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2022. 5. 29일 토요일)】
경기도의 수부(首部) 도시 수원은 조선 제22대 정조 대왕이 생부인 장헌세자(사도세자)를 향한 효심과 웅대한 개혁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세운 계획된 신도시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園寢·왕세자의 산소)을 경기 양주 배봉산에서 지금의 수원 화산으로 옮기면서 축조한 성으로 조선시대 최고 성곽 기술이 녹아 있다. 도심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97년 등재)인 화성(華城. 사적 제3호)이 팔달산을 중심으로 5.7㎞ (면적 37만 1145㎡/약 11만 2400평)에 걸쳐 펼쳐져 있는데, 정약용 등 당대 최고 지식인들과의 협업 속에서 완성한 것이다.
화성은 화기 공격과 방어에 대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과학적인 설계로 축성된 성곽이다. 성의 부속 건물들 또한 모두 다르게 지어져 있는데, 다양한 건물군의 동시적인 건축물은 전 세계에서 화성이 유일하다고 한다. 수원 화성(사적 3호)은 정조의 애민하는 마음과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기법을 살펴볼 수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 성곽으로 꼽힌다. 아름다운 주변 풍광뿐만 아니라 역사성과 과학성, 축성에 대한 이야기가 그 매력을 더해준다.
서울을 지키는 중요한 지점에 행궁을 포함한 새 도시를 건설하는 일인 한편 부친의 넋을 달래려는 효심이 깃든 대역사(大役事)였던 것. 정조 18년(1794년)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해 만든 ‘성화주략’을 지침서로 해발 143m의 수원 팔달산을 중심으로 성을 쌓기 시작한 지 2년 8개월 뒤 총길이 5,700m의 성이 완성됐다. 당초 10년은 걸릴 것으로 생각이 들었던 것이 28개월 만에 완성하게 된 것 중의 하나가 거중기(擧重機)로, 거중기는 40근(24kg)의 힘으로 625배나 되는 2만 5000근(15,000kg)의 돌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실사구시의 과학정신이 화성 축조에 응용된 것. 화성의 동서남북으로는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이라는 큰 문을 만들었고 그 사이사이에 5개의 암문, 2개의 수문도 두었다. 그밖에 적대, 공심돈, 봉돈, 장대, 각루, 포루도 만들어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화성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만들어진 도시 성곽으로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성곽을 따라 걷는 동안 조선시대 아름다운 건축미에 흠뻑 빠져들고 건강도 다질 수 있어 화성의 매력을 더해준다.
화성은 약 200여 년 동안 성곽과 시설물 일부가 무너졌다. 특히 6·25전쟁으로 크게 소실됐다가 1975년 보수·복원공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화성의 사대문 중 팔달문은 문의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도로를 만들면서 헐어버려 성문만 남아 있다. 장안문은 1920년대 수원시 시가지 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리고, 1950년 6·25 전쟁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됐다. 1978년 문루는 원래대로 복원됐다.
현재 수원 화성의 70~80%는 현대에 복원된 구조물로 이렇게 새로 복원된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에 당당히 선정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래 세계문화유산 중 기록유산으로 '화성성역의궤'가 선정이 되어 있었으며, 그 내용이 얼마나 치밀하고 완벽했는지, 그 의궤에 따라 복원된 수원화성도 덩달아 인정을 받아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돌 무게가 얼마고, 어떤 목재를 사용했고, 심지어 공사비로 얼마를 지출했는지까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설계와 시공 부분은 그림과 해설을 따로 붙여 놓아 '화성성역의궤'만 있으면 화성은 얼마든지 다시 지을 수 있다. 이는 화성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과학적이라는 반증이다.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도 당시 소견에서 "화성은 동·서양을 망라하여 고도로 발달한 과학적 특징을 골고루 갖춘 근대 초기 군사 건축물의 모범"이라며 "성곽은 이제 겨우 200년에 지나지 않지만 제각각 지닌 예술적 가치를 감안할 때 마땅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려야 한다."라고 극찬했다.
