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산 산행 및 교동도 트레킹(2012. 12. 15일 토요일)】
교동도(喬桐島)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하는 면적이 44.32㎢ 섬으로 신라 경덕왕 때 교동현이라는 지명을 부여받았고, 조선시대 강화도호부와는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존속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강화군에 편입되었다. 교동도는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양사면과 내가면이 있고, 남쪽으로는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가 있고 북쪽으로 불과 2~3㎞의 바다를 끼고 황해도 연백평야가 있는 북녘 땅이 지척인 곳으로 6.25전쟁 당시 이북 황해도 및 인근주민들이 피난처로 임시 거주 하던 곳이다. 종전 후 북쪽 고향땅만 바라보며 돌아갈 날만 하염없이 기다리던 실향민들의 60여년 세월이 그대로 남아있기에 시간이 1960년대에 머물러 있는 섬이다.
교동도는 작아 보이는 섬이지만 이곳에는 현재 17개리에 약 3,200명이 살고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섬이다. 섬은 간척사업을 하여서 인지 섬의 서쪽으로 제법 넒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교동도에서 재배된 쌀은 미네랄이 풍부해서 인기가 좋다. 예전에 다녀 온 백령도의 경우에도 주민들 대다수의 주업이 농업인 것과 같이 섬에 의외로 농지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교동도는 고려시대부터 왕족들의 유배지로 활동되었으며, 특히 연산군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1506. 9. 2일 교동으로 유배되어 11.6일 사망 시까지 교동에 유배되어 위리안치 되었으며, 유배지는 신골(봉소리), 연산골(고구리), 읍내리 세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가장 높은 산은 화개산(華蓋山, 260m)으로 이 섬의 주산을 이루며, 봉황산(75m)·율두산(89m)·고양이산(35m)·수정산(75m) 등 모두 100m 이하의 낮은 구릉들이다. 화개산의 명칭은 산정의 형태가 솥뚜껑을 덮어 놓은 것 같다고 하여 화개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화개산 정상에서 본 강화도 섬의 파노라마..
▶11:00 교동향교에서 트레킹 시작(식사/휴식시간 포함 2시간 50분 트레킹)
건강셀프 등산회 제309차 산행은 “잊어버린 시간을 찾아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올 한해의 소중했던 추억과 마치 과거로 회귀한 것 같은 대룡마을의 풍광을 통하여 저물어 가는 한 해를 반추해 보고자 시간이 멈춘 교동도의 화개산을 추진하게 되었으며, 오늘의 트레킹은 창후리 선착장(09:30) ~ 교동 식사(아점) ~ 화개사 ~ 화개산 정상 ~ 대룡시장 추억여행 ~ 선착장 ~ 서울 도착(19:00 전후)의 약 6km, 3시간이 계획되었다.
트레킹 추진 : 교동향교 ~ 화개사 ~ 화개산 정상 ~ 한증막 ~ 교동면사무소 ~ 대룡시장
주중 한파도 누그러지고 모처럼 예전 기온이 회복된 날씨 속에 14명이 함께하였으며, 건셀애마를 포함한 차량 두 대에 나누어 타고 07:20분 신사역을 출발하여 교동도행 배가 다니는 강화도 하점면 창후리선착장에는 08:40분에 도착하였다. 창후리선착장에서 교동도에 가는 배(화개해운에서 운행)는 아침 7시부터 오후 6시(동절기에는 5시, 하절기에는 7시)까지 약 1시간 간격으로 다니며, 물때에 따라 첫배와 막배의 운항시간이 다소 조정되기도 한다. 교동도에 들어가는 운임은 편도기준으로 일반인이 2,300원(왕복 4,600원), 승용차 16,000원(왕복 32,000원)으로 다소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으며(신도 왕복 3,600원, 장봉도 1인 5,500원), 현재 연육교 공사가 ‘13년 착공을 목표로 진행중이므로 조만간 배를 타고 교동도를 찾아가는 추억 한 가지는 사라질 것이다.
창우리 선착장에 도착하고(산누리님 작품)
교동도 운임은 어른 왕복기준 4,600원/ 소형차량 32,000원 입니다.
