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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대명산 산행기/서울,경기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남한산성(13. 4. 27)의 美를 찾아서..

by 산사랑 1 2013.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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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산행 2013. 4. 27일 토요일】인기 백대명산 제95위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都城)을 지키던 남부의 산성으로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 암문(暗門)·우물·보(堡)·누(壘) 등의 방어 시설과 관해(官해), 군사 훈련 시설 등이 있다.

 

이 산성의 주변 지역에는 백제(百濟) 초기의 유적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일찍부터 온조왕대(溫祚王代)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13년(673)에 한산주(漢山州)에 주장성 (晝長城, 일명 일장성(日長城))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로서 현재 남한산성이 위치한 곳이라고 믿어져 내려온다. 고려시대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으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에 일장산성(日長山城)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둘레가 3,993보이고, 성내에는 군자고(軍資庫)가 있고, 우물이 7개인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또한 성내에 논과 밭이 124결(結)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현재의 모습으로 대대적인 개수를 본 것은 후금(後金)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李适)의 난을 겪고 난 1624년(인조(仁祖)2)이다. 인조는 총융사(摠戎使) 이서(李曙)에게 축성할 것을 명하여, 2년 뒤에 둘레 6,297보·여장(女墻) 1,897개·옹성(甕城) 3개·성랑(城廊) 115개·문 4개·암문 16개·우물 80개·샘 45개 등을 만들고 광주읍의 치소(治所)를 산성 내로 옮겼다. 이때의 공사에는 각성(覺性)을 도총섭(都摠攝)으로 삼아 팔도의 승군을 사역하였으며, 보호를 위하여 장경사(長慶寺)를 비롯한 7개의 사찰이 새로 건립되었으나, 장경사만이 현존한다. 그 뒤 순조(純祖) 때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설이 정비되어, 우리 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을 완비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처음 축성의 목적을 대변해 주듯이 유사시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이 73칸 반의 규모이고, 하궐(下闕)이 154칸이나 되었다.

 

1798년(정조(正祖)22) 한남루(漢南樓)를 세우고 1624년에 세운 객관(客館)인 인화관(人和館)을 1829년(순조(純祖) 29)에 수리하였다. 관해(官해)로는 좌승당(左勝堂)·일장각(日長閣)·수어청(守禦廳)·제승헌(制勝軒)을 비롯하여, 비장청(碑將廳), 교련관청(敎鍊官廳)·기패관청(旗牌官廳) 등의 군사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종각(鐘閣)·마구(馬廐)·뇌옥(牢獄)·온조왕묘(溫祚王廟)·성황단(城隍壇)·여단(여壇) 등이 이루어졌고, 승도청(僧徒廳)을 두어 승군을 총괄하였다. 남한산성의 수어(守禦)는 처음에 총융청(摠戎廳)이 맡았다가 성이 완성되면서 수어청(守禦廳)이 따로 설치되었다.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수어사인 이시백(李時白)은 서성을, 총융대장(摠戎大將) 이서(李曙)는 북성, 호위대장(扈衛大將) 구굉(具宏)은 남성, 도감대장(都監大將) 신경진(申景縝)은 동성 망월대, 원두표(元斗杓)는 북문을 지켰다. 그러나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수항단(三田渡受降檀)으로 나가 항복하였으나, 그 뒤 계속적인 수축을 하여 경영되었다

(출처 : 문화재청)

 

북문에서 서문가는 길에 있는 연주봉 옹성의 아름다운 모습..

 

 

▶11:35산행 시작(약 4시간 산행)

 

금일산행은 건강셀프등산회 제328차 산행으로 대구 비슬산이 추진되었으나 개인적인 일이 있어 홀로 남한산성 일주를 하였다. 남한산성일주는 ’07. 4. 23 처음 남한산성유원지입구에서 ~ 남문 ~ 서문 ~ 북문 ~ 동문 ~ 남문일주를 한 후 간혹 시간이 나면 혼자서 일주를 하곤 하였던 곳이다. 남한산성은 한강과 더불어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으며, 조선 왕조때는 선조부터 순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로 비록 인조 당시 병자호란의 치욕을 간직하고 있지만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항전 전적지로 최고 수준에 달한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지로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산림욕, 가을단풍, 겨울 설경을 자랑하며, 특히 사시사찰 푸른 소나무의 멋진 자태는 서울 인근에서 최고라 할 만하다.

