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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북알프스
풍경(축제, 볼거리 등)/풍경(서울, 경기)

화개산(21.8.14) 추억을 찾아서

by 산사랑 1 2021.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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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산 산행 2021. 08. 14일 토요일)】

 

교동도(喬桐島)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하는 면적이 44.32㎢ 섬으로 신라 경덕왕 때 교동현이라는 지명을 부여받았고, 조선시대 강화도호부와는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존속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강화군에 편입되었다. 교동도는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양사면과 내가면이 있고, 남쪽으로는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가 있고 북쪽으로 불과 2~3㎞의 바다를 끼고 황해도 연백평야가 있는 북녘 땅이 지척인 곳으로 6.25 전쟁 당시 이북 황해도 및 인근 주민들이 피난처로 임시 거주하던 곳이다. 종전 후 북쪽 고향땅만 바라보며 돌아갈 날만 하염없이 기다리던 실향민들의 60여 년 세월이 그대로 남아있기에 시간이 1960년대에 머물러 있는 섬이다.

 

교동도는 작아 보이는 섬이지만 이곳에는 현재 17개리에 약 3,200명이 살고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섬이다. 섬은 간척사업을 하여서 인지 섬의 서쪽으로 제법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교동도에서 재배된 쌀은 미네랄이 풍부해서 인기가 좋다. 예전에 다녀온 백령도의 경우에도 주민들 대다수의 주업이 농업인 것과 같이 섬에 의외로 농지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교동도는 고려시대부터 왕족들의 유배지로 활동되었으며, 특히 연산군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1506. 9. 2일 교동으로 유배되어 11.6일 사망 시까지 교동에 유배되어 위리안치되었으며, 유배지는 신골(봉소리), 연산골(고구리), 읍내리 세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가장 높은 산은 화개산(華蓋山, 260m)으로 이 섬의 주산을 이루며, 봉황산(75m)·율두산(89m)·고양이산(35m)·수정산(75m) 등 모두 100m 이하의 낮은 구릉들이다. 화개산의 명칭은 산정의 형태가 솥뚜껑을 덮어 놓은 것 같다고 하여 화개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화개산 정상 강 건너는 북녘땅..

▶10:03분 교동농수산물판매주차장에서 트레킹 시작(휴식시간 포함 2시간 40분 트레킹)

 

건강셀프등산회 제771차771 산행은 강화 화개산이 추진되었으며, 서울 교대역에서 07:0007:00 출발하여09:00 고구저수지에 도착하여 연꽃을 둘러본 후 들머리인 교동농수산물판매주차장에는09:55분에 도착하여 잠시 정비를 한 후 산행을 시작하였다. 화개산은 건셀에서 세 번 다녀온 코스로 첫 번째는 2012.12.15(309차 산행) 창후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갔었고, 두 번째(2016.01.20. 일(2016.01.20./ 471차 산행)와 세 번째(2021.8.15. 일(2021.8.15./ 712차 산행)는‘14년에 완공된 연육교를 통하여 찾았다. 사실 섬 트레킹을 할 경우 배를 타고 가야 제 맛이 나는데 연육교가 완성되어 이제는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낭만이 사라져 추억 하나를 빼앗겨 버린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산행 추진 : 교동농수산물주차장~연산군 유배지~화개약수터~화개산 정상~화개사~고라니 산책로~순례자의 교회~대룡시장

• 교동 농수산물 판매 주차장(10:03) ~ 화개산 정상(10:40)(들머리에서 약 37분)

 

이번 산행은 교동농수산물판매주차장 ~ 연산군 유배지 ~ 화개 약수터 ~화개산 정상 ~ 화개사로 진행하였으며, 연산군 유배지는 현재 공사 중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잠시 후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다고 추증되는 고구리 한증막을 잠시 보고 천화문을 지나 올라갔으며, 연산군 유배지는 화개정원 공사로 통과하였다.

 

화개산 약수터 방향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다는 한증막을 잠시 구경하고..

