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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동남아여행(베트남)

후에이동 및 왕궁 탐방(19.12.6)

by 산사랑 1 2020.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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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후에는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딴 호아(Than Hoa)로 불렸으며, 1687년 후에에서 5km 북동쪽에 있는 바오 빈(Bao Vinh) 마을에 도시의 성곽이 건설된 이후 1744년 응우옌 씨(阮氏)를 가문으로 하는 남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1802년 프랑스의 도움으로 응우옌 왕조를 건국한 쟈롱 황제가 후에를 수도로 정하였고 1945년 응우옌 왕조는 멸망했다. 1885년 프랑스는 통킹 지역에 대한 종주권을 왕실로부터 거부당하자 후에를 포위했다. 프랑스 측 자료에 따르면 3일간 지속된 후에 공격에서 왕궁 장서각을 파괴했고, 고가의 귀중품이 도난당했다.

 

후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최대 격전지가 되었으며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차례로 후에를 탈환하면서 무고한 국민들이 살해되는 살육의 현장이 되었고 왕도 대부분이 황폐해졌다. 1990년대 들어 지방 정부가 후에의 가치를 자각하기 시작해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후에는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유적지 관광이 가능한 도시이며 그래서 입장료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도시이기도 하다. 후에는 흐엉 강(Song Huon)을 사이에 두고 북쪽의 구시가지와 남쪽의 신시가지로 나뉘며 짱띠엔 다리와 푸쑤언 다리가 양쪽을 잇는다. 구시가지에는 왕궁 등 응우옌 왕조의 유적지가 있고 동바시장이 있다. 신시가지에는 호텔, 레스토랑, 토산품점, 여행사가 밀집되어 있다. 흐엉 강을 따라 남쪽으로는 역대 황제들의 무덤이 있는데, 예전에는 보트를 타고 이곳을 둘러보았으나 이제는 차량으로 둘러 볼 수 있다. [출처 :Daum백과을 중심으로 재편집]

 

왕궁 출입 정문인 응오 몬(정오문)의 웅장한 모습.. 

오늘은 ‘평화의 도시’라는 후에로 이동을 하는 날로 이번에는 기차로 이동을 하기로 하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09:00시 로비에 모여 기차역으로 이동을 하였다. 기차는 계획보다 5분 늦은 09:50분에 도착하였다. 우리 팀은 2층 침대칸으로 2층에 올라가서 출발을 기다리는데 도통 움직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선로가 교차되기 때문에 반대편에서 오는 기차가 지나가야 움직이는 것 같다. 침대칸은 한 칸에 4명이 들어갈 수 있고 후에까지는 약 3시간이 소요되어 모처럼 함께 여행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다낭에서 후에까지는 침대열차로 이동을 합니다..

 

이번 여행 길잡이인 타루님은 내 딸과 동갑으로 내년 봄에 결혼을 한다고 하는데 직장생활을 하다가 3년만에 그만두고 여행을 하다가 길잡이가 되었는데 이제 경력은 2년이지만, 몽골, 남인도에 많은 애착이 있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는 여성 4명, 남성 6명이 참석했는데 모두 혼자 참여한 여행 스타일은 다르지만 나름대로 배낭여행을 즐기는 사람들 인것 같다. 여성 중 진주에서 선생을 하다가 명퇴한 분은 1996년 유럽 한달 여행을 시작으로 방학 때마다 여행을 하고 ‘인도로 가는 길’을 따라 7번 여행을 한 여행고수였다. 또 다른 여성 한 분 역시 ‘인도로 가는 길’을 따라 아프리카 종주, 북아프리카, 북인도, 키라코롬, 남인도 등 10번 갔다고 한다.

 

남성 중 한명은 전직 은행지점장 출신으로 통장의 돈은 자기 돈이 아니고 써야만 자기 돈이라는 사람으로 역시 ‘인도로 가는 길’을 통해 아프리카, 남미, 인도~네팔 등을 다녀왔고 개인적으로 유럽을 네번 다녀 온 것을 포함하여 42개국을 여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팀의 최고령자로 계룡시에서 인삼농사를 짓고 있는 분도 젊어서부터 시간이 나면 여행을 했다고 하고 베트남만 세 번째라고 한다. 퇴직하고 부동산 하는 사람, 군 제대하고 복학 전인 학생, 교원 발령대기 중인 여성 등 다양한 사람들과 이번 여행을 하는데 거의 개별 행동을 하여 최고령자, 은행지점장 출신과 나 세 사람만 같이 다닐 때가 많다.

기차는 약 3시간 30분 후인 13:20분 후에에 도착하여 호텔로 이동하였다. 차 한대당 5만동, 총15만동으로 흥정하여 숙소로 이동을 하였으며, 이번 숙소는 로맨스호텔로 4성급으로 옥외 수영장이 있다고 한다.

 

후에 숙소에서 나와 강을 따라 걸어갑니다..

 

숙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왕궁을 보러갔다. 왕궁은 입장료가 15만동(7500원)으로 조금 비싼 편이었다. 왕궁은 1805년 쟈롱 황제의 명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하여 1832년 민망(Minh Mang)황제 시기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왕궁은 중국 자금성을 모델로 건설 되었는데 그 규모가 웅장한 것에 놀랐으며, 당시 베트남의 국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조선은 이 당시 정조 사후 순조가 11세에 즉위하여 세도정치가 시작되었으며, 이후 약 60년간 세도정치가 지속되고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으니 베트남보다 훨씬 못한 나라였다는 생각이 들았다.

