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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축제, 볼거리 등)/세계문화유산

동구릉 탐방(24.12. 5)

by 산사랑 1 202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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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을 찾아 조선 태조 이성계, 영조대왕의 능 등을 둘러보았다. 능에 가기 전 장자호수공원에 있는 청국장 맛집으로 알려진 '토평 메주콩'이란 가게를 들러 고등어 정식, 돼지 떡갈비 정식을 먹었는데 청국장은 식사와 함께 나왔으며, 막걸리도 1시간 무한리필로 그냥 나왔다. 고등어는 조금 딱딱한 것이 별로였으나 돼지 떡갈비는 괜찮은 것 같았다. 식사를 하고 동구릉역으로 이동을 하여 약 2시간에 걸쳐 동구릉을 둘러보았다. 동구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최고령 영조, 조선에서 가장 무능 한 왕 중의 한 사람인 선조 릉 등이 있는 곳으로 선조 릉을 제외 한 나머지 능을 둘러보았다.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으로 능에는 억새가 있습니다..

장자호수공원에 있는 청국장 맛집으로 알려진 '토평 메주콩'이란 가게를 들러 고등어 정식, 돼지 떡갈비 정식을 먹었는데 청국장은 식사와 함께 나왔으며, 막걸리도 1시간 무한리필로 그냥 나왔다. 고등어는 조금 딱딱한 것이 별로였으나 돼지 떡갈비는 괜찮은 것 같았다. 

식사 후 전철역으로 이동 중 모 교회에서 무료 샌드위치와 커피를 제공하는 것을 볼 수 있어 훈훈하더군요..

동구릉은 태조 이성계 능인 건원릉을 위시한 9개 능/15개 봉분이 있습니다..

【동구릉 사적 제193호】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조선시대 왕릉 군

조선시대를 통하여 총 9개의 능이 모여 족분을 이루는 곳으로, 서울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9개의 능(陵)이라 하여 훗날 동구릉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본래 조선왕조 대에는 무덤 한 개가 늘어날 때마다 이름이 바뀌며 동오릉(東五陵), 동칠릉(東七陵)으로 불려 오다가 효명세자가 안치된 이후로 더 이상 이곳에 새로 생기는 능이 없는 채로 조선왕조가 문을 닫으며 동구릉으로 이름이 굳었다.

조선왕조의 창업군주인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健元陵)부터 시작하여 제5대 왕 문종과 그의 비 현덕왕후의 능인 현릉(顯陵), 제14대 왕 선조와 그의 정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가 함께 묻힌 목릉(穆陵), 제16대 왕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능인 휘릉(徽陵), 제18대 왕 현종과 그의 비 명성왕후의 능인 숭릉(崇陵), 제20대 왕 경종의 정비였던 단의왕후 능인 혜릉(惠陵), 제21대 왕 영조와 그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 능인 원릉(元陵), 제23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문조익황제로 추존)와 그의 비 신정왕후의 능인 수릉(綏陵), 제24대 헌종과 그의 정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능인 경릉(景陵)까지 총 9개의 능, 15개의 봉분이 구릉산 동쪽 기슭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동구릉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왕릉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무덤을 만들 때 각 무덤에 따른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재실을 지었다고 하나 현재 각 무덤에 재실은 없고, 9개 무덤을 하나의 경계지역으로 하여 구릉 남쪽에 재실이 있다. 또, 단릉(單陵), 쌍릉(雙陵),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합장릉(合葬陵), 삼연릉(三連陵)과 같이 모든 형식의 왕릉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삼연릉은 조선왕릉 중에서 유일하며, 오직 동구릉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형식이기도 하다.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9년 2월 27일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공식 등재되었다.(출처 : 나무 위키)

 

동구릉 입구에 있는 석물 부재와 외금천교..

 

동구릉 재실로 통합 재실입니다..

제일 먼저 만나는 수릉으로 제23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문조익황제로 추존)와 그의 비 신정황후의 능..

정자각..

수릉은 합장릉의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동구릉 중 가장 마지막으로 조성된 능이기도 하다.

수릉의 비문..

 

 

 

조선 왕조 5대 임금인 문종과 현덕왕후가 안장되어 있는 현능이다. 현덕왕후는 단종이 폐위되고 역시 폐위되었다가, 중종 때에 복위되었는데 이때 문종의 옆으로 이장되었다. 이때 이장되면서 문종과 현덕왕후의 무덤을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다른 언덕에 각각 자리 잡게 하는 동원이강릉의 형태로 조성하였다.

동원이강릉의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좌 문종, 우 현덕왕후의 능)..

문종의 능..

현덕왕후의 능..

현종 비문..

