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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축제, 볼거리 등)/풍경(서울, 경기)

강화 연미정, 희우당, 조양방직(21. 9.18)

by 산사랑 1 2021.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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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교산 선상 세례, 고종 천도공원을 견학한 후 연미정, 철종 친구집, 그리고 조양방직을 둘러보면서 강화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월곳진과 조해루..

【월곶진과 조해루】

병자호란 이후 북방민족의 침입을 대비하여 국방상 매우 중요한 요충지로 인식된 강화도에 군사조직으로 5진 7보가 설치되었고 방어시설로는 강화산성, 외성, 53 돈대가 숙종대에 설치되었다. 그중의 월곶진은 조강(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진 강)이 서해로 나가면서 강화해협인 염하와 서해로 나누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문수산성과 마주하고 있는 곳에 위치한 월곶진은 다른 진과 보보다는 높은 종 3품인 첨사가 담당하는 군사조직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산하에 옥창돈, 월곶돈, 휴함돈, 적북돈을 두었다. 월곶진은 한강과 임진강으로 가는 배가 썰물일 때 만조가 되기까지 닻을 내리고 기다렸던 곳이며, 한양에서 배를 이용하여 강화로 올 때 이곳에서 내려 검문을 받고 강화 동문을 거쳐서 강화로 들어가는 중요한 교통로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조해루(潮海樓)는 숙종 5년(1679)에 지어져 강화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검문하는 검문소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복원된 조해루는 월곶돈대와 연결되고 남쪽의 외성과는 연결할 수 없는 상태이다. 홍예식 성문을 만들고 그 위에 누각을 지은 전형적인 성문 건축물이다. (출처 : 한국 NGO신문)

 

* 갑곶돈대에서 적북돈대에 이르기까지는 7곳에 돈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접근이 가능한 곳은 월곶돈대뿐이다. 강화외성의 출입문인 6개의 문루(안해루, 공조루, 참경루, 진해루, 북파루, 조해루) 중에서 광성보의 안해루, 덕진진의 공조루, 용진진의 참경루는 복원을 마쳤고, 월곳진의 조해루가 2011년에 복원되었고 아직 갑곶진의 진해루와 북파루는 복원되지 않는 상태이다.

 

'20. 7.18일 탈북민이 월북한 배수로로 현재는 그물망을 설치하였더군요..

한국 정착 3년 만에 다시 북한으로 넘어간 탈북민 김모(24) 씨의 '월북 루트'가 인천 강화군 연미정 인근 배수로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준락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28일 "군은 (인천 강화읍 월미곳에 있는) 연미정 인근 배수로를 통해서 월북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월북한 김씨는 2017년 귀순 전 개성시 개풍군 해평리에서 거주하며 농장원으로 일했으며 재입북 전 동료 탈북민 성폭력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김씨는 지난 17일 지인인 탈북민 유튜버의 차량을 이용해 강화도로 이동했고, 다음날 오전 2시 20분쯤 택시를 타고 월곳리 일대로 간 뒤 하차한 것으로 파악됐다. 군은 월곳리 일대에서 김씨 이름이 적힌 소지품이 들어있는 가방도 발견했다. 강화도 북동쪽에 있는 월곶리는 가장 가까운 북한 해안과 직선거리로 3㎞ 가량 떨어져 있는 곳이다.(출처 : 한국일보 등에서 발췌)

 

해바라기가 피어 있고..

황형택지와 월곶돈대..

【황형택지】

조해루에서 월곶돈대로 공터에 ‘莊武公黃衡將軍宅址碑’라고 쓰인 비 하나가 서 있다. 사각형의 난간으로 두르고 비를 보호하고 있다. 비가 세워진 이곳은 삼포왜란 당시 왜적을 무찌르고 1512년 함경도 지방 야인(野人)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등 국가에 공로가 많은 조선 중기의 무신인 황형(1459~1520) 장군에게 조정에서 땅을 하사하였다고 알리는 비이다.(출처 : 한국 NGO신문)

 

【월곶돈대】

월곶돈대는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 활동을 사전에 방어하고 관찰할 목적으로 해안지역에 돌로 쌓은 소규모 방어시설물이다. 특히 월곶돈대는 강화도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색을 함으로써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돈대이다. 또한 한강이나 임진강을 따라 거슬로 올라가는 세곡선이나 상선이 나루나 포구에서 조류를 기다리는데, 주로 김포의 강령포, 조강포, 마근포 등을 많이 이용하였고, 월곶돈대 앞은 서해에서 들어오는 배가 닻을 내리고 조류를 기다렸던 곳이었다. 타원형에 가까운 돈대는 홍예문을 두었으며 조강과 염하, 서해를 조망하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관방시설이다. 네모진 돌을 다듬어 성벽을 쌓고 위에는 여장을 설치하고 한 개의 총안을 두었다. 바다 쪽으로 3곳에 포를 쏠 수 있는 포구(砲口)를 내었다.

