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 세조대왕 능..
국방동우회 등산팀의 10월 4주 차 산행은 광릉 & 광릉숲길 7코스를 걸었다. 광릉은 세조(1417~1468)와 정희왕후(1418~1483)의 능으로 쌍룡농주형(雙龍弄珠形,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형상)이라는 명당이라고 한다. 광릉을 보기 전에 광릉의 원찰인 봉선사를 잠시 들러 구경하였다, 봉선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6.25 전쟁으로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현재의 봉선사는 1959년 범종각, 1970년 큰법당(대웅전) 등을 새로 건축한 것이다. 봉선사와 광릉을 본 후 광릉 숲길 7코스를 걸었다(별도 작성)
광릉의 원찰인 봉선사로 들어 갑니다..
【봉선사奉先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다. 969년(광종 20)에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이 창건하여 운악사(雲岳寺)라고 하였다. 그 뒤 조선 세종 때에 이전의 7종을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할 때 이 절을 혁파하였다가, 1469년(예종 1)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尹氏)가 세조를 추모하여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의 규모로 중창한 뒤 봉선사(奉先寺)라고 하였다. 당시 봉선사의 현판은 예종이 직접 썼다고 하며,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남양주 봉선사 동종을 같은 해에 주조하였다고 한다.
6·25 전쟁으로 1951년 3월 6일에 법당 등 14동 150칸의 건물이 완전히 소실되었다. 그 뒤 1959년에 화엄(華嚴)이 범종각을 세운 데 이어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운경(雲鏡)과 능허(凌虛)가 운하당(雲霞堂)을 세웠고, 1970년에는 주지 운허(耘虛)가 큰법당을 중건하고 1977년에는 월운(月雲)이 영각(靈閣)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큰법당 · 삼성각 · 개건당(開建堂) · 방적당(放跡堂) · 운하당 · 범종각 · 청풍루(淸風樓) · 요사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큰법당은 대웅전과 같은 법당으로서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한글현판을 단 것이다.
그리고 큰법당 앞에는 1975년에 운허가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한 5층탑이 있으며, 1981년에는 운허의 부도탑을 세웠다. 이 밖에도 사찰 안에는 ‘춘원 이광수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절 옆에 있는 남양주 광릉은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크낙새가 주변 숲에 서식한다.(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서 발췌)
큰법당 가는 길에 있는 디딜방아..
길이 아주 운치가 있습니다..
차도 한쪽으로 부도들이 늘어서 있고..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네요..
사면암도 있고..
웃는 해태 사자상들..
커다란 연못이 있고..
540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로 임진왜란, 6.25 동란 등 각종 전란을 이기고 살아남아 우리에게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하마비로 봉선사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곳에서는 말에서 내려야 됩니다..
1959년 처음으로 새로 건축된 범종각..
1970년 새로 건축한 큰법당(대웅전)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글현판을 달았다고 합니다..
봉선사 큰법당 앞에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 1 과를 봉안한 5층이 서 있고..
꽃으로 만든 코끼리 형상도 큰법당 앞에 있습니다..
청풍루..
청풍루 뒤쪽은 설법전이네요..
템플스테이 수양공간은 출입을 제한합니다..
미륵전..
봉선사 연밭이 상당한 규모입니다..
연밭 불상 옆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불상 옆에 있던 새로 이곳을 지키고 있는지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을 가지 않습니다..
봉선사를 둘러본 후 세조와 정희왕후가 잠들어 있는 광릉을 찾았습니다..
【광릉사적 제197호, 光陵】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
주엽산 자락에 있는 광릉은 제7대 세조(1417~1468)와 정희왕후(1418~1483)의 능으로 면적만 무려 249만 4,800제곱미터에 달한다. 풍수가 들은 광릉을 쌍룡농주형(雙龍弄珠形,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형상)이라고 한다. 자리가 좋아서 이후 400여 년간 세조의 후손이 조선을 통치했다는 설명도 있다. 세조는 1468년 9월에 병이 위급해지자, 여러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9월 7일 왕세자에게 전위한 뒤 이튿날 사망했다.
정희왕후는 파평 윤씨 윤번의 딸로 1428년 수양대군과 가례를 올려 낙랑부대부인에 봉해졌고,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1468년 예종이 19세로 즉위하자 정희왕후는 수렴청정을 했고 이는 조선 시대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예종이 재위 1년 2개월 만에 사망하자, 정희왕후는 맏아들인 덕종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성종)을 당일 즉위하게 했다. 하지만 성종 역시 13세의 어린 나이였으므로 정희왕후는 그 뒤로도 7년 동안 섭정을 계속했다.
광릉은 조선 왕릉 중 남다른 것이 많기로 유명하다. 우선 입구로 들어가면 다소 이색적인 하마비가 보인다. 선왕, 선비를 모시는 제사를 주관하기 위해 친행 한 왕조차도 이곳에서부터는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야 했다. 중앙에 정자각이 있고 그 뒤 좌우 언덕에 능이 있는데 이와 같은 동원이강 형식은 광릉이 최초다. 광릉의 홍살문을 지나면 곧바로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다. 왕릉에서 당연히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참도와 배위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는 광릉이 유일하다. 광릉은 이전의 왕릉과는 건축 방법이 다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조는 "내가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고 병풍석을 쓰지 마라"라고 유명을 내렸다. 그러므로 광릉은 병풍석이 없으며 석실은 회격으로 바꾸었고, 병풍석에 새겼던 십이지 신상은 난간 동자석주에 옮겨 새겼다. 광릉은 6·25 전쟁의 흔적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자각을 올린 정면 석대를 보면 수많은 총탄 자국이 보인다.
광릉 숲은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는데 식물 865종, 곤충 3,925종, 조류 175종 등 모두 5,710종의 생물이 산다. 여기엔 흰진달래 등 특산 식물과 장수하늘소 등이 포함되어 있다. 단위 면적당 식물 종 수는 헥타르당 38.6종으로 설악산 3.2종, 북한산 8.9종을 크게 웃돈다. 곤충도 175.2종으로 설악산 4.2종, 주왕산 12.3종보다 많으며 우리나라에서만 사는 크낙새(천연기념물 제11호)도 이곳에 있다. (출처 : 과학문화유적답사기 )
단풍이 익어가고 있고..
조선 왕릉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하마비가 보이는데
이곳 하마비는 제사를 주관하기 위해 친행 한 왕조차도 이곳에서부터는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야 했다고 합니다.
하마비..
왕릉 가는 길..
단풍이 들어가고 있고..
정자각 우측에 보이는 능이 정희왕후의 능입니다..
세조의 능으로 병풍석을 세우지 않은 최초의 능이라고 합니다..
비문(조선국 세조대왕 광릉 정희왕후 부좌강)과 비각..
정희왕후의 능..
왕릉의 숲길을 따라 진행합니다..
곱게 물 들어가는 단풍..
재실입니다..
봉선사 & 광릉 탐방을 마치고 광릉 숲길을 걸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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