동구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

 

 

【건원(健元)릉】

건원릉은 특이하게 억새풀이 무성한 투박한 왕릉이다. 덕분에 다른 왕릉과 다른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벌초도 1년에 딱 한 번(한식)만 한다. 건원릉에 자란 억새를 벌초하는 한식 때에 국가유산청에서 특별관람을 추진해서 한시적으로 능침 바로 앞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능은 조선 왕조의 능제로 경영하였기 때문에 조선 왕조 능제의 표본이 되었다.  추존왕의 왕릉을 포함한 모든 조선 왕릉은 물론, 고려 왕릉을 포함해도 유일하게 능호가 2자(건원:健元)로 된 능이다.  건원릉의 정자각과 비각 내에 신도비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같은 건원릉 내의 목릉(선조, 의인왕후, 인목왕후)과 숭릉(현종, 명성왕후)의 정자각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울 서초구 헌릉에 자리한 태종의 신도비와 현재 동대문구 세종대왕기념관에 자리한 세종의 구 영릉 신도비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능이 위처럼 억새풀이 무성하게 된 사연은 이성계가 죽으면서 고향 함흥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지만 이방원은 개국 시조인 부왕을 멀고 먼 함흥에 안장한다면 나라의 위신과 제사 지낼 때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가까이 있는 곳에 모셔야만 자기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으니 도성 근처에 모시려고 했다. 그래서 유언에도 부합하고자 함흥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가 건원릉을 단장하는 꼼수로 대신했다고 한다.

또, 이성계는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가 있는 정릉에 같이 묻히길 원했으나 신덕왕후를 굉장히 싫어하던 이방원이 유언을 무시하고 새로 묏자리를 알아봐 묘를 썼고, 죄책감에 평소 고향을 그리워하던 이성계를 위해 그의 고향인 함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출처 : 나무위키에서 일부 발췌)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정자각..

 억새풀이 무성한 투박한 왕릉..

보물로 지정된 건원릉 신도비..

건원릉 비문은 태조 이성계의 비문이라서 그런지 다른 비문보다 엄청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왕조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인 휘릉(徽陵)/단릉..

휘능은 능침이 있는 언덕의 면적이 상당히 좁은 편이며 경사까지 있기 때문에 석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휘릉 비문..

휘릉은 소나무가 멋지네요..

겨울이라서 한적한 것이 여유롭게 걷기 좋습니다..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 능인 원릉(元陵)/쌍릉..

【원릉(元陵)/쌍릉】

조선 왕조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 능이다. 참고로 이곳은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파묘 자리를 다시 쓴 왕릉이다. 본래는 효종의 영릉이 이곳에 있었는데 왕릉 석물에 금이 가고 파손되는 사태가 계속 발생하자 현종 14년인 1673년에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으로 천장 했는데, 손자인 정조가 이곳에 자신의 할아버지(영조)를 안장한 것이다. 이를 '정조가 영조를 증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이 있으나 정조실록 즉위년 4월 11자의 기사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정존겸이 원릉의 자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정조도 대략 마음에 헤아려지는 바가 있었다며 동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원릉의 자리에 대해 대신과 비변사 당상들에게도 두루 물어 이의가 없자 능을 결정하였다는 언급이 있는 등 정조의 복수라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정순왕후 김씨의 눈치도 보이지 않을 수 없었을 터 결국 이 때문에 영조의 정비였던 정성왕후 서씨는 서오릉에 있는 홍릉(弘陵)에 홀로 안장되어 있다. 심지어 영조가 그 옆에 묻히기 위해 직접 자리까지 비워두었으나, 묻히지 못하여 홍릉은 옆자리는 있으나 능침이 없는 조선왕릉 전부를 통틀어 거의 유일한 형태가 되어 버렸다.(출처 : 위키백과)

정순왕후 비문..

영조의 비문..

조선 왕조 24대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의 능인 경릉(景陵)/삼연릉

경릉(景陵)/삼연릉】

경릉은 조선시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삼연릉이다. 사람들은 흔히 가운데가 왕의 봉분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정자각에서 바라볼 때 제일 왼쪽부터 조선 왕조 24대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의 능이다. 이는 유교식 장례 예법에서 서쪽을 높게 치기 때문이다. 무덤이 남향하므로, 아래에서 바라보기에 제일 왼쪽이 제일 서쪽이 되어 가장 높은 자리가 된다. 왕의 무덤이 가운데 있다면, 왕릉의 서쪽에 있는 왕비릉이 왕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비슷하게 종묘에서도 왕의 위패는 위계 순으로 서쪽부터 동쪽으로 배열한다. 현재는 접근을 통제하는 울타리가 상당히 아래쪽에 쳐져 있어서 어지간해서는 삼연릉을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출처 : 위키백과)

 

경릉 비문..

두 개의 능만 보인다 / 접근을 통제하는 울타리가 상당히 아래쪽에 쳐져 있어서 삼연릉을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경종비 단의왕후의 능인 혜릉(惠陵)/단릉

조선 왕조 20대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 심씨의 능이다. 무인석의 코가 유난히 크고, 움푹 들어간 눈에 이를 드러내고 웃는 등 다른 왕릉의 무인석에 비해 유달리 이국적인 모습이 특징적이다. 또한 특이한 점으로 다른 조선 왕릉들의 침향이 대부분 북쪽에 머리를 두고 남쪽을 바라보는 북침(北枕)의 형태를 취하는 데 비해 혜릉의 단의왕후는 서쪽에 머리를 두고 다리를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혜릉의 비문..

누운 소나무..

조선 왕조 18대 현종과 정비 명성왕후 김씨의 능인 숭릉(崇陵)/쌍릉..

조선 왕조 18대 현종과 정비 명성왕후 김씨의 능이다.

정자각이 특이하게도 맞배지붕이 아닌 팔작지붕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숭릉의 연지..

구리 동구릉 탐방을 마무리하며, 다음에 방문 시 이번에 못 본 선조의 목릉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