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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축제, 볼거리 등)/세계문화유산

고궁나들이 3탄 창덕궁(22. 4. 3일)

by 산사랑 1 2022.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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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하나로 태종 5년(1405)에 세워졌다. 당시 종묘·사직과 더불어 정궁인 경복궁이 있었으므로, 이 궁은 하나의 별궁으로 만들었다. 임금들이 경복궁에서 주로 정치를 하고 백성을 돌보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크게 이용되지 않은 듯하다.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창경궁과 함께 불에 타 버린 뒤 제일 먼저 다시 지어졌고 그 뒤로 조선왕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정궁 역할을 하게 되었다. 화재를 입는 경우도 많았지만 제때에 다시 지어지면서 대체로 원래의 궁궐 규모를 잃지 않고 유지되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던 외전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그리고 휴식공간인 후원으로 나누어진다. 내전의 뒤쪽으로 펼쳐지는 후원은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어 자연경관을 살린 점이 뛰어나다. 또한 우리나라 옛 선현들이 정원을 조성한 방법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60여 종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며 300년이 넘는 오래된 나무들도 있다.

 

1917년에는 대조전을 비롯한 침전에 불이 나서 희정당 등 19동의 건물이 다 탔는데, 1920년에 일본은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다가 대조전을 다시 짓고, 강녕전을 헐어서 희정당을 다시 짓는 등 경복궁을 헐어 창덕궁의 건물들을 다시 지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물 중 궁궐 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정문인 돈화문으로 광해군 때 지은 것이다.

 

정궁인 경복궁이 질서 정연한 대칭구도를 보이는데 비해 창덕궁은 지형조건에 맞추어 자유로운 구성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창덕궁과 후원은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문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장소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인정전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곳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앞쪽으로 의식을 치르는 마당인 조정(朝廷)이 펼쳐져 있고, 뒤쪽으로는 북한산의 응봉으로 이어져 있다. 2단의 월대 위에 웅장한 중층 궁궐 전각으로 세워져 당당해 보이는데, 월대의 높이가 낮고 난간도 달지 않아 경복궁의 근정전에 비하면 소박한 모습이다.

 

인정전은 겉보기에는 2층이지만 실제로는 통층 건물로 화려하고 높은 천장을 볼 수 있다. 바닥에는 원래 흙을 구워 만든 전돌이 깔려 있었으나, 지금은 마루로 되어있다. 전등, 커튼, 유리 창문 등과 함께 1908년에 서양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인정문 밖 외행각(外行閣)에는 호위청과 상서원 등 여러 관청들을 두었다. 1405년(태종 5)에 창덕궁 창건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1418년(태종 18) 박자청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년(광해 2)에 재건, 1803년(순조 3)에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복원해 현재에 이른다. 외행각 일원은 1991년 이후에 복원했다. (출처 : 문화재청)

 

경복궁과 덕수궁 구경을 한 후 창덕궁으로 이동을 하였는데 매표소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코로나 19로 인하여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하려는 것 같았으며, 후원의 경우 이미 매표가 완료되어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창덕궁 출입문인 돈화문 앞에 길게 즐을 서 있는 사람들..

앞줄은 매표가 끝나 창덕궁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고 도로가의 뒷줄은 매표하려는 줄입니다..

금천교 아래의 석상에 돈을 던져 놓았네요..

이곳에도 줄을 서서 인증을 하고 있네요..

돈화문(정문)을 지나 금천교 너머에 위치한 창덕궁의 중문인 진선문 / 아래 인정전과 인정전 내부에 있는 용상과 일월오악도라는 병풍..

인정전 내부

인정전 안에는 정면에 임금님의 용상이 있고 그 뒤에는 나무로 만든 곡병과 곡병 뒤에는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라는 병풍이 있다. 병풍에는 음양을 뜻하는 해와 달이 있으며 이는 다시 왕과 왕비를 상징한다. 그 아래 다섯 개의 산봉우리는 우리나라의 동, 서, 남, 북, 중앙의 다섯 산을 가리키며 이는 국토를 의미한다. 이것은 임금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 이치에 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주변에는 유리창을 비롯하여 전구나 커튼 등 서양 장신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구한말 외국과의 수교 후 다양한 외래 문물이 들어온 것이며, 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한 후에 인정전의 실내 바닥이 전돌에서 마루로 바뀌고, 전구가 설치되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참고로 5대 궁 중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온 곳은 1887년 경복궁이다. (출처 : 문화재청)

내전으로 통하는 숙장문..

개나리가 곱게 피어 있고..

매화가 마치 눈송이 같습니다..

진달래도 활짝 피어 있고..

대조전 뒤쪽으로 왕비와 궁녀들이 산책하던 곳..

왕비의 생활공간인 대조전..

대조전(大造殿:보물 816): 비극적 역사가 담겨 있는 침전

대조전은 창덕궁의 정식 침전(寢殿)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원래는 대조전 주변을 수많은 부속건물들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의 현장이다.

 

1917년 불타 없어진 터에 1920년에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지어 현재의 대조전이 되었다. 이건 하면서 창덕궁의 상황에 맞추어 재구성했는데, 대조전을 중심으로 양옆 날개채와 뒤편의 경훈각 등이 내부에서 서로 통하도록 복도와 행각으로 연결했다. 원래 궁궐의 복합적인 구성을 잘 보여 주는 거의 유일한 부분이다. 희정당과 마찬가지로 내부는 서양식으로 개조하였으며, 왕실 생활의 마지막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보물 제816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누군가 팬더곰 인형을 나무에 올려놓았더군요..

창덕궁 동궁에 속한 전각인 성정각에 부속된 누각인 보춘정/ 희우루..

희우루 앞쪽 담장에 홍매화가 곱게 피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인증을 하고 있더군요..

홍매화를 인증하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는 줄..

홍매화가 곱게 피었습니다..

여기는 창경궁과 후원 가는 곳으로 이곳의 홍매가 제일 예쁘게 피었습니다..

사실 이번 고궁 탐방은 창덕궁 홍매를 보기 위하여 추진하였는데 제 때에 잘 온 것 같습니다..

정면에서 담은 사진..

후원은 이미 매진되어 갈 수 없게 되어 다소 아쉬웠습니다..

담을 타고 넘어온 홍매화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증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창경궁으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