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서원과 독락당을 둘러본 후 인근의 솔 숲에서 식사를 하고 첫째 날 세번째 여정인 세계문화유산인 양동마을 탐방에 나섰다. 양동마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전인 2010년 봄에 다녀온 이후로 그 동안 3회 갔다왔지만 이번에 9년만에 다시 찾았다. 처음 갔을 때에 비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많이 정비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으며, 예전보다 가게도 많이 생긴 것 같았다.
보물 제412호인 향단..
【양동마을】
경주 양동마을(慶州 良洞마을)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북쪽 설창산에 둘러싸여 있는 유서 깊은 양반 집성촌으로 1984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 제189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 7월 31일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제 34차 회의에서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협약 선포 40주년 기념 세계 최고의 모범 유산(The Best Model Case)로 선정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가 크며,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조선시대 양반 씨족마을로 문묘 종사와 종묘 배향을 동시에 이룬 재상이자 성리학자요 영남학파의 선구자가 되신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출한 6대 국반(國班) 여주이씨(광산 김씨, 반남 박씨, 은진 송씨, 덕수 이씨, 진보 이씨가 6대 국반), 이조판서와 우참찬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된 우재 손중돈 선생을 배출한 명문 도반(道班) 경주손씨 양성이 서로 협동하고 경쟁하며 600여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영남 남인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문과 31명 포함 과거 급제자가 총 116명에 달했으며, 이밖에도 수많은 학자와 충절대의 명장,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면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양동마을은 씨족마을로 사돈 관계에 있는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양대 가문이 거주하여 오면서 대외적으로는 서로 협력하고, 내부적으로는 서로 대립과 경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유교가 근간인 조선사회에서 가문은 지켜야 할 절대가치 중의 하나로, 두 가문의 이러한 경쟁의식은 마을 내에 세워진 건축물들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하였고, 오늘날 전통마을 중에 가장 수준 높은 건물들을 보유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양동마을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기와집의 수는 전국 최다로 이를 포함하여 국보 1점, 무첨당(보물411호) 향단(보물412호) 관가정(보물442호) 손소선생영정(보물 1216호)등 4개의 국가지정 보물과 12개의 중요 민속자료, 경상북도지정문화재 8점 등 도합 25점의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하나의 살아있는 건축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는 7개소의 국가 지정 전통마을이 있으나 마을의 역사와 규모 및 보존상태, 문화재의 수와 전통성 및 가치, 그리고 뛰어난 건축과 조경양식,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때묻지 않은 향토성 등의 면에서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가치를 지닌 마을로 평가받고 있다.(출처 ; 위키 백과 등을 중심으로 재편집)
옥산서원에서 조금 지나 있는 솔숲에서 식사를 하고..
식사장소에서 본 모습..
기품있는 소나무 세 그루가 서있네요..
반대편에서 본 모습..
경주 양동마을은 입장료 1인 3,000원을 지급하고 들어가야 되며. 붉은 표시가 이번에 다녀 온 코스입니다..
새로 조성된 유뮬전시관과 벽화..
양동초등학교를 지나면서 본 양동마을..
보물인 향단도 보이고..
처음 들렀던 곳인 손종로 정충비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
【손종로 정충비각】
이 비각은 조선 인조(仁祖) 14년(1636) 병자호란 때 순절(殉節)한 낙선당(樂善堂) 손종로(孫宗老, 1598~1636)와 중실한 노(奴) 억부(億夫)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正祖)7년(1783)에 임금의 명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정충비각은 앞면과 옆면이 각 1칸으로 팔작(八作)지붕이어서 가구방법이 특이하다. 옆에 있는 노(奴)의 비를 세운 충노각(忠奴閣)은 정충각(旌忠閣)보다 건물이 못한 편이다. 낙선당은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의 현손으로 광해군(光海君) 10년(1618) 무과에 합격하여 남포현감(藍浦縣監)을 거쳤다. 병자호란 때 경기도 이천(利川)의 쌍령(雙嶺)전투에서 따라온 노(奴) 억부와 함께 전사하였는데, 시체를 찾지 못하고 옷가지만으로 장례를 지냈다. 비의 글은 우승지(右承旨) 이정규(李鼎揆)가 짓고 글씨는 정충필(鄭忠弼)이 썼다.
관가정 올라가는 길에 있는 초가집으로 감이 무성하게 달렸네요..
반대편에서 본 모습..
관가정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로 마을의 정자목 노릇을 하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이 나무 아래서 동제를 지낸다.
보물 442호인 관가정..
【관가정】
관가정은 경주 양동마을 초입의 서쪽 언덕, 물봉동산 아래에 있다. 양동마을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이른바 ‘물(勿)’자 형국의 명당 터인데 그 첫 번째 획이 뻗어 내려오는 지점에 관가정이 자리 잡았다. 관가정의 ‘관가’는 ‘농사짓는 풍경을 보는 정자’라는 뜻이다. 곡식을 심어 자라는 기쁨을 보는 것처럼 자손과 후진을 양성하겠다는 뜻이다.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1463~1529)이 지었다. 손중돈은 종가인 서백당(書百堂)에서 태어났으나 분가하여 관가정을 지었다. 서백당은 손중돈의 외조카 회재 이언적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1514년(경주신문, 2013년 6월17일자)에 창건됐다고 한다. 관가정은 정자이면서 살림집이다. 현존하는 살림집 중 임진왜란 이전에 지은 집이 10채 안팎인데 양동 마을에 네 채나 있다. 손씨 종가인 서백당과 이씨 종가인 무첨당, 관가정과 향단이다. 이 중 관가정과 무첨당, 향단은 보물로 지정됐다. 관가정으로 올라가는 길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마을의 정자목 노릇을 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이 나무 아래서 동제를 지낸다.
