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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축제, 볼거리 등)/풍경(호남)

운림산방(21.3.28)

by 산사랑 1 2021.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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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남도미술관을 둘러본 후 남종화의 산실인 운림산방으로 이동하였다..

 

진도의 진산인 첨찰산 아래 운림산방이 들어서 있다..

【운림산방】

진도 운림산방(珍島 雲林山房)은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있는 명승지로 2011년 8월 8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80호로 지정되었다. 운림산방은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남화(南畵)의 대가이던 소치(小癡) 허련(許鍊)이 만년(晩年)에 기거하며 작품을 제작하였던 곳으로, 사랑채인 화실의 당호(堂號)이다. 허련이 49세 때인 1857년(철종 8)에 귀향하여 건립한 것이다.

 

허련은 시(詩), 서(書), 화(畵)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칭송되었는데, 20대에 대흥사(大興寺)초의선사(草衣禪師)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워 남화의 대가가 되었다. 특히 헌종의 총애를 받아 임금의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으며, 왕실 소장의 고서화(古書畵)를 평하기도 하였다. 허련은 고부 현감(古阜縣監)을 거쳐 무과에 합격하고 관직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대표작으로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 「완당선생해천일 립상(阮堂先生海天一笠像)」 등이 있고, 『몽연록(夢宴錄)』 등의 저서가 있다. (출처 : 다음 백과)

 

이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은 느낌이 드네요..

진도읍의 동쪽이자 진도의 최고봉인 첨찰산 서쪽 골짜기에 자리 잡은 운림산방은 조선 시대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 선생이 말년인 1857년 지어 임종 때까지 생활하던 화실이다.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운림산방은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광으로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이다. 색색으로 핀 꽃을 보면 봄바람을 느껴도 좋지만 소치기념관에서 일가를 이룬 남종화의 대표작을 만나보는 것도 빠트릴 수 없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소치 선생을 비롯해 미산 허형과 남농 허건 등 4대 5명으로 이어지는 일가의 화맥을 느낄 수 있다.

 

거대한 동백나무로 동백꽃이 많이 떨어진 것도 운치가 있습니다..

다리를 지나면 연못이 나옵니다..

운림산방의 앞마당에는 커다란 연못으로 방지원도의 형태로 외곽은 네모나고 그 안에 동그라미가 있기 때문에

외방내원(外方內圓)의 형상이라고도 하며, 연못의 한가운데 위치한 섬에는 허련이 심었다는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다.

다리 아래에서 본 연못..

운림사로 허련의 화상을 모신 곳이다..

소치 허련의 화상..

허련은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임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많았던 그는 20대 후반에 해남의 두륜산방에서 초의선사의 지도 아래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보고 그림을 공부했다. 1840년 33세 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평생 가장 소중히 모신 스승 추사 김정희를 만나게 되어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받았다. 비록 남도의 섬에서 출생하기는 했지만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질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시(詩), 서(書), 화(畵)에 모두 능한 삼절을 이루게 되었다. 소치는 허유(許維)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중국 당나라 남종화의 효시로 알려진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서 허유라고 명명한 것이다.

 

사천사로 소치의 문중 제각으로 매년 한식날 소치 선생의 6대조 가문이 춘향대제를 봉행하는 건물이다.

소치 선생이 기거했던 초가집..

소치 허련은 1856년(철종 7) 그의 스승 추사 김정희가 죽은 후 49세가 되던 다음 해에 고향인 진도로 내려와 초가를 짓고 거처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곳의 이름을 처음에는 운림각(雲林閣)이라 하고 마당에 연못을 파서 주변에 여러 가지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을 만들었다. 소치는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면서 그림을 그렸다.

 

소치 허련은 남종화에 심취했으며, ‘소치’라는 아호는 스승인 김정희가 내려주었는데 원나라 때 사대가의 한 사람이었던 대치 황공망을 본떠 지은 것이다. 추사는 소치의 화재를 두고 “압록강 동쪽에서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옛날 선비들은 학문을 이르는 문사철(文史哲)과 문예를 통칭한 시서화를 소양으로 모두 갖추어야만 지식인으로 인정받았다. 소치는 시서화로 당대를 휘어잡은 대가였는데 특히 묵죽을 잘 그렸다. 김정희의 글씨를 따라 흔히 추사체를 썼다고 한다.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추강만가요도(秋江晩橋圖)〉, 〈노송도병풍(老松圖屛風)〉 등 다수의 작품이 전해진다.

 

초가와 홍도화가 멋지게 어울리네요..

운림산방의 기와집은 현재 보수중입니다..

참으로 연지가 운치가 있고 연꽃이 필 때가 되면 예쁠 것 같네요..

소치기념관으로 운림산방 5대의 작품과 수석, 도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내부 전시물은 별도 작성)..

다른 각도에서 본 연지..

진도의 진산인 첨찰산 주위의 여러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 안개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이

소치가 그린 한 폭의 산수화를 떠올리게 하며, 운림산방이란 옥호가 바로 그러한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