서장대와 화서문 중간에는 정조대왕의 동상이 서있고 그 아래쪽에는 최근 복원한 화성행궁이 있다. 행궁은 임금이 지방 행차 시 머물던 별궁으로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으로 행차할 때 이곳을 자주 임시거처로 삼았다고 한다. 이는 봉수당, 장락당을 비롯한 총 576칸 규모의 거대한 행궁이다. 정조는 화성행궁에서 모친인 경의왕후(혜경궁 홍 씨)의 회갑연과 경로잔치를 여는 등 백성에게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었다.
장수를 받들어 빈다는 뜻인 봉수당에서는 정조대왕과 왕비가 경의왕후에게 회갑연을 베풀어드리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화성행궁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신풍루 앞에서는 관람객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져 볼거리를 제공한다.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일요일(오후 2~3시)에는 정조 17년(1793년)에 왕권 강화를 위해 설치한 금위조직인 장용영(壯勇營) 수위식이 열린다.
화성을 돌아보는 동안 최소한 세 번은 반하게 된다. 처음에는 보호와 방어라는 성곽의 1차적 용도를 뛰어넘은 우리나라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흠뻑 매료되고, 그다음에는 한 임금의 부모 공경에 감탄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성곽 트레킹으로 자신의 건강을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매력이다. 또한 웅장함과 화려함, 실용성을 두루 갖춘 화성의 야경 역시 일품으로 다가온다. (출처 :파이넨션 뉴스 등을 중심으로 재편집)
팔달산 정상에 있는 군사 지휘소였던 화성장대(서장대)..
트레킹 추진 : 행궁 ~ 화양루 ~ 서장대 ~ 화서문 ~ 장안문 ~ 동장대 ~ 창룡문 ~ 팔달문 ~ 행궁의 원점회귀
코스가 가벼워 여유 있게 진행합니다..
화성을 지키는 성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1796년(정조 20년)에 창건되었고 2009년 이전 복원하였다..
홍난파 노래비는 1068년도 설치되었고
안내판은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에서 홍난파가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것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남포루를 따라 본격적으로 화성일주를 시작합니다..
포루(砲樓)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곳으로 화성에는 5개 포루가 있다..
화성 서남쪽에 낸 비상출입문인 서남암문으로 화성의 5개 암문 가운데 유일하게 군사들이 머무는 포사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서남암문 西南暗門】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이 문은 용도(甬道: 담을 양쪽으로 쌓아 만든 길)의 출입문이기도 하다. 서남암문은 화성 서남쪽에 낸 비상 출입문으로 이곳은 지형상 적에게 빼앗기면 성안이 노출될 우려가 있어서 5개의 암문 중에서 유일하게 포사(舖舍)를 만들어 침입을 대비했다. 1796년(정조 20) 8월 6일 홍예가 완성되었다. 이름은 암문이지만 성 안팎을 드나드는 통로가 아니라 용도를 거쳐 서남각루(화양루)로 나가는 문이다. 포사(舖舍)는 성 밖의 위험을 성 안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깃발을 휘두르거나 대포를 쏘아 위급 신호를 전달하였다(출처 : 나무워키)
성벽으로 둘러싸인 통로인 용도를 따라 서남각루(화양루)로 진행합니다..
화성의 4개 각루 중의 하나인 서남각루(화양루)..
서남각루가 있는 이곳은 남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지역으로 지형상 적에게 빼앗기면 성안이 노출될 우려가 있어서 서남암문에 용도(甬道: 담을 양쪽으로 쌓아 만든 길)를 내어 그 끝에 각루를 세웠다고 한다. 각루는 주변을 감시하고 때로는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곳으로 화성에는 총 4개소가 설치되어 있다..
서남각루에서 잠시 휴식을 한 후 다시 되돌아 나갑니다..
반대편에서 본 서남암문..
3,1 독립운동기념탑..