 

아침에 이비인후과를 다녀온 후 역사가 숨 쉬는 남한산성 성곽 탐방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지하철 8호선 남한산성전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남한산성 유원지 입구에 11:30분에 도착하였다. 이번 산행은 남한산성유원지입구에서 ~ 남문 ~ 동문 ~ 북문 ~ 서문 ~ 남문의 성곽일주 ~ 남한산성유원지입구로 원점회귀로 추진할 계획이다.

 

남문 올라가는 계곡은 가물어 있네요..

 

 

• 남한산성유원지(11:35) ~ 남문(12:04분)(들머리에서 29분)

 

남한산성유원지 입구에서 잠시 정비를 한 후 11:35분에 남문을 향하여 출발을 하였다. 유원지 입구에는 오늘 오후 2시에 게최되는 “제123주년 노동절 기념식 및 노동가족 음악제”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모처럼 맑은 날씨로 많은 상춘객들이 남문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남문 가는 길에는 탑 공원, 통일기원 탑, 소망 탑 등 돌탑이 있으며, 혼자 산행을 하다 보니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여유있게 진행을 할 수 있었고 들머리에서 약 30분이 지나 조선시대 임금의 출입문인 남문에 도착하였다.

 

들꽃들이 봄이 왔음을 알려주고..

 

통일기원탑..

  

남문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네요..

 

• 남문(12:05) ~ 동문(12:42분)(남문에서 37분)

 

남문은 남한산성의 정문으로 4대문 중에 규모가 가장 크며, 조선시대 임금들의 출입문으로 1,779년(정조 3년) 성곽을 보수할 때 개축하고 지화문(至和門)이라 하였다고 한다. 동문가는 성곽 길은 깨끗하게 단장이 되어 산객들을 맞이하고 있었으며,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성곽 길을 걷다 보면 세상의 모든 걱정, 근심도 사라지고 편안한 마음이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산객들이 이 길을 혼자 걷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남한산성의 4대문 중에 가장 크며, 임금들의 출입문이었던 남문의 웅장한 모습.. 

 

성문 옆에 진달래가 활작 피어 있더군요..

 

동문으로 가는 성곽들이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네요..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성곽길을 걷다 보면 세상의 모든 걱정, 근심도 사라지고..

 

남문에서 동문까지는 약 1.7km로 여기에는 옹성이 3개가 있으며, 남문에서 약 15분쯤 (0.6km)가면 남한산성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제2옹성이 나오는데 이곳은 다른 옹성과 달리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으로 현재 제2옹성 앞 쪽을 옹성치(치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적을 입체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시설물 중의 하나로 남한산성에 5개가 있다)돌출시켜 를 복원 중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는 맞은편에 검단산이 조망이 되는데 오늘은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거행하고 있더군요. 

 

제2옹성 가는 길에서 검단산이 조망되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곽 길이 우리네 인생같아서 친근한 느낌이 드네요..

 

《옹성》

옹성은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경사가 완만한 지역의 성문 밖에 또 한 겹의 성벽을 둘러쌓은 이중 성벽으로 총 5개(동문, 북문 각1개, 남문 3개)가 있다.

 

제2 옹성 앞에 복원 중인 옹성치의 모습..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거행하고 있네요..

 

남한산성의 오르막 성곽 길은 어김없이 하늘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남한산성 성곽 길은 서울에서 하늘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길로 정평이 나 있어 하늘이 드높은 가을철 산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오르막 성곽이 끋지점은 어김없이 하늘과 맞닿아 있고.. 