다리를 건너 국기가 있는 곳이 후에 왕궁입니다..

 

저 문을 지나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9기의 대포 중 사계절을 상징하는 동쪽의 4개의 대포

【아홉 기의 대포】

왕궁 바로 안쪽에 위치한 아홉 기의 대포는 왕궁과 왕국의 평화와 안녕을 상징한다. 1804년 쟈롱 황제의 명에 의해 주조된 이 대포들은 각각 길이 5m, 포구 너비 23cm, 무게는 10톤에 달한다. 동쪽의 4개는 사계절을, 서쪽의 5개는 금속, 나무, 물, 불, 토지를 상징하며 각각의 포에는 제작된 경위가 새겨져 있다. [출처 : Daum백과]

 

왕의 기사(King’s Knight)로 불리는 37m의 거대한 국기 게양대..

 

【왕의 기사라고 불리는 국기 게양대】

응오 몬 남쪽에 위치하는 37m의 거대한 국기 게양대로 왕의 기사(King’s Knight)로 불리기도 한다. 1809년에 만들어졌고, 1831년 거대한 태풍이 후에를 파괴한 후 다시 만들어졌으나 1947년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1969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래층부터 차례로 자연의 섭리, 인간 세계, 천국을 상징한다. [출처 : Daum백과]

 

동쪽 망루(?)..

 

왕궁의 정문인 응오 몬으로 정오 때 태양이 문 앞에 떠있어 '정오 문'이라고도 한다..

 

【응오 몬】

1833년 민망황제 시기에 완성된 왕궁의 정문으로 높이 4.2m, 너비 3.7m이다. 다섯 개의 문 가운데 노란색 문은 왕, 그 옆 양쪽 문은 대신, 외곽 쪽의 두 문은 일반 신하가 통행했다고 한다. 태양이 정상에 오는 남문을 정문으로 삼았기 때문에 영어로 정오(noon)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문 위의 누각인 푸 반 라우(Phu Van Lau)는 왕이 과거에 급제한 자들에게 상을 하사하던 장소였다. 지붕은 봉황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바오 다이(Bao Dai)가 1945년 이곳에서 종말을 고했다. [Daum백과]

 

응오 몬 앞쪽에 있는 태화전..

 


응오 몬 앞에서..

 

중국 자금성을 모델로 1803년 완공된 태화전으로 황제의 공식 접견장소..

 

【태화전】

중국 자금성을 모델로 1803년 완공되었으며 응오 몬을 따라 들어가면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건물이다. 황제의 즉위식이나 국빈 영접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총 면적은 1,300제곱km이며 중앙당의 길이는 43.3m, 높이는 30.3m에 달한다. 태화전은 두 개의 당으로 나눠지는데 후방 중앙으로 황제가 앉았던 옥좌가 있다. [Daum백과]

 

 

왕궁이 엄청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개의 왕실 세발솥  중의 하나..     

 

【세상 만물을 상징하는 9개의 왕실 세발솥】

1835~1837년에 주조된 높이 2m, 지름 1m의 청동 세발솥으로서 각각의 무게는 1,600~2,600kg이며 가장 무거운 것은 2,755kg에 달한다. 각 세발솥은 4천년 이상 된 중국의 전통을 따라 인, 장, 영, 의, 순, 선, 우, 현 등 세상 만물을 가리키는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모든 세발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며 크기가 클수록 왕권이 안정되었던 것으로 간주된다.[출처 : Daum백과]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는 공간..

 

새로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복도도 엄청납니다..

 

후원의 팔각정..

 

정원을 관리하고 있더군요..

 

 

원 같네요..

 

아주 운치가 있습니다..

 

 

 

 

 

 

바깥도 후에성의 일부인 것 같습니다..같습니다..

 

고목 같은 곳에 난이 피어 있고.. 

 

화려한 장식의  궁궐 출입문 중의 하나..

 

 

태화전 앞에 많은 관광객들이 설명을 듣고 있네요..

 

왕궁 바깥으로 나와서 본 국기게양대..

 

응왕궁의 정문이 응오 몬..

 

 

왕궁을 구경한 후 바깥으로 나오니 해가 저물어가면서 낙조가 왕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다시 걸어서 숙소로 도착한 후 저녁식사는 모처럼 전체인원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였는데 후에에서 알아주는 베트남 전통음식으로 다섯 가지 세트메뉴(반배오, 넴루이, 반꽈이,냄랜(짜조), 반꾸엉)가 나오는 식당에서 먹었는데 가격은 1인당 13.5만동으로 맛이 있었다.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거리 공연도 하는 등 거리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로 북적거렸으며, 한국인 단체여행객들도 상당히 많이 보였다. 아마 일본여행이 막힘에 따라 동남이로 여행객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야간에 길을 걷다보면 호객행위를 하는 현지인들이 한국인 남자들안 보면 저속한 언어와 몸짓으로 섹스를 권유하고 있어 상당히 불편하였다. 이 모든 것이 이전에 동남아 여행을 다녀 간 한국인들이 심어 놓은 이미지라는 점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일본인들이 섹스관광을 한다고 비난했었는데 이제 우리 한국인들이 현지인들에게 그와 같이 비난을 받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하였다. 한국인들이 더 이상 sex animal이란 소리를 듣지 않기를 희망해보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왕궁을 나오니 석양빛이 왕궁을 덮어가고 있네요.. 

 

조금 후에 멋진 낙조를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일행이 있어 이것으로 만족하고 왕궁을 떠나 숙소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