교동도를 육지와 연결하는 연육교가 '13년도 완공된다고 하니 교동도 여행이 쉬워지는 반면에,
배를 타고 가는 추억 한가지는 사라지게 되겠네요..
월선포선착장을 향하여 달려가고(산누리님 작품)
새우깡을 주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갈매기도 몇마리만 쫒아 오네요(일출님 작품)
먹구름이 가득 낀 날씨가 반영되어 생각지도 못한 멋진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 팀은 09:30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15분 정도 후에 월산포선착장에 도착을 하여 식사를 하기 위하여 예전에 KBS방송국의 1박2일 팀이 식사를 하였던 대룡리 대풍식당으로 향하였다. 이곳에는 1박2일 팀이 식사한 대풍식당과 은지원씨가 벌칙으로 머리를 깍은 이발소가 있으며, 대풍식당의 식사메뉴는 국밥과 냉면 두 가지 뿐이며 1박2일팀이 국밥을 맛있게 먹던 모습이 기억이 나서 순대국밥을 시켜먹었다. 순대국밥은 1인 5,000원으로 순무김치와 묵은지가 반찬으로 나왔으며 먹을 만했다. 이 가게는 40년 넘게 한 자리에서 국밥을 팔고 있었으며 주인할머니 연세가 80세를 넘겨 며느리가 주로 가게 운영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1박2일 팀이 식사를 한 대풍식당으로 40년 이상 이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으며,
메뉴는 국밥과 냉면 두종류가 있습니다..
국밥은 1인 5,000원으로 순무김치와 묵은지가 나오는데 먹을만 하더군요..
• 교동향교(10:55) ~ 화개산 정상(12:10)(교동향교에서 약 1시간 10분)
아․점으로 식사를 한 후 대룡식당은 트레킹 종착지인 관계로 트레킹 후 들러보기로 하고 차량으로 교동향교로 이동을 하여 10:50분 향교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여 잠시 정비 및 인증사진을 찍고 향교로 향하였다. 향교입구 주차장에는 하마비(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되는 곳)가 있는데 원래는 읍내리 북문 밖에 있던 것을 향교 앞으로 옮겼다고 한다.
향교입구 주차장이 있는곳에 있는 하마비에서 단체인증(일출님 작품)
오늘은 산행이 아니라 트레킹이며, 그것도 시간이 멈춰 버린 과거로의 시간여행 이므로 되도록 천천히 진행하기로 하였다. 향교에 도착하여 인증사진을 찍으려는데 60대 중반 어르신 한분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신 후 향교에 대하여 안내를 하겠다고 하여 향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르신은 향교를 지키고 있는 분으로 CCTV로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 나왔으며 어르신 덕택에 향교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향교 입니다(일출님 작품)
향교에서 해설사와 함께 단체 인증(일출님 작품)
교동항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자의 초상화를 모신 향교로 고려 충렬왕 12년(1286) 문성공 안유선생(1243∼1306)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이곳에 모셨다고 전한다. 교동향교 대성전에는 공자, 맹자 등 중국의 오성위(五聖位)와 송조이현 및 과거 동무(東無), 서무(西無)에서 모시던 이황, 이이, 서경덕선생 등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인되어 있었다.
대성전으로 공자, 맹자 등 중국의 오성위(五聖位)와 송조이현 및
과거 동무(東無), 서무(西無)에서 모시던 이황, 이이선생 등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인된 곳입니다..
대성전 내부 중앙에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일출 작품)
약 20여분 향교를 둘러보고 향교 옆에 있는 성전약수에서 물을 한 모금 먹었다. 향교 옆에 있는 성전약수는 물이 화개산에서 흘러내려 오는데 물맛이 좋고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하며, 최근에는 아토피성 피부병에 좋다고 알려져 많은 차람이 찾는다고 적혀 있었다.
위장병과 아토피에 좋다고 알려진 성전약수..