천화문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을 합니다..

연산군 위리안치소로 공사 중이어서 통과하였다.

연산군 유배지는 유배 문화관이 설치되어 고려와 조선시대 유배된 폐군과 왕족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비롯하여 연산군의 유배에 대하여도 자세하게 설명을 해놓았다.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1506. 9. 2일 교동으로 유배되어 11.6일 사망 시까지 교동에 유배되어 위리안치되었으며,유배지는 신골(봉소리), 연산골(고구리), 읍내리 세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실 교동도는 고려시대부터 왕족들의 유배지로 활용되었으며, 특히 광해군과 연산군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조선의 왕족으로는 안견에게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하고 수양대군에게 반기를 들었던 안평대군은 교동도로 유배 와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또한 광해군에 의해 능창대군과 영창대군이 교동도로 유배 와서 죽음을 당했다. 아이러니하게 광해군도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이곳으로 유배되었다가 제주도에서 병으로 죽었다.

 

연산군은 재임기간 중에 어머니 폐비 윤 씨 복위 문제로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일으켜 사림파를 제거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오사화는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사초에 수록한 조의제문이 문제가 되어 김종직은 부관참시(관에서 시체를 끄집어내어 죄를 주는 것)를 당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갑자사화는 폐비 윤씨 사건에 관련된 김굉필, 이극균이극균,윤필상 등 훈구파 외 사림파 등 많은 대신들을 숙청하였고, 한명회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연산군 유배지를 지나 약 12분 후에 화개 약수에 도착하여 물 한잔을 마셔보니 화개 약수는 예나 지금이나 물이 단것 같았다. 화개 약수를 지나 효자 묘를 찾아보기로 하였으나 묏자리는 발견하지 못했으며, 입간판만 있었다. 다시 되돌아와 성혈바위가 나오는 산행길을 따라 진행하였으며 잠시 후 예전에 북벽망루가 있었던 조망처가 나와 잠시 조망을 하였다. 그곳에서는 성주산 및 지난주 다녀온 진강산, 국수산과 석모도 등이 그림같이 조망되었다. 다시 출발하여 청동기 시대의 성혈바위를 지나 화개산 정상에는 들머리에서 약 37분이 소요된 10: 40분에 도착하였다.

 

화개 약수는 예나 지금이나 물이 단것 같습니다..

꽃에는 나비들이 한가로이 날아다니고..

효자묘는 찾지 못하고 입간판만 있더군요..

조망처에서 본 범부채..

예전 북벽망루가 있었던 조망처에서 본모습으로

앞쪽에 성주산 뒤쪽은 지난주 다녀온 진강산, 국수산과 석모도가 보이고..

청동기 시대의 성혈 바위..

누리장나무..

정상 앞에 있는 산불감시탑..

정상 인증, 뒤쪽이 북녘땅인데 희미하네요..

• 화개산 정상(10:53) ~ 대룡시장(12:45)(화개산 정상에서 약 1시간 52)

 

화개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서쪽으로는 볼음도와 서검도아차도주문도 등이 섬이 다도해처럼 펼쳐지고 동북쪽으로는 북녘땅이 잡힐 듯하고 시야가 좋으면 북녘 개성의 송학산이 보인다고 하는데 시야가 좋지 못하여 볼 수가 없었다정상에서는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 눈앞에 고향을 두고도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이 얼마나 많이 여기에 올라 와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 깊은 슬픔에 잠겼는지를 생각하니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정상에서 약 13분 정도 조망을 하면서 휴식을 취한 후 화개사 방향으로 하산을 실시하였다.

 

정상 앞쪽 조망처에서는 강화의 섬들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고..

정상에서 본 풍경(12년 당시 사진)/석모도, 매바위, 상주산, 기장섬, 미법도 등이 보입니다..

선착장..

정상에서 본 북녘 땅(12년 사진)..

