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22.5.21/토요일)】
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북악산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한다. 산경의 흐름을 보면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자락인 북한산 보현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터널 위의 보토현(補土峴)으로 이어진다. 이어 표고 328m의 봉우리와 팔각정 휴게소 앞 능선을 따라 북악 뒤편에 구준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서울의 부주산(副主山)인 응봉(鷹峰)으로 이어져 경복궁의 배산인 북악에 다다른다.
북악산에서 청계천이 발원하는데, 2005년 11월종로구청에서 조사한 청계천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 고개에 있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이다. 또한 북악산 동쪽 촛대바위 부근의 해발 245m 지점(동경 126°58′41.8″ 북위 37°35′34.4″)이 청계천의 최장 발원지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인왕산·북한산·낙산·남산 등과 함께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장벽의 구실을 한다.
서울 성곽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이 성은 1395년(태조 4)에 궁궐이 낙성된 뒤 같은 해 1월 기공식과 함께 착공되었다. 조선시대 북악산 기슭은 왕궁 및 관청과 가깝고, 또 경치가 좋았던 관계로 왕족과 사대부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별서가 많았다. 그리고 많은 문인과 화가들은 이 일대의 빼어난 경치를 그림과 시문으로 남겼다.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는 촛대바위가 있는데, 일제 때 이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 정하였다. 현재는 쇠말뚝을 제거한 부분이 콘크리트 기중으로 마감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2007년 북악산 일대를 사적 및 명승지 제10호로 지정하였다가 2009년 명승 제67호로 지정하였다. 명승지정 명칭은 “서울 백악산 일원”으로 정하였다. 즉 일제 강점기 이후 불린 북악산이란 이름 대신에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불린 백악산으로 회복시키기로 한 것이다.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鞍部 : 봉우리 사이의 우묵한 곳)에는 서울 4 소문(四小門)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 : 일명 자하문)이 남아 있다. 창의문에서 정릉의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는 창의문, 팔각정, 풀장 등을 연결하는 관광도로로 울창한 숲과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조망이 좋은 경승지이다. 북악산의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공원(三淸公園)이 있고, 동쪽에는 숙정문(肅靖門)이 있다. 숙정문은 조선의 도성 4대 문 가운데 정북에 위치한 문이며 속칭 북문(北門)이다. 이 문은 1396년(태조 5) 백악산의 동쪽 고갯마루에 세웠는데, 도성 북쪽 방향을 출입할 때 이용하였다.
1968년 1·21사태 이후 북악산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것이, 서울성곽 백악산(북악산) 일원 전면 개방 계획에 따라 일차적으로 2006년 4월 1일 숙정문과 함께 삼청터널 북쪽 홍련사(紅蓮寺)에서 도성(서울 성곽)을 따라 촛대바위까지 약 1.1㎞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2020년 11월 1일부터 청와대 뒤편 북악산 북측면 구간이 개방되었다. 북측면 개방으로 서대문구 안산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중단 없이 산행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 다음 백과)
이 교회가 100년이 넘은 교회더군요..
칠궁입니다..
【칠궁】
칠궁은 조선의 왕을 낳은 어머니이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의 신위를 모신 장소다. 조선의 왕과 왕비는 종묘에 신주를 모시고 왕을 낳은 후궁 신주는 따로 모시는 공간을 만들어 왕이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며 효를 다했다. 1908년에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던 다른 후궁의 사당들을 이곳으로 합치면서 모두 7개가 모였다고 하여 칠궁이라 이름 붙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희빈의 신주와 뒤주에 갇혀 죽었던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 씨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궁궐의 다른 전각들처럼 규모가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검소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차분해지는 장소이다.(출처 : 투어코리아 - No.1 여행·축제 뉴스)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산행코스 : 칠궁 ~ 백악정 ~ 만세동방 ~ 청운대 쉼터 ~ 청운대 ~ 백악산 정상 ~ 곡장 ~ 숙정문 ~ 촛대바위 쉼터 ~ 칠궁
*당초 숙정문에서 법흥사터를 지나 삼청 안내소로 진행하려 했으나 청와대 방문시간이 맞지 않아 현 코스로 변경 추진
5 4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백악정과 청와대 전망대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아직까지 이 길은 한적합니다..
철조망이 보이고..
칠궁안내소에서 청와대 전망대까지 810m 거리입니다..
북악산 새로운 코스가 개방됨에 따라 연세가 드신 분들도 많이 보이는데 칠궁코스가 춘추관코스보다 경사가 다소 급해 힘이 든다고 합니다..
산 7부 능선쯤에 청와대 전망대가 보이네요..
철조망이 쳐진 안쪽에 꽃들이 피어 있는 것이 조금은 생경합니다..
영산홍과 찔레꽃도 피어 있고..
이곳이 칠궁과 춘추관 코스가 만나는 백악정입니다..
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백악정..
멋진 소나무들이 많이 있으며, 와송도 보이네요..
군사기지 같네요..
청와대 전망대로 올라갑니다..
청와대 전망대에서 본모습으로 경복궁과 청와대가 보입니다..
청와대 전망대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습니다..
만세동방 약수터로 새들이 물을 먹더군요..
멧돼지 머리 형상
청운대 쉼터..
백악산에서 제일 경치가 좋은 청운대입니다..
멋진 소나무들이 있는 청운대..
보현봉과 형제봉이 보이고..
북악산 정상 인증..
【북악산(北岳山)】
북악산(342m)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하며,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북악은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북악은 남산에 대칭하여 칭했으며,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북악산은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자락인 북한산 보현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터널 위의 보토현(補土峴)으로 이어진다. 북악산은 1395년(태조 5) 시축 한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의 기점으로서 북악산에서 낙산·남산·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쌓았다. 북악산에서 청계천이 발원하는데, 2005년 11월 종로구청에서 조사한 청계천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 고개에 있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이다. [출처 : Daum백과사전을 중심으로 재편집]
북악산 정상에서 본 청운대..
곡장 가는 외곡길은 물론 멀리 북한산 보현봉(좌측), 형제봉이 보입니다..
북악산 가는 길에 있는 68년 1.21 사태 당시 무장공비가 쏜 총알 자국..
곡장과 멀리 북한산 능선이 그림 같습니다/ 당겨본 보현봉..
곡장에서 북악산 정상가는 길..
북한산 능선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고..
팔각정이 보이고 / 팔각정 가는 길도 52년 만인 2020년에 개방되고..
성곽길이 예쁩니다..
성곽 안쪽으로 멋진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촛대바위로 쇠말뚝을 제거한 부분이 콘크리트 기중으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소나무 군락지..
삼청각..
가을인가 봐..
숙정문..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쪽 문으로 1395년(태조 4)에 건립되었으며 당시에는 숙청문(肅淸門)이라고 하였다. 이문은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창의문(彰義門, 일명 紫霞門)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출처 : 다음 백과사전) 그 결과 현재 이곳 소나무 숲길이 아주 운치 있게 되어 이곳의 풍경이 북악산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다.
숙정문에서 촛대바위 쉼터로 진행합니다(이 길도 이번에 개방된 길입니다)..
길이 깨끗하게 잘 정비되었더군요..
만세동방으로 진행합니다..
청와대와 경복궁 너머 남산이 우뚝 서 있고..
청와대 방문 시간이 임박하여 거리가 가까운 효자동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칠궁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하고 청와대 본관으로 이동합니다..
청와대 본관 앞입니다..
다음은 청와대 탐방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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