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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대명산 산행기/서울,경기

군포 수리산(21.11.16)인기 백대명산 제45위

by 산사랑 1 2021.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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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수리산】인기 백대명산 제45위(산림청 미선정)

 

수리산(489m) 경기도립공원으로 안양시와 시흥시, 군포시와 그리고 화성군 반월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독수리가 치솟는 형상이라 하여 수리산(修理山)으로 불리며 견불산(見佛山)이라고도 하며, 산 정상에 오르면 군자 앞바다와 소래 염전 및 인천, 수원의 시가지까지 볼 수 있다. 수리산은 청계산(618m), 광교산(582m), 관악산(629m), 백운산(564m) 등 광주산맥을 구성하는 중요한 산지 중의 하나로 군포시 북서쪽에 있는 가장 큰 산으로 태을봉(489m)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슬기봉(451.5m), 북쪽으로 관모봉(426.2m), 북서쪽으로 수암봉(395m)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리산 산세는 북쪽으로 터진 말발굽 모양을 하고 있는데 말발굽 북동쪽 끝 줄기에 관모봉(426m)이 있으며, 상봉인 태을봉(489m)은 관모봉 남서쪽에 있다. 태을봉에서 반 바퀴 돌아서면 서편 줄기 중간에 독수리바위인 수암봉(395m)이 있으며, 산줄기가 휘돌아 가는 슬기봉과 고깔봉 일대에는 공공시설물이 있다. 수리산 산행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나고 산행의 맛이 좋은 곳은 태을봉에서 슬기봉까지 이어지는 암릉 구간과 수암봉이다. 제일 높은 태을봉에 서면 인천과 수원 그리고 안양시가지 뒤편으로 관악산과 삼성산 능선이 보인다. 북쪽 골짜기에 있는 담배촌은 조선시대 후기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이 담배를 가꾸며 숨어 지내던 곳으로, 지금은 순례지로 되어 있다.

 

수리산은 군포시와 안양시, 안산시를 연결하는 자연생태계 및 경관 보전기능을 갖춘 도심속의 '녹지섬'으로 주말 기준으로 일일 14,000명, 연간 140만 명이 이용하는 쉼터로 소요산, 청계산, 명성산, 철마산을 제치고 남한산성(1971년), 가평 연인산(2005년)에 이어 2009년 경기도 제3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수리산 면적 6.97㎢ 가운데 군포시가 4.3㎢로 가장 넓고 안양시 안양동 관내 2.55㎢,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 관내 0.12㎢ 등이다. 수리산은 전 사면이 비교적 완만하며, 능선 곳곳에 암봉이 있고 울창한 수림으로 조망이 좋으며, 진달래가 특히 많고 편리한 교통과 짧은 산행 시간으로 수도권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오며 안양시 만안구청 뒤편 기슭엔 삼림욕 코스도 있어 인근 주민들의 좋은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수리산 정상인 태을봉..

건강셀프등산회 제788차 산행은 군포 수리산이 추진되어 4명이 함께 하였다. 수리산은 6년 만에 다시 찾는 산으로 독수리가 치솟는 형상이라 하여 수리산(修理山)으로 불리며, 군포시 북서쪽에 있는 가장 큰 산으로 태을봉(489m)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슬기봉(451.5m), 북쪽으로 관모봉(426.2m), 북서쪽으로 수암봉(395m)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행 추진 : 명학역 ~ 관모봉 ~ 태을봉(수리산 정상) ~ 슬기봉 ~ 수암봉 ~ 천주교 성지

오늘 추진 코스가 수리산 4 개봉을 모두 타는 코스로 최고의 코스라고 할 것입니다..

관모봉 올라가는 길은 늦가을 냄새가 물씬 납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면서 여유롭게 진행합니다..

관모봉 올라가는 계단..

관모봉에 도착하고(09:43분/ 들머리에서 약 1시간 5분 소요)..

관모봉 정상에서 본모습으로 멀리 관악산과 삼성산이 보이고..

멀리 의왕 백운산 ~ 광교산 능선이 보이고..

관모봉 정상 인증..

태을봉 가는 내리막길..

태을봉에 도착했습니다(10:09분/관모봉에서 20분 소요)

【태을봉】

 최고봉인 태을봉(489m)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산신제가 행해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해 오고 있다. 일출 시 산 그림자가 태을(太乙) 형상을 연출해 군포의 제1경으로 꼽힌다. ‘태을’은 도교의 천제(天帝)를 지칭하지만 십간의 하나로 부귀의 근원으로 보기도 했다.

 

병풍바위를 지나갑니다..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는 슬기봉 정상과 서울 외곽순환도로가 보이고..

여기서도 날아볼까나..

고운 단풍이 물들고..

계속해서 각도를 달리하며 슬기봉이 조망됩니다..