서포루..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수원 화성의 70~80%는 현대에 복원된 구조물로 이렇게 새로 복원된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에 당당히 선정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래 세계문화유산 중 기록유산으로 '화성성역의궤'가 선정이 되어 있었으며, 그 내용이 얼마나 치밀하고 완벽했는지, 그 의궤에 따라 복원된 수원화성도 덩달아 인정을 받아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돌 무게가 얼마고, 어떤 목재를 사용했고, 심지어 공사비로 얼마를 지출했는지까지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설계와 시공 부분은 그림과 해설을 따로 붙여 놓아 '화성성역의궤'만 있으면 화성은 얼마든지 다시 지을 수 있다. 이는 화성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과학적이라는 반증이다.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도 당시 소견에서 "화성은 동·서양을 망라하여 고도로 발달한 과학적 특징을 골고루 갖춘 근대 초기 군사 건축물의 모범"이라며 "성곽은 이제 겨우 200년에 지나지 않지만 제각각 지닌 예술적 가치를 감안할 때 마땅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려야 한다."라고 극찬했다.
효원의 종(모든 이에게 효성심을 심어주고, 나라의 평안과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수원시민의 염원을 담아 만든 종)
유려한 곡선의 화성과 아름다운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수원 최고의 전망대인 서장대가 보입니다.
서암문..
옆에서 본 서장대..
수원 화성행궁 뒤편 팔달산 정상에 우뚝 솟은 서장대(화성 장대)는 화성의 남서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서장대는 동장대와 함께 장수가 성의 안과 밖은 물론 인근 지역까지 살피며 지휘하던 곳으로 화성을 축성한 정조대왕이 다섯 번을 오르며 화성장대라는 편액을 직접 썼다고 한다. 현재의 서장대는 2006년 방화로 불탄 것을 복원했으며, ‘화성장대’의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 있는 고궁박물관 편액을 모각해 달았다.
서장대에 정조가 군사훈련을 지켜본 후 감회를 읊은 시가 있고..
화성 행궁과 수원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2020. 8월에 본모습)..
서장대 앞에 있는 소나무가 아주 멋지네요..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한 시설로 서장대에 있는 서노대로 노대는 화성에 서노대와 동노대 두 군데가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본 화성장대..
서포루와 서장대 사이에 있는 서이치..
‘치’는 꿩을 의미하며, 꿩이 자기 몸을 잘 숨기는 모양을 닮았다 하여 "치"란 단어를 붙인 이곳은 성곽 바깥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병사들이 외벽을 감시하기가 수월했는데 그 이전의 성들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시설물로 화성에는 10개의 치가 있다.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있는 서포루(포루(砲樓)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곳으로 화성에는 5개 포루가 있다)..
외부로 돌출되어 있는 서일치는 서북각루와 서포루 사이에 있다..
서북각루 / 각루는 주변을 감시하고 때로는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곳으로 화성에는 총 4개소가 설치되어 있다..
4대 문 중의 하나인 화서문..
벽돌로 쌓은 반원형 옹성이 문을 둘러싸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지나 온 서북각루..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수원 서북 공심돈 / 공심돈은 군사가 안으로 들어가서 적을 살필 수 있게 만든 망루의 일종..
지나 온 서북공심돈과 화서루의 아름다운 모습..
북포루 / 포루(鋪樓)치성위에 설치한 누로 군사들의 대기 및 휴식 장소로 화성에는 5개의 포루가 있다.,
북서포루..
북서적대에 포가 설치되어 있고..
화성의 정문인 장안성..
대부분의 성은 남문을 정문으로 쓰는데 화성만 북문인 장안문을 정문으로 쓴다. 그 이유는 정조가 서울에서 출발해 가장 먼저 성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장안문이었기 때문이다. 장안이란 수도를 상징하는 말이자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북동포루에 설치되어 있는 화포(홍이포)..
북동치..
장안문의 웅장한 모습..
북동 포루(砲樓)
수원천의 북쪽에 세운 북수문(화홍문)과 동부각루(방화수류정)가 보이고..
수원천의 북쪽에 세운 북수문(화홍문)
북수문 앞의 수원천..
수원천의 북쪽에 세운 북수문(화홍문)은 아름다운 경관을 지니고 있다..
2020. 8월 야간 트레킹 당시 본 아름다운 모습..
