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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대명산 산행기/서울,경기

남한산(22. 7.30) 피서 산행

by 산사랑 1 202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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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산행(2022. 7.30일 토요일)】인기 백대명산 제95위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都城)을 지키던 남부의 산성으로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 암문(暗門)·우물·보(堡)·누(壘) 등의 방어 시설과 관해(官해), 군사 훈련 시설 등이 있다. 이 산성의 주변 지역에는 백제(百濟) 초기의 유적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일찍부터 온조왕대(溫祚王代)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13년(673)에 한산주(漢山州)에 주장성 (晝長城, 일명 일장성(日長城))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로서 현재 남한산성이 위치한 곳이라고 믿어져 내려온다. 고려시대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으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에 일장산성(日長山城)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둘레가 3,993보 이고, 성내에는 군자고(軍資庫)가 있고, 우물이 7개인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또한 성내에 논과 밭이 124 결(結)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현재의 모습으로 대대적인 개수를 본 것은 후금(後金)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李适)의 난을 겪고 난 1624년(인조(仁祖)2)이다. 인조는 총융사(摠戎使) 이서(李曙)에게 축성할 것을 명하여, 2년 뒤에 둘레 6,297보·여장(女墻) 1,897개·옹성(甕城) 3개·성랑(城廊) 115개·문 4개·암문 16개·우물 80개·샘 45개 등을 만들고 광주읍의 치소(治所)를 산성 내로 옮겼다. 이때의 공사에는 각성(覺性)을 도총섭(都摠攝)으로 삼아 팔도의 승군을 사역하였으며, 보호를 위하여 장경사(長慶寺)를 비롯한 7개의 사찰이 새로 건립되었으나, 장경사만이 현존한다. 그 뒤 순조(純祖) 때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설이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을 완비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처음 축성의 목적을 대변해 주듯이 유사시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이 73칸 반의 규모이고, 하궐(下闕)이 154칸이나 되었다.

 

1798년(정조(正祖)22) 한 남루(漢南樓)를 세우고 1624년에 세운 객관(客館)인 인화관(人和館)을 1829년(순조(純祖) 29)에 수리하였다. 관해(官해)로는 좌승당(左勝堂)·일장각(日長閣)·수어청(守禦廳)·제승헌(制勝軒)을 비롯하여, 비장청(碑將廳), 교련관청(敎鍊官廳)·기패관청(旗牌官廳) 등의 군사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종각(鐘閣)·마구(馬廐)·뇌옥(牢獄)·온조왕 묘(溫祚王廟)·성황단(城隍壇)·여단(여壇) 등이 이루어졌고, 승도청(僧徒廳)을 두어 승군을 총괄하였다. 남한산성의 수어(守禦)는 처음에 총융청(摠戎廳)이 맡았다가 성이 완성되면서 수어청(守禦廳)이 따로 설치되었다.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수어사인 이시백(李時白)은 서성을, 총 융대장(摠戎大將) 이서(李曙)는 북성, 호위대장(扈衛大將) 구굉(具宏)은 남성, 도감대장(都監大將) 신경진(申景縝)은 동성 망월대, 원두표(元斗杓)는 북문을 지켰다. 그러나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수항단(三田渡受降檀)으로 나가 항복하였으나, 그 뒤 계속적인 수축을 하여 경영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새로 만든 남한산 정상석..

건강셀프등산회 제835차 산행은 당초 석룡산 조무락 계곡을 추진하였으나 하계휴가 피서길 차량에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남한산으로 변경 추진하였다. 산행은 기존의 남한산 코스가 아닌 큰골 ~ 한봉 ~ 남한산 정상 ~ 벌봉 ~ 제3암문 ~ 동문 ~ 큰골 코스로 추진하였다. 산행을 마치고 계곡에서 알탕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휴가철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근교 산행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산행 들머리가 있는 큰골 돌조각공원..

돌조각 공원에는 많은 종류의 돌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 돌조각들은 이곳 사유지의 주인이 모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장승들과 코끼리, 김삿갓 그리고 키스하는 여인상도 있고..

돌로 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젖소, 장기 두는 노인들과 호랑이,  사자 등의 돌 조각도 있고..

양과 장승과 맷돌, 그리고 행운의 다리, 석탑들도 볼 수 있고..

행운의 다리..

12 지신상도 보이고..

제주 돌할망도 보이고..

탑공원까지 사유지인 것 같더군요..

탑공원의 돌탑들..

탑공원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고 / 버섯들이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 모습을 보이더군요..

이 돌벽에서 한봉까지는 약 200m 거리입니다..

한봉입니다..

한봉에서 벌봉 가는 길의 성벽..

무너진 성벽들을 보수 중에 있더군요..

성곽 보수 중..

외동 장대터..

새로 만든 남한산 정상성 인증..

남한산성은 두 개의 산에 걸쳐있는 산성이다. 남한산성의 대표적인 봉우리는 수어장대가 있는 청량산(482.6m)이고 지형도상의 남한산성 최고봉은 39.4m가 더 높은 남한산(522m)이다.

봉암산성 신축비 있는 곳..

벌봉을 봉암성이라고 하네요..

벌봉이 있는 곳의 바위..

남한산 최고봉인 벌봉(522m)은 벌봉 암문에 연결된 남한산성의 일부이다. 암문 밖에서 이 바위를 보면 벌처럼 생겼다 하여 벌봉이라 한다. 병자호란 때 청 태종이 정기가 서려 있는 벌봉을 깨트려야 산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 하여 이 바위를 깨트리고 산성을 굴복시켰다는 전설이 있다. 벌봉은 해발 512.2m로 남한산성의 수어장대(497m) 보다 높기 때문에 남한산성의 서쪽 내부와 동쪽 성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병자호란 당시 이 지역을 청나라 군에 빼앗겨 적이 성 내부의 동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으며, 화포로 성안까지 포격할 수 있었다.

태풍 영행권에 들어서 그런지 하늘의 구름들이 멋진 모습으로 계속 변화합니다.

동장대터 가는 길의 멋진 소나무..

12 암문(남한산에는 16 암문이 있음)과 동장대터(남한산 서봉)..

벌봉으로 가는 제3암문..

동장대터 앞쪽의 성벽은 아직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고,,

벌봉으로 가는 산객들..

장경사 신지옹성..

도토리나무에 특이한 꽃(?)이 피어 있고..

장경사 절을 잠시 들러 봅니다..

장경사 절 앞쪽..

성벽과 소나무 숲이 잘 어울립니다..

누리장나무 꽃이 한창입니다..

멀리 남한산 행궁의 모습이 보이고..

황진이가 심명한 불도를 설법하여 이에 감명받은 기생 하나가 자괴하여 투신자살한 지역인 송암정 앞에 있는 生과死의 나무

동문입니다..

큰골로 원점 회귀하여 약 4시간 30분간의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산행 후 계곡으로 이동하여 잠시 피서를 즐긴 후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