성전약수에서 물을 한 모금씩 먹은 후 비구니 절인 화개사로 향하였으며, 화개사 가는 길은 잘 정비가 되어 있었고 향교에서 약 800m 떨어져 있었다. 화개사는 절을 새로 지은 것 같이 깨끗하였으며, 절 한쪽에는 수령 210년이 넘는 멋진 소나무가 세월의 인고를 견디고 서있었는데 상당히 운치가 있었다. 화개사에서는 계속 직진하면 화개산으로 가고, 좌측 숲길로 따라가면 교동면사무소(대룡시장)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거리가 둘 다 1.5km라고 적혀 있었다.
화개사 가는 길이 운치가 있네요(산누리님 작품)
화개사에서 본 모습..
수령 210여년을 자랑하는 소나무와 화개사..
화개사를 지나 화개산 가는 길이 운치가 있었으며, 올라가는 길 좌우로 바다가 조망되어 마치 바닷길 사이로 걸어가는 느낌이 들어 섬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가는 길 도중에 밧줄코스가 나오며 밧줄코스를 지나면 강화도 향토유적 29호인 화개산 봉수대가 나온다. 현재는 낮은 석단만이 남아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너무 좋았으며 봉수대를 지나 조금만 더 진행하면 화개산 정상이 나오며 화개산 정상에는 향교(향교 관람시간 25분 제외)에서 약 50분이 소요된 12:10분에 도착하였다.
봉수대 스케치(일출님 작품)
봉수대에서 본 강화의 섬 파노라마..
화개사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 화개산 정상(12:40) ~ 대룡시장(13:20)(화개산 정상에서 약 50분)
화개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서쪽으로는 볼음도와 서검도, 아차도, 주문도 등이 섬이 다도해처럼 펼쳐지고 동북쪽으로는 북녘땅이 잡힐 듯 하고 시야가 좋으면 북녘 개성의 송학산이 보인다고 한다. 정상에서는 손만 뻗으면 닿을것 같은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 눈 앞에 고향을 두고도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이 얼마나 많이 여기에 올라 와 북녘 땅을 바라보면서 깊은 슬픔에 잠겼는지를 생각하니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정상에서 간식으로 준비한 떡, 과일, 빵 등을 따끈한 커피, 우유 등과 마시면서 약 30여분 조망을 즐긴 후 반대방향으로 하산을 실시하였다.
화개산 정상에서 본 강화 섬 파노라마..
화개산 정상 단체인증(산누리님 작품)
화개산 정상에서 본 북녘 땅의 모습..
북녘 땅을 당겨 본 모습(일출님 작품)
북녘 땅에도 마을이 보이네요(일출님 작품)
북녘마을에 무슨 글씨가 새겨진 것 같고(산누리님 작품..)
우리 땅 고구리마을의 전경(산누리님 작품)
산불감시탑에서 추억 만들기 퍼포먼스도 해 보고(일출님 작품)
화개산을 떠나며(일출님 작품)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면 청동기시대 이후 유적인 성혈(바위구멍그림)바위가 나오고 조금 더 내려가면 북병망루를 나오고, 잠시 후 푸른 이끼가 끼어 있는 약수터가 나오는데 사시사철 물이 나온다고 한다.
자연숭배 흔적으로 추정되는 성혈바위..
약수터로 물맛이 좋더군요..
약수터를 지나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고 숲길 끝자락에는 목욕문화의 역사적가치가 높은 조선 후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토와 돌로 만든 한증막이 나온다. 소나무를 때서 돌을 달군 후 한증을 한 곳으로 우리 선조들의 병환과 피로를 다스리는 민간요법으로 이용되어온 시설이다. 한증막 밖에는 냇물이 흐르고 우물까지 있어서 한증 후에 차가운 물로 목욕을 했으며, 1970년대까지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과거 교동에는 이곳 외에도 여러 곳에 한증막이 있었으나 모두 허물어졌고, 현재 여기 하나만 남아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고..
목욕문화의 역사적가치가 높은 조선 후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황토와 돌로 만든 한증막이라고 하네요..
한증막을 둘러 본 후 15분 정도 걸어가면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대룡면사무소가 나왔으며 면사무소에는 화개산 정상에서 약 50분이 소요된 13:20분에 도착하였다.
교동면 사무소에 도착하여 트레킹을 마칩니다.