 

월곶돈대의 가장 높은 위치에는 ‘연미정’이라는 정자 한 채가 있다. 정자 뒤에는 500살이 넘는 느티나무가 2그루가 자라고(한그루는 2019.9월 태풍 링링에 의거 부러졌음), 건물 기단 옆에는 석비가 한 기 있다. 이 정자는 최초 건립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며, 1244년(고종 31)에 시랑 이종주(李宗胄)에게 명하여 구재생도(九齋生徒)를 이곳에 모아놓고 하과(夏課 : 여름철에 50일 동안 절에 들어가 공부하던 일)를 시켜 55명을 뽑았다는 기록이 있다.(출처 : 한국 NGO신문)

 

느티나무는 2019년 발생한 태풍 링링에 의해 부러져 현재는 그루터기만 남아 있네요..

연미정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있더군요..

【연미정】

월곶돈대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연미정’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6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 정화사업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월곶리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서 물길의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甲串)의 앞을 지나 인천 쪽으로 흐르는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이곳은 강화 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연미정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서쪽으로 강화 들판과 강화산성이, 남으로 염하와 문수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정자는 높다란 주초석(柱礎石)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자 양쪽에는 5백 년 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었으나 2019년 제13호 태풍(9.7일 한반도 상륙) 태풍 링링에 의해 한그루가 안타깝게 부러졌다. 예부터 느티나무는 장수목으로 수명이 길고 수형이 단정하며 수관 폭이 넓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정자나무이기도 하다. 정자는 고려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며, 1244년(고종 31)에 시랑 이종주(李宗胄)에게 명하여 구재생도(九齋生徒)를 이곳에 모아놓고 하과(夏課: 여름철에 50일 동안 절에 들어가 공부하던 일)를 시켜 55명을 뽑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전라좌도 방어사로 큰 공을 세운 황형(黃衡)에게 정자를 하사하였으며, 연미정 기단석 좌측에 비 하나가 있는데 이곳에는 ‘莊武公黃衡將軍宅址’라고 쓰여 있다. 현재도 황씨문중의 소유로 되어 있다. 연미정은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1627년 1월, 후금 군사 3만여 명이 압록강을 넘어 조선을 침입한 정묘호란 당시 화의가 성립한 곳이 연미정이다. 이곳은 민간인 통제구역 이북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에 제한이 있었으나 현재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해제되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관람하고 있다.(출처 : 다음 백과를 중심으로 재조정)

 

연미정 앞에서 공연 녹화를 준비하고 있더군요..

태풍에 의해 쓰러진 느티나무 그루터기에 새잎이 나 있습니다..

강 건너 북녘 땅..

앞에 보이는 섬이 유도로 '96년 대홍수 때 떠내려온 황소를 5개월 만에 구조한 비무장지대 섬..

【유도(留島)】

연미정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섬이 있으니, 머무르섬, 바로 유도(留島)다. 머무르섬(유도)은 육지에서 500여 m 떨어져 한강하구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한 무인도로, 월곶면 보구곶리 산 1번지와 2번지 두필지로 되어 있다. 이 섬은 까마득한 옛날 홍수에 떠내려오다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전설과 함께 '머무른 섬→머무르섬'이 됐다고 전해온다. '머무르'가 변음(變音)되어 머머리, 머머루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유도(留島), 사도(巳島)라는 한자 지명이 사용되기도 한다. 지금은 무인도이지만 6·25 한국전쟁 이전에는 농가가 두 채 있었고 농사도 지었다고 한다.

 

1996년 대홍수 때 황소 한 마리가 떠내려와 이곳 유도에 고립되었다. 표류 5개월, 하루하루 말라가는 소를 우리 해병대가 데려와 '평화의 소'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소는 제주로 장가가 천수를 다했다. (출처 : 오마이 뉴스)

 

이곳 끝 지점이 북한과 가장 가깝기에 그곳까지 가서 월북했다는 설도 있음..

국악 관련 공연  녹화를 위해 단원들이 앞쪽으로 이동합니다..

한쪽에 모여 공연 관련 의견을 조율하고..

드디어 공연 녹화가 시작됩니다..

북, 장구, 괭가리, 피리 등을 불면서 진행을 합니다..

하늘에는 멋진 뭉게구름이 떠 있고..

날씨가 환상적입니다..

공연이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2회에 걸쳐 재녹화를 하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공연 녹화 연장..

연미정을 내려와서 철종 친구 집을 방문했습니다..

철종이 친구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희우당으로 현 거주인이 새로 깨끗하게 단장을 하였다고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했다고 하네요..

앞뜰에 맨드라미가 피어 있고..

'20년 KBS 7 '불타는 청춘'에서 방영을 한 곳이네요.. 

희우당을 본 후 조양방직을 들렀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외부만 보고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입구로 들어가면 예전 출근버스가 있네요..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당시의 물건들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마당으로 들어서니 공중전화기가 세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노동자들이 짬이 나면 전화를 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한쪽 편에 황소상 아래 건물이 있는데 그것이 금고였다고 한다. 금고 규모를 보니 당시 이곳이 얼마나 부유했는지 미루어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입구를 따라 들어서면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전에 사용하던 공중전화기..

이곳은 요즘 찻집으로 변신하여 주말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주문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네요..

황소상 아래 벽돌 건물이 보이는데 이것이 금고였다고 하며, 금고 규모를 보니 당시 이곳이 얼마나 부유했는지 미루어 짐작을 할 수 있네요..

뜰에는 예쁜 꼿들이 피어 있고..

외부만 한 바퀴 휘둘러 보고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강화 별장으로 이동을 합니다..

야외에서 등심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 잔으로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강화 별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