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일본 북알프스
일반산 산행기/호남

익산 미륵산(22. 2.19)

by 산사랑 1 2022. 3. 17.
반응형

익산 미륵산 (22. 2. 19일 토요일

 

미륵산(430m)은 금마에서 북쪽으로 8리 정도의 거리에 금마면, 감기면, 낭산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옛날에는 이산의 동쪽에 이어져 있는 높이 350m350m 정도의 낮은 산봉까지를 포함하여 용화산이라 불렀으나 지금은 구분하여 미륵사지가 있는 북쪽은 미륵산이라 하고 나머지 지역은 용화산이라 하고 있다. 미륵이나 용화는 모두 미륵신앙과 관련이 있는 명칭으로써, 원래는 용화산이라 하던 것이 미륵사가 지어지면서 그 주변 산만을 미륵산이라 칭한 것이라 보인다.

 

이 산은 천호산의 줄기가 동서로 가로질러 이룬 산으로 북으로는 황산벌이 보이고 남으로는 멀리 호남평야를 바라보는 평지에 우뚝 솟아 있으며, 이산에서 발원하는 도천, 부상천, 궁평천, 등은 만경강의 상류를 이루며, 서해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산의 최고봉을 운제봉이라 하고 조금 낮은 앞 산봉을 장군봉이라 하는데, 장군봉에는 마치 장군이 투구를 쓴 것 같은 모양으로 생긴 까닭에 투구 바위라고 부르고 있는 바위가 있다. ‘여지승람 익산군 산천조에서는 장군봉은 용화산에 있는데, 남쪽에 있는 바위에는 두어 말의 기름을 녹일 수 있는 구멍이 파져 있어 이 바위를 등잔암이라 한다”라고” 하는 기록이 보이는데, 여기서 말하는 등잔암은 지금의 장군봉 산정에 있는 투구바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산의 남록에 있는 거북바위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거북바위에는 가로 70cm 세로50cm 정도의 구멍이 파여 있다.

 

* 미륵산에 있는 다양한 역사 체험 * 미륵산 안에는 미륵사지를 비롯하여 사자암, 죽사(지금은 없다. 사자암 서쪽으로 백보 거리에 있었음), 수백암(지금은 없음, 사자암 남쪽으로 이백보 거리에 있었음), 영혈사( 지금은 없음. 수백암 북쪽으로 1리의 거리에 있었음), 명적암(지금은 없음, 사자암 동쪽으로 이백보 거리에 있었음), 천장암(지금은 없음), 명적암 (사자암 동쪽으로 2리 거리에 있었음), 심곡사(현존), 석불사, 태봉사, 장안사지 등 절터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서 볼 때 이 산은 백제, 신라, 고려 대를 이어 이 지역의 불교 문호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산 위에는 기준성이라 불리는 미륵산 성터가 있으며, 중턱에는 백제의 도요지가 여러 곳에 있어 삼족토기 등 백제 토기를 이곳에서 구워냈음을 알 수 있다.(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익산 미륵산 정상..

산행 추진 : 미륵사지주차장 ~ 미륵사지 ~ 사자암 ~ 미륵산 정상 ~ 우제봉 ~ 미륵산성 ~ 대나무 숲 ~ 미륵사지 주차장의 원점회귀

미륵사지를 지나 등로로 가는 길에 대나무 길이 조성되어 있고..

등로로 나와보니 정상까지 1.397km 거리밖에 되지 않더군요..

새로이 넓은 계단길이 조성되어 있고..

가파른 철계단도 나오고..

사자암을 들러 봅니다..

사자암 가면서 본 한반도 지형의 금마저수지..

사자암 요사체로 사람이 보이지 않더군요..

대웅전 옆의 선방..

사자암은 대나무 숲 너머로 한반도 지형이 보이는 멋진 곳에 자리잡고 있더군요..

사자암 대웅전..