• 대룡시장(14:00) ~ 월산포선착장(15:00)(화개산 정상에서 약 1시간)
대룡면사무소 약 10여분 신발에 묻은 진흙도 털어내고 잠시 쉰 후 면사무소에서 조금 내려간 곳에 위치한 시간이 멈춰버린 대룡시장을 찾았다. 대룡시장은 과거 6.25민족전쟁의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형성되어 교동리 상권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곳인데, 지금은 1960~70년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시간이 멈춘 곳이 되어 버렸다. 이곳에는 마치 드라마 세트장같이 잡화점, 이발소, 장의사, 미용실, 구멍가게, 지물포 등의 두어 평짜리 가게들이 좁은 도로를 마주보며 어깨를 맞대며 을씨년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과거 ’60~’70년대에는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하여 이곳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로 활기에 차 있었으나 이제는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변해버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도 연육교가 생기고 나면 관광객들이 늘어 조금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발이 되면 더 이상 관광객들이 찾지 않을 수 있으니 시장통을 보전하면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고도의 전략을 강구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마침 은지원이 이발을 한 이발소는 마침 문을 열어 두고 있어 잠시 구경을 하였으며, 여기서 약 20여분 추억여행을 한 후 교동읍성을 보기 위하여 출발하였다.
초등학교로 최신 건물이더군요..
지금부터 시간속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교동이발관은 1박2일의 은지원이 벌칙으로 머리를 깍은 곳입니다..
이발소가 열려있으며, 이 분이 은지원씨를 이발해 주신 분입니다..
양복점, 신발점도 보이고(일출님 작품)
방앗긴, 중화요리점도 있고(산누리님 작품)
약국은 약사자격증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이곳에는 약방이 있습니다..
다른 이면도로로 다소 깨끗한 모습으로 강아지 두마리가 달려오네요..
멈추어 버린 옛날 시계가 이 거리를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다방과 뷰티샆도 눈에 보이고(일출님 작품)
방앗간 입니다..
정육접, 식료품점 등도 보입니다..
추억의 거리 단체인증 입니다(산누리님 작품)
차도에 교동읍성 200m 안내표지판이 나오며 이를 따라 가다보면 조그만 마을을 지나면 넓은 평야가 나오고, 좌측으로 진행하면 교동읍성이 나온다.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 7년(1629년) 경기수영(京畿水營)을 설치할 때 돌로 쌓은 읍성으로 둘레 305m 높이는 약 2.4m로 동남북 세 곳에 성문을 설치했는데, 현재 남문만 남아 있다. 동문과 북문의 유실연대는 명확치 않으며, 남문인 유랑루는 1921년 폭풍으로 무너져 반원 형태의 홍예문이 남아 있고 성문 앞에는 거북상이 버티고 앉아 있다.
교동읍성 남문입니다..
반대편에서 찍은 실루엣..
거북상이 버티고 있고(일출님 작품)
교동읍성을 구경한 후 15:00에 출발하는 배를 타기 위하여 월선포선착장으로 출발하였으며, 14:20분에 월선포선착장에 도착하였다. 선착장에서 표를 끊고 이제나 저제나배가 출발하기를 기다렸으나 1시간 10분이 지난 15:30분에 배가 창우리선착장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야듀..교동도(일출님 작품)
교동도에 들어가고 나가는 배는 물때가 우선 맞아야 되고, 또한 사람이 적당하게 와야만 출발하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창우리선착장에 도착한 후 강화의 자랑인 고인돌을 잠시 둘러보았다. 강화의 고인돌은 북방식(탁자식) 지석묘의 대표적인 고인돌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고인돌을 본 후 풍물시장에 들러 강화도 명물인 벤뎅이무침과 바지락칼국수로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강화 고인돌입니다..