칼바위로 그리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지나 온 능선길..

소나무 숲길도 지나왔습니다..

슬기봉에서 본모습(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이곳 슬기쉼터가 정상 역할을 합니다)..

이곳에서 군포 중앙도서관 방향으로 하산 합니다..

수암봉으로 진행합니다..

지나온 능선이 완만하게 보이네요..

슬기봉 정상을 통과하고(11:42분)

수암봉까지 1.52km 남았네요..

 6.25 당시 유해발굴 1호 지점을 지나갔다.

수리산 지역은 6.25 당시 1951. 1.30일 ~ 2.4일까지 국군 1사단, 미 25사단, 터키 여단 1개 대대가 칠보산 ~ 수리산 ~관악산을 연하여 전투를 했던 장소로 이곳에서 국군장병 유해 4구를 최초로 발견한 곳이다.

 

수암봉 갈림길로 수암봉 갔다가 이곳으로 되돌아와 수리산 성지로 하산합니다..

멋진 소나무가 자리 잡고..

외곽순환도로 위로 관모봉과 태을봉이 자리 잡고 있네요..

슬기봉과 지나 온 능선이 그림 같습니다..

수암봉 정상(13:20분 / 들머리에서 약 3시간 40분 소요)

수암봉은 수리산의 연봉으로 안산군의 큰산 이었고, 산봉우리가 흡사 독수리의 부리와 같다고 해서 "鷲巖" (취암)이라 불리었으나, 조선 말엽에 이르러 산세가 수려하다 하여 수암봉(秀岩峰)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안양시가 조망되고..

세월호 침몰 사고로 가장 고통을 받았던 안산시도 조망되고..

수암봉에서 다시 올라왔던 길로 내려갑니다..

헬기장에서 천주교 성지로 진행합니다..

수리산이 도립공원이군요..

천주교 수리산 최경환 성지입니다..

【최경환 성지】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은 충남 청양군 화성면이 고향으로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토마스 1821~1861)의 아버지이다. 최경환은 부인 이성례(마리아 1800~1840)와 담배촌 (안양9동)에 정착, 교우촌을 이루고 천주 신앙을 전파하던 중 1839년 천주교를 탄압하던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한양을 오가며 순교자들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불안해하는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던 중, 그 해 7월 31일 서울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압송되었다. 최경환은 배교(背敎)하라는 고문과 회유 속에서 신앙을 고수하며 모진 형벌을 받다가 그해 9월 12일 포청옥에서 장렬히 순교하였고, 부인 이성례도 그 이듬해 1월 31일 용산 당고개에서 참수되었다. 최경환의 시신은 담배촌에 묻혔다가 명동성당으로 천묘 후 다시 양화진 성당으로 옮겨졌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5월 6일에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

 

수리산 성지는 2000년에 순례지로 지정되면서 새롭게 문을 연 성지이다. 수리산 최경환 성지는 가묘와 함께 예수님의 고행을 표현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초기 한국교회의 역사와 순교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며, 전국 각지에서 연중 30,000여 천주교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용서해 줍니다. 그러니 사랑하세요..

단풍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하산길 버스정류장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 되므로 이곳으로 하산 시 차량이 없을 경우 고민을 해야 될 것이다..

 

오늘의 글 : 가족과 있는 매 순간이 기적이며, 당신은 매일 기적 속에 살고 있어요. 그러므로 가족을 사랑하세요.

 

2004년 사춘기 아들과의 소통이 단절된 일가족 5명이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태국 휴양지에 갔을 때 동남아를 강타한 9.1의 쓰나미가 태국 휴양지를 순식간에 휩쓸어 버렸다. 엄마가 나무를 붙잡고 있을 때 아들이 물에 떠내려 가면서 엄마에게 구조를 요청하였고, 엄마가 아들을 구하려 물속으로 띄어 들어 아들에게 다가가던 중 물속에 있는 나무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아들이 다시 엄마에게 다가와 나중에 두 사람이 함께 구조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아들은 병원에서 환자들을 둘러보면서 환자들이 호소하는 것이 육체의 교통이 아닌 눈앞에서 가족을 잃어버린 공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극심한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것이 가족과의 평범한 일상이었음을 절실히 느낀 아들은 엄마까지 잃어버릴까 극진히 간호하였다. 엄마를 간호하던 중 죽은 줄만 알았던 나머지 가족(아버지와 두 동생)이 동일한 병원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가족은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극한의 공포가 사라진 그 순간이 평범한 일상이 아니라 기적이라는 사실을 가족들은 온몸으로 깨달았다.

 

가족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매 순간이 기적 이므로 우리는 매일 기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기적을 소중히 여기세요" 그리고 사랑하세요. 사랑은 허다한 죄를 용서해 줍니다(베드로 전서 4장 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