정상에서 조금 진행하면 청동기 암각화가 나오고 5분 후에 강화도 향토유적 29호인 화개산 봉수대가 나오는데, 봉수대 가는 길을 화개정원 조성공사로 통제를 하고 있었다. 봉수대에 도착하니 그곳까지 산을 깎아 공사 중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무슨 공사를 하는 것이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산을 완전히 황폐화시키면서 까지 공사를 해야 되는지 의문이 들었으며, 다음에 다시 확인을 해 봐야겠다. 산을 깎는 바람에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고구리 방향이 한눈에 들어왔으며, 아침에 들렀던 연꽃단지도 눈에 들어왔다.

 

청동기 암각화로 안내표지판이 희미해서 16년 당시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화개정원 공사로 봉수대 방향을 통제하더군요..

공사 핑계로 산을 완전히 깎아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고구리 방향이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아침에 들렀던 고구저수지의 연밭이 보이네요..

고구저수지에도 둘레길을 조성하는 것이 보이고..

강화도 향토유적 29호인 화개산 봉수대..

봉수대에서 조망을 하면서 약 10분간 휴식을 취한 후 화개사 방향으로 진행을 하였으며, 가는 길에 화개 면사무소와 초등학교도 볼 수 있었다. 봉수대에서 10여분 진행하니 화개사가 나왔다. 화개사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목은 이색이 공부하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의 화개사는 새로 지은 것 같이 깨끗하였으며, 절 한쪽에는 수령 약 220년이 넘는 멋진 소나무가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서있었는데 상당히 운치가 있었다. 절 한쪽에 상사화, 트랜치메리골드트렌치메리골드,맨드라미 등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고, 사람 얼굴을 한 형상의 나무도 있었다.

 

파노라마로 본 봉수대에서 본 풍경(12년 사진)..

봉수대 턱밑까지 도로가 나고 공사를 한다고 하니 산을 완전히 훼손하고 있네요..

여기서도 고구저수지 방향이 잘 보입니다..

멋진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화개 면사무소와 초등학교도 보이네요.. 

수령 약 220여 년을 자랑하는 소나무와 화개사가 보입니다..

호수인 소나무..

화개사에는 상사화가 곳곳에 심어져 있더군요..

화개사 본당..

트랜치 메리골드..

맨드라미..

사람의 형상을 닮은 나무(우측)..

화개사 전경..

화개사에서 약 10분 정도 구경을 하고 면사무소 방향으로 약 20분 정도 내려가니 고라니 산책로가 있는 곳이 나왔고 그곳에서 면사무소 방향으로 진행하였다면사무소 방향으로 약 10분 정도 진행하니 제주 올레길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한 순례자를 위한 조그만 교회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화개사를 떠나갑니다..

면사무소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이곳이 고라니 산책로라고 하네요..

 

순례자의 교회에 도착하니 맛있는 냄새가 나서 확인을 해보니 커피 볶는 냄새였으며, 잠시 둘러본 후 순례자의 교회를 맡아 관리하고 계시는 목사님에게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는지 확인하니 가능하다고 하여 들어가서 방금 볶은 커피 한잔을 먹으면서 약 30여분 담소를 나누었다. 커피는 향만큼 맛이 있었으며, 커피를 마시고 대룡시장에는 화개산 정상에서 약 1시간 52분이 소요된 12:50분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순례자의 교회와 대룡시장은 별도 작성하겠다)

 

순례자의 교회..

60년대를 엿볼 수 있는 대룡시장..

 

▶트레킹 후기

 

이번 산행은 11년 전에 다녀온 화개산 산행의 추억을 찾아 진행하였으며, 이번에도 조망이 좋지 못하여 북녘 땅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정상 부근까지 산을 깎아 화개정원 조성공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화개산은 교동도라는 섬에 있어 배를 타고 들어갈 때가 섬 여행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연도교로 연결되어 섬 산행의 묘미는 반감되었지만 주변의 여러 볼거리들과 60년대를 엿볼 수 있는 대룡시장을 끼고 있는 점 등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다음은 순례자의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