  

’07년도 남한산성 일주 당시 느꼈던 사항으로 남문에서 동문가는 구간은 성벽이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대부분 보수가 이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2옹성에서 약 7분 경과한 지점 앞에도 옹성치를 복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동문은 남문에서 약 37분이 소요된 12:42분에 도착하였다.

 

제2옹성에서 약 7분 정도 진행하면 볼 수 있는 복원 중인 옹성치..

 

들꽃이 여기저기 아름답게 피어 있고..

 

산성 마을이 조망되고..

 

새로이 단장한 동문부근의 모습이 보기 좋네요.. 

 

 

• 동문(12:43) ~ 북문(13:51분)(동문에서 1시간 8분)

 

동문에서 북문까지는 2.9km로 성문간의 거리가 가장 길며 길도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해야 하므로 힘이 가장 많이 드는 구간이라 할 수 있으며, 가는 도중에 송암정, 장경사 신지옹성, 동장대지터, 돌탑 및 작은 군포지터 등이 있다.

 

 동문의 모습.. 

  

성곽의 웅장한 모습.. 

  

황진이가 심명한 불도를 설법하여 이에 감명 받은 기생 하나가 자괴하여 투신자살한 지역인 송암정은 동문에서 약 6분 거리에 있으며, 커다란 바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송암정의 바위..

 

《송암정》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 하산하여 이곳을 지나는 도중 기생2명과 함께 술을 마시던 유생이 황진이를 희롱하려 하자 황진이가 심명한 불도를 설법하므로 이에 감명 받은 기생 하나가 자괴하여 투신자살한 지역임.

 

송암정 방향으로 뒤돌아 보니 멋진 바위가 보이네요..

 

장경사 신지옹성은 동문에서 1.1km 거리에 있으며, 가는 길의 성곽 길은 멋진 소나무가 도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장경사 신지옹성에는 동문에서 약 23분이 지나 도착하였으며, 옹성이 아주 멋지게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장경사 신지옹성은 길이가 159m로 한봉성과 봉암성에 대한 방어를 주목적으로 설치하였으며, 옹성 끝에 2개소의 포대가 설치되어 있다.

 

소나무들이 멋지게 도열하고 있네요..

 

정말 멋집니다..

 

장경사 신지옹성입니다..

 

이곳에서 0.35km만 더 가면 남한산성의 5대 수어청 중에 하나인 동장대지가 있었다는 표식을 볼 수 있었으며,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올라가면 성곽들이 내려앉아 보수가 필요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지역은 ’09년까지만 해도 잘 보수가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많이 무너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남한산성의 성곽 길은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되며 대다수가 경사가 심함에 따라 폭우, 폭설 등에 자주 무너져 성문과 함께 성곽들에 대한 보수소요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이 구비구비 이어지는 성곽 길이 계속되고.. 

 

옹성출입문과 께 신지옹성이 돌출되어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보수가 필요한 부분들이 많이 있네요..

 

 

동문에서 약 30분지나 동장대터를 지났고, 동장대터에서 약 2분후 벌봉으로 갈 수 있는 제3암문을 지났다. 이곳에서 벌봉까지는 0.5km로 벌봉을 갔다 오려면 왕복 1km가 소요되어 그냥 통과하기로 하고 이곳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약 10분 정도 휴식을 취했다.

 

벌봉으로 갈 수 있는 제 3암봉의 모습.. 

 

《암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로 대다수 규모가 작으나, 이곳 제3암문은 원성과 봉암성을 연결하는 주출입구로 다른 암문에 비해 규모가 큰 편이다.

 

 

제3암문을 지나 약 7분후에는 규모가 조금 적은 제4암문을 지났으며, 이후 소나무와 어우러진 멋진 성곽 길을 볼 수 있었다. 성곽 길이 너무 멋있게 조성되어 있어 찬사가 절로 나왔으며, 잠시 후 그 지역을 지나갈 때보니 성곽을 보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규모가 적은 제4암문..

 

소나무와 어우러진 멋진 성곽 길이 나오고..

 

당겨 잡은 모습..

 

휴일에도 성곽을 보수하고 있네요..