강화여행을 마치는 기념으로 새들이 떠나가는 것 같네요(산누리님 작품)
벤뎅이 부침과 바지락 칼국수로 오늘의 모든 일정을 바칩니다(산누리님 작품)
▶트레킹 후기
이번 트레킹은 금년 한해를 돌이켜보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보기 위하여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도심을 벗어나 시간이 멈춰버린 대룡시장이 있는 교동도 섬 트레킹이 추진되었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섬으로 산행(트레킹)이 가능한 곳은 석모도, 무의도, 공항철도가 개통되어 신도~시도~모도를 연결하는 코스와 장봉도 등이 알려져 있으며, 교동도는 북녘 땅과 가까워 출입이 통제되고 수심이 낮아 물때를 맞추기 쉽지 않아 접근하기 쉽지 않은 섬이었으나 최근 1박2일에서 소개한 이후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교동도는 실향민들이 고향 땅에 돌아갈 생각만 하다 보니 6~70년대 이후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로 머물러 있고, 이것이 오히려 향수를 불러 일으켜 요즘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섬이다. 이번 트레킹은 한 해도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 과거로 돌아가 예전 우리들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갖을 수 있었던 뜻 깊은 트레킹이 되었으며, 매번 섬 여행에서 느낀 것과 같이 섬은 풍광도 아름답지만 바다를 보며 걷는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얻을 수 있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교동도는 시간이 멈춰 버린 대룡시장 과 지척에 있는 북녘 땅 고향을 두고도 가지 못하는 실향민의 애환을 피부로 느낄 수 있으며, 이외에도 향교 중에 최초로 공자의 초상화를 모신 교동항교, 우리나라 민초들의 건강요법으로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지혜가 담긴 한증막, 바닷길 사이로 난 화개산 정상가는 길에서 볼 수 있는 멋진 풍광과 섬에 많은 농토가 있다는 사실 등 여러 가지 볼거리가 있는 멋진 여행지로 이번 트레킹도 매우 유익하고 즐겁고 보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될 것이다.
이번 트레킹 계획을 수립하고 리딩 및 안전운행에 수고해준 일출대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간식용 빵, 과일, 떡 등을 준비해 모든 분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씀을 전한다. 또한 모처럼 트레킹에 합류한 영심이, 조선수군, 파도와 영표님 그리고 근무로 인하여 3년 만에 합류한 세일러문, 선 부부님들도 만나서 반가웠으며 앞으로 산에서 자주 뵐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타 산행간 시종일관 함께 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공유한 심통님 등 모든 분들의 노고에도 감사를 드린다. 이번 산행에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은 다음 주에는 근교산행으로 수도서울의 면산인 북한산이 계획되어 있으니 많이 참석하여 즐거운 추억을 만드시기 바라며, 자세한 세부일정은 토요산행란에 게시되어 있으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금번 산행 참석자(14명) : 심통회장, 일출대장, 산누리, 고산, 천송, 초코, 영심이, 파도와 영표, 일심초, 세일러문과 선 부부, 조선수군, 산사랑
오늘의 팁 : 자연의 치유능력(출처 : 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에서)
1,900년대 초에 미국에 한 결핵환자가 있었으며, 당시는 결핵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으로 결핵에 걸리면 치사율이 높았기에 결핵을 극히 무서워하던 시절이었다. 그 환자는 자신이 불치병인 결핵에 걸린 줄을 알고는 ‘결핵요양원 침대에서 시들시들 말라 죽느니 차라리 산속 깊숙이 들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말을 타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느 한 곳에 이르러 주위를 살펴보니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 ‘이곳이 내가 죽을 곳이로구나!’ 생각하고는 그 자리에 움막을 치고 골짜기에 물을 마시고 경치를 즐기며 하루하루 한 달 한 달을 보냈다. 그런데 웬일인지 기운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로 기운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봄이 돌아와 땅에 옥수수 씨앗을 뿌리고 채소를 가꾸며 나날을 보냈으며, 어느날 병원을 찾아가 검진을 하였더니 결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곳이 바로 요세미티국립공원이다.
이 소문이 퍼지자 곳곳에서 불치병 환자들이 모여 들어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하여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자연은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 옛날에 없던 성인병들과 마음의 병들이 날로 늘어만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연을 떠났기 때문이다. 자연을 떠나고, 자연을 파괴하며, 오염시키면서 사람들은 몸도 마음도 병이 들어간다. 울님들 1주일에 한번이라도 자연과 더불어 생활할 수 있는 건강셀프등산회 산행에 동참하여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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