수원 시내를 남북으로 흐르는 하천이 여름에 자주 범람하자 성곽을 신축하면서 준설하고 남북에 각각 수문을 만들었다.
'화(華)'는 화성, '홍(虹)'은 무지개의 의미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은 '수원팔경'에 꼽힌다.
동부각루(방화수류정)..
'방화수류'는 꽃을 찾아 버들을 따라 앞 내를 건넜다는 뜻이다. 방화수류정에서 보는 풍경은 화성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꼽힌다. 방화수류정은 전시에는 망루, 평시에는 정자의 기능을 했다.
방화수류정 안에서 본모습들로
방화수류정 앞의 연못으로 매우 아름답습니다....
소나무들이 집단을 이루고..
곡선의 아름다운 美..
멀리 아름다운 교회가 있어 당겨 봅니다..
북암문..
북암문과 방화수류정..
당겨 본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운 모습..
동이치..
동북포루..
연이 나르고..
남한산성과 같이 성곽길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지나 온 동북포루..
서장대(화성장대)와 같이 군사를 지휘하던 동장대..
연무대(동장대, 東將臺)는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蒼龍門)'과 북쪽 수문인 '화홍문(華虹門) 사이의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방이 트여 있어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좋은 군사요충지이다. 1796년에 수원화성이 완공된 뒤, 연무대는 병사들의 훈련장이었다. 칼과 창, 활을 다루는 공간으로 200년이 넘은 소문난 활터이다. 또한 연무대는 사직공원(社稷公園)의 황학정(黃鶴亭), 남산의 석호정(石虎亭), 전주의 천양정(穿楊亭)과 더불어 유서 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 Daum백과]
특수한 연이 나르고..
동북 공심돈..
수원화성에서 가장 특이한 건물 중의 하나로 중국 요동지방에 있는 평돈을 모방하여 벽돌로 동그랗게 돈대를 쌓아 만들었다.
동북노대(쇠내를 쏘는 방어시설) / 서노대가 성벽 안쪽에 만들어진 것에 비해 동북노대는 치성 위에 벽독을 쌓아 만든 것이 특이하다..
4대 문 중의 하나인 창룡문 / 창룡은 청룡으로 풍수지리상 좌청룡으로 동문을 뜻한다..
창룡문은 화성의 동문으로 규모와 형식이 화서문과 비슷하다. 주목할 것은 성문 왼쪽 벽에 있는 실명판이다. 화강석 벽을 다듬어서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팔달문, 화서문, 장안문의 실명판이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데 반해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동일포루(군사들의 대기 및 휴식 장소, 감시와 공격을 위한 누각)..
동일치..
동포루(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것)..
동2치..
멋있는 고딕 양식의 교회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봉돈(봉수대로 성벽에 총안을 두어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원제일교회로 정말 고풍스럽네요..
동이포루..
산딸나무가 하얗게 꽃을 피우고..
동삼치로 다른 치보다 규모가 크더군요..
동남각루..
지나 온 동3각루..
팔달문시장을 지나고..
팔달문(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을 의미)으로 화성 4대 문 중의 남문(보물 402호)입니다..
팔달문은 4개 성문 가운데 남문으로 화강암으로 된 석축에 홍예문을 내고, 그 위에 여장을 돌린 다음 2층 누각을 세웠다. 누각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에 우진각 지붕의 건물이다. 아래층과 위층의 공포는 다포식이며, 쇠서의 끝이 강하게 위로 솟아 있고 끝이 장식화되어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목조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성문의 좌우에는 적대를 설치하여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성문은 북문인 장안문과 형태가 같으며, 규모와 건축수법 등이 서울의 숭례문과 비슷하다. 화성의 성문은 조선시대 성문 가운데 가장 발달된 것이며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팔달문을 지나 성곽으로 올라가는 매표소 앞쪽에 고 물건을 판매하는 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남포루로 올라가는 길이 가파릅니다..
이곳에서 오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곳..
정조대왕 동상을 둘러보고 수원화성 트레킹을 마무리한 후 행궁을 둘러봅니다..
다음은 수원행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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