 서동요의 주무대인 사자사(사자암)

사자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609-1번지 미륵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백제의 고찰인 사자사는 미륵산 정상부 능선자락에서 탁 트인 앞을 내다보는 천혜의 절경에 자리잡고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익산 미륵사지로 유명한 미륵사가 이곳 미륵산 기슭에 창건되기 이전부터 사자사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자사는 말법의 시대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출현하는 미륵부처님처럼, 백제 쇠퇴기에 백제의 부흥을 꿈꾸던 무왕(武王)의 근거지로 서동요(薯童謠)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사자사는 미륵사와 함께 백제시대에 창건된 이래 조선 초기까지 사세를 유지해왔음이 1993년에 발굴 조사된 유물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출토유물에는 기와와 토기를 비롯하여 도자기, 불상 및 금속류, 목재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현재의 사자사는 발굴조사 이후 대웅전과 삼성각 등 2동의 건물을 새로 지은 뒤 계속해서 가람이 재정비되고 있는 상태이다.

 

* 선화공주와 서동의 사랑이야기, 서동요 *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서동요를 퍼뜨렸던 선화공주와 서동의 사랑이야기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전해 들은 이야기로 역사와 구전설화가 어우러진 설화라 할 수 있다. 이 설화의 주무대였던 곳이 바로 사자사(사자암)이다. “선화공주(善化公主)님은 남몰래 정을 통하고 서동방(薯童房)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인 서동(薯童)과 신라공주 선화(善化)의 설화 속에는, 사자사에 주석하고 있던 지명법사(知命法師)의 도움으로 미륵사를 창건한 내용이 등장하고 있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등을 토대로 재편집)

 

사자암에 있는 나무들..

사자암 앞의 대숲..

사자암에서 본 한반도 지형

사자암 구경 후 다시 등로로 나와 정상 가기 전의 멋진 조망처..

조망처에서 본모습으로 가을 들녘 무렵에는 풍경이 멋지겠 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제봉 너머에 있는 kbs 송신소.. 

성벽에 오르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인 '치성'..

미륵산 정상 인증(미륵사지에서 약 1시간 소요)

정상에서 본모습..

미륵산성 모습(우제봉에서 미륵산성으로 진행)..

미륵산성

1973 6 2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으며, 기준성(箕準城용화산성(龍華山城)이라고도 한다. 이 성은 금마면 북방 3 지점의 높이 430m를 최고봉으로 하는 미륵산 동사면을 감은 포곡식 산성(包谷式山城)으로 지금은 문지(門址수구문(水口門옹성(壅城장대지(將臺址건물지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익산 지역은 5세기 중엽부터 백제 지방의 중심세력이었고 7세기를 전후하여 금강변의 웅포지역보다 내륙에 위치한 금마 지역을 중심으로 백제 문화의 꽃을 피웠다. 익산 미륵산성은 일명 용화산성이다. 기준왕이 이 곳에 도읍하였다하여 기준성이라고도 부른다. 이 산성이 미륵산에 있기에 미륵산성이라고 하며, 미륵산의 명칭이 용화산이기도 하다. 기준왕이 도읍하였다기 보다는 마한의 여러 나라 중의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산성도 그때부터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고려초에 전주를 근거로 할거하였던 후백제의 신검이 부왕 견훤을 쫓았을 때 고려 태조가 이를 토정 討征하여 마성馬城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 그 마성이 바로 이 산성이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등을 토대로 재편집)

 

미륵산성을 따라 진행..

미륵산성에서 아래쪽의 구룡마을로 진행..

바위를 쪼개고 나온 나무..

구룡마을로 진행합니다..

익산이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곳이란 것을 알 수 있더군요..

군계일학..

구룡마을 대나무 숲은 사유지로 드라마 '추노' 촬영지라고 합니다..

대나무 숲길이 정말 잘 조성되어 있더군요..

구룡마을 보호수인 느티나무로 수령 약 340년..

마을길과 차도를 따라 미륵사지로 진행합니다..

미륵사지에 도착하여 약 8.6km / 약 4시간 5분(미륵사지 구경 포함) 산행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