 

멋진 소나무들이 서 있는 지역에 올라서면 북문이 보이며, 북문은 동문에서 약 1시간 8분이 소요된 13:51분에 도착하였다.(예전에 북문에서 동문까지 53분이 소요된 것과 비교해 볼 때 동문에서 북문으로 가는 길이 더 가팔라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됨을 알 수 있었다.)

 

멋진 소나무가 보이고.. 

 

북문입니다..

 

• 북문(13:51) ~ 서문(14:22분)(북문에서 31분)

 

북문에는 진달래들이 군데 군데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북문에서 서문까지는 1.1km거리로 약 7분 후 북장대터를 지났다. 북장대터에서 약 11분 지나 연주봉 옹성으로 갈 수 있는 제5암문에 도착하여 연주봉 옹성으로 향하였다.

 

 진달래들이 군데 군데 피어 있고..

 

 

연주봉 옹성으로 갈 수 있는 제5암문에 도착하고..

 

제5암문을 나서 연주봉 옹성으로 가는 길..

 

연주봉 옹성가는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었으며, 옹성 끝에 전망대가 있었으나 날씨가 흐려 조망이 별로였다. 연주봉 옹성을 구경한 후 성곽 외곽 길을 따라 진행하였으며, 서문가는 성곽길에 멋진 소나무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연주봉 옹성가는 길.. 

 

연주봉 옹성 전망대..

 

연주봉 옹성에서 본 지나온 길에 길을 따라 소나무들이 무성하네요..

 

 서문가는 성곽 길에 멋진 소나무들이 있네요.. 

 

연주봉 옹성에는 약 11분이 지나 서문에 도착하였는데 서문은 북문에서 약 31분이 소요된 14:22분에 도착하였다. 서문은(우익문) 적의 공격(광나루나 송파나루)을 가장 받기 쉬운 지역임을 고려하여 문루를 다른 문에 비해 약 1/3수준으로 작게 하였다.

 

바깥에서 본 서문의 모습..

 

서문(14:23) ~ 남문(15:11분)(서문에서 48분)

 

서문에서 남문까지는 수어장대, 영춘정 등이 있으며, 수어장대에서 남문가는 길은 70~90년생의 멋진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등산객들의 그늘이 되어주고 있다.

 

소나무들이 도열 한 성곽 길이 너무 멋집니다.. 

 

《남한산성 소나무》

남한산성의 소나무는 일제시대 당시 국유림으로 조성하여 벌채를 금지하는 금림조합으로 보호하여 서울 근교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남문 ~ 북문에 대다수가 위치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문에서 남문 방향의 소나무의 자태는 너무 아름다워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서문을 지나 계속해서 외곽 길을 따라 진행하였으며, 도중에 예전 남한산성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 했을 때 설치한 것으로 추정이 되는 월담을 하지 말라는 안내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격세지감을 느꼈다. 수어장대가 가까워 오는지 성곽에 깃발들이 나부끼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외곽에서 보니 새롭게 보였다. 서문에서 10분 경과하여 조그만 문이 있는 것이 보여 그리로 나가니 그 문이 제6암문(서암문)으로 수어장대는 반대방향으로 100m 돌아가야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월담을 하지 말라는 안내판이 있네요.. 

 

 성곽에 깃발들이 나부끼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수어장대로 나가는 제6암문(서암문)

 

남한산성에 와서 수어장대를 안보고 가는 것은 생각을 할 수 없기에 수어장대로 향하였으며, 수어장대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1호로 주변에는 청량당과 매바위가 있으며, 또한 보호수인 향나무가 있다. 청량당(청량산 정상 482.6m)은 동남쪽 축성을 책임지던 이회장군을 기리는 사당으로, 이회는 성 축조시 기초가 튼튼한 완벽한 시공을 하다가 기일내에 완공하지 못하여 성 축조비를 착복하였다는 모함을 받고 참수형을 당한 장군으로 그 후 무고함이 밝혀져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청량당을 세웠다. 또한 매바위는 이회가 결백하다며 그 증거로 수어장대 앞의 바위에 매 한마리가 앉을 것이라고 하여 죽기 전에 매가 날아와 그의 결백을 증거 했다는 바위라고 한다.

