릉 재실 안에 위치하며 주변에 향나무와 느티나무 노거수가 함께 있다.
회양목은 경상북도 북부, 충청북도, 강원도, 황해도 등지의 석회암지대에 주로 자생하는 늘 푸른 넓은잎 나무인데 나무 높이가 4.4m에 이르는 큰 나무는 흔하지 않다. 원래 회양목은 작고 낮게 자라는 나무로 이와 같이 재실 내에 크게 자란 나무는 쉽게 찾아볼 수 없어 생물학적 가치가 큰 노거수이다.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빗물이 머금어 영롱한 보석처럼 빛이 납니다..
영릉 재실 참으로 운치가 있습니다..
이름 모를 꽃도 피어 있고..
여기에도 백송이 있네요..
한 번은 찾아보고 싶었던 세종대왕릉 탐방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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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제주 ~ 부산 여행(제주 : 보름, 부산 : 나흘)을 떠남에 따라 약 3주간 불방을 비우게 됨을 양해 바랍니다..
3주 후에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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