관가정의 주인 손중돈은 조선 중기 대표적 학자와 관료의 한사람이다. 그의 생은 세조에서 중종에 이르는 다섯 임금을 거쳤지만 주조 성종, 연산군, 중종까지 3대 동안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조선 500년을 통해 청백리에 이름을 오른 사람은 모두 218명인데 손중돈은 중종이 천거한 35명 중 한명으로 청백리에 이름을 올렸다.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에서 발췌)
관가정에서 바라 본 모습..
관가정에 있는 향나무..
관가정에서 향단가는 길에 있는 초가집이 상당히 운치 있습니다..
이 길을 돌아서면 향단이 나옵니다..
보물 제 412호인 향단으로 이언적(李彦迪 : 1491~1553)이 경상감사로 재직할 때 세운 것..
【향단 (香檀) 보물 제412호】
향단은 조선시대의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이 병든 모친을 핑계로 벼슬을 사양하자 중종이 그를 경상감사로 임명하면서 모친의 병간호를 하도록 지어준 집이다. 이언적은 1540년에 이 집을 지어,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 노모를 모시고 집안을 꾸려 형의 출사를 도운 동생 이언괄에게 선물하였다고 한다. 향단은 원래 99칸이었으나 화재로 불타 없어지고 현재 51칸만 남아있다. 전체적인 건물의 배치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건물의 몸체는 월자형이고, 일자형의 행랑채와 칸막이를 둠으로써 용(用)자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다른 일반주택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이한 평면구조이므로 한국 주택건축사 연구에 있어 주목받는 건물이다.
향단에서 반대편 방향을 본 모습..
향단은 현재 출입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장세주 할머니 가게로 초가와 장독대가 정겹습니다..
길 건너편에 잇는 심수정의 모습
보물제 411호인 무첨단으로 들어갑니다..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 종가에 16세기에 지어진 제청의 기능이 강했고, 문중 회의를 했던 큰 사랑채라고 하네요..
무첨당에 있는 건물들로 왼쪽은 살림집/ 오른쪽은 사당
길건너 가는 곳에 있는 연밭..
국가민속문화재 제81호 심수정으로 회재 이언적 선생의 동생인 농재 이언괄 공을 추모하여 1560년에 지은 정자로
여주이씨 종가인 무첨당과 향단을 보기 위하여 건물을 ㄱ 자로 꺽고 그 자리에 누마루를 지었다고 함.
【심수정(心水亭) 중요민속자료 제81호】
심수정은 수령이 수백년은 됨직한 회화나무 네그루가 정자를 둘러싸고 있다. "물과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겠다" 는 뜻으로조선 명종 15년(1560년) 이언괄의 아들 이응기나 손자 이의주가 처음 지은것으로 추정되며 철종 때 화재로 소실된것을 1917년에 중건했다고 한다.
심수정 마당의 향나무가 멋지네요..
심수정을 지나 강학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초가..
국가민속문화재 제 83호인 강학당..
【강학당】
여강 이씨 문중 서당으로 대사간을 지낸 지족당 이연상 선생이 학생들을 가르친 곳이다. 이 마을에서 월성 손씨 문중 서당인 안락정과 쌍벽을 이루며 조선 고종 4년(1867)경 지었다고 한다. 심수정(중요민속자료 제81호) 서쪽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행랑채는 서당 동쪽 심수정 사이에 따로 지어 놓았다. (출처 : 위키백과에서 발췌)
심수정, 강학당을 본 후 다시 길을 건너 서백당 등을 보러 가는 길에서 보았던 초가집들과 우물..
수졸당 가기 전에 본 모습으로 마치 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네요..
국가민속문화재 제78호인 수졸당..
【수졸당】
조선 중기의 학자 이언적(李彦迪)의 손자 수졸당(守拙堂) 이의잠(李宜潛)의 호를 따서 지은 집으로 1616년(광해군 8)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를 심고 아담하게 가꾼 ‘안골동산;이라는 비탈진 언덕이 집을 감싸고 있어 높은 곳에 있어도 아늑한 느낌을 준다.
국가민속문화재 제74호인 사호당 고택
【사호당】
사호당 이능승 선생이 살았던 집으로 '사호당고택'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헌종 6년(1840)에 지었으며 일반적인 'ㅁ'자 기본 평면을 가진 양반집이다. 크게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ㄷ'자형 안채에 '一'자형 행랑채가 놓여 'ㅁ'자형을 이루고, '一'자형 사랑채가 안채와 연결되어 있다.
서백당 가는 길에서 본 모습으로 풍경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서백당..
【서백당】 : 중요민속자료 제23호
양동마을을 관람 하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가봐야 할 곳은 안골에 있는 서백당(書百堂)이다. 서백당은 양동 마을에서 가장 유서 깊은 건물이며, 양동마을의 모든 건물의 시작점으로 양민공 손소 선생이 지은 건물로 월성 손씨의 종택이다. 손소의 아들 우제 손중돈 선생과 외손자 회재 이언적 선생 두분 모두 이집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서백당에는 3명의 인물이 태어나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중 2명은 손중돈 선생과 이언적 선생이고 한명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외손자인 회재 선생이 태어난 후부터 시집간 딸이 서백당의 산실에서는 마지막 인물은 손씨 가문에서 태어나야 하기 때문에 몸을 푸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송첨종택은 일명 서백당으로 불린다..
초가로 된 식당이 정겹네요..
송첨종택을 끝으로 양동마을 탐방을 마치고 도리마을 은행나무 숲으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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