 

보호수인 향나무..

 

현재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수어장대..

 

《장대》

장대는 전쟁시 장군의 지휘소로 남한산성에는 5개장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영조때 증축한 수어장대만 보존되어 있다.(수어장대는 최초 서장대로 단층이었으나 영조가 2층으로 증축하였다.)

 

수어장대 옆에 멋진 소나무가 있네요..

 

수어장대에서 약 12분간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 남문으로 출발하였으며, 약 8분 후 팔각정인 영춘정을 지나갔다. 영춘정 앞에 있는 소나무가 환상적이었으며, 영춘정을 지나 남문가는 길은 성곽길을 따라 소나무들이 멋지게 도열해 있었으며, 남문에는 서문에서 약48분 소요된 15;11분에 도착하였다.

 

 수어장대에 있는 소나무들도 기품이 있고..

 

수어장대에서 남문 가는성곽 길..

 

영춘정 앞에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들..

 

팔각정으로 되어 있는 영춘정..

 

성곽 길이  마치 푸른 숲속으로 뱀이 기어가는 것 같네요.. 

 

남문 가는 길이 너무 환상적이며, 멀리 검단산이 보이네요..

 

남문가는 길에도 소나무들로 덮여 있으며, 남문이 보이네요..

 

남문에 도착했습니다..

 

• 남문(15:12) - 남한산성유원지 입구(15:34분)(남문에서 22분)

 

남한산성유원지 입구까지 가는 길에는 석가탄신일을 축하하는 연등이 입구까지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남한산성유원지입구에는 남문에서 22분이 소요된 15:34분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마쳤으며, 노동가족 음악제를 약 10분간 구경을 한 후 집으로 출발하였다.

 

석가탄신일을 축하하는 연등이 입구까지 매달려 있고요..

 

노동가족 음악제가 열려약 10여분간 구경을 하였습니다..

초청가수의 노래가 이어지고..

 

어린이들이 발리댄스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산행 후기

 

이번 산행은 집안사정으로 대구 비슬산을 가지 못한 대신에 모처럼 남한산성을 둘러 보면서 남한산성의 애환을 되새겨 보았다. 사실 남한산성은 「칼의 노래」작가 김훈 선생의 작품에서 병자호란 당시 한겨울 고립무원의 남한산성내에서 벌어지는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 간의 말싸움과 '죽어서도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처절한 고뇌를 엿보게 해주는 역사가 있는 곳이다. 당시 사정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조선은 싸움다운 싸움을 할 수 도 없는 전력으로 청나라에서는 포위만 한 채 조선의 자중지란이 일어나도록 기다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며, 결국 청의 뜻대로 이듬해 봄 당시 임금인 인종이 삼전도에서 항복을 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남한산성은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항전 전적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실제는 치욕을 간직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각설하고 하루빨리 성이 완전히 수리되고 아울러 복원중인 옹성치가 조속히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남한산성에서 병자호란 당시의 상황을 떠 올리면서 걷다 보니 어떠한 삶이라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느낌과 함께 나에게 주어진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하여 묵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또한 남한산성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 군락지가 있으며, 그 소나무들의 자태 또한 다른 어디의 소나무들과 견주어도 빠지지 않기 때문이며,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성곽 길은 마치 우리네 삶의 한 단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루 산행으로 그 산에 대한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 많은 않지만 후답자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나라 줄 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졸작을 써 본다. 이번 산행에서 가지 못했던 대구 비슬산은 근로자의 날에 하루 휴가를 내어 안내산악회를 따라 돌아볼 생각이며, 다음 주 건강셀프등산회 토요 산행은 해남 흑석산(650.3m)이 계획되어 있으니 많이 참석하여 흑석산의 아름다운 철쭉을 통하여 완연한 봄기운도 느껴보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