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셀프등산회 제960차 산행은 서울둘레길 11~12코스인 관악산 ~ 호암산 코스를 추진하였다. 비가 내린 다음 날 가을 날씨 속에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명품 둘레길인 관악산 ~ 호암산 코스를 즐겼다. 관악산은 1년에 몇 번씩 산행을 하는 익숙한 곳이지만 둘레길은 생소했지만 관악산 자락을 따라 숲길로 되어 있어 걷기 좋았으며,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낙성대가 있어 역사공부를 할 수 있었다. 호암산 둘레길은 삼성산 천주교 성지와 호랑이 기세를 산세를 누르기 위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호압사를 비롯해 잣나무 숲길이 1km나 이어져 있어 걷기가 좋았다. 산행 총 소요시간은 약 6시간(휴식/식사시간 1시간 포함)이 소요되었으며, 오늘 걸은 총걸음수는 31,500보였다.
관악산 둘레길 조망처에서 본모습으로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이 멀리 보이고 남산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서울둘레길 11코스(관악산 코스)는 민속신앙과 불교가 만나는 길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으며 자연경관이 매우 훌륭하고 곳곳의 역사문화유적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어 볼거리 또한 매우 풍부하다. 관악산에는 등반을 위한 산행 코스가 많지만 서울둘레길은 관악산 자락을 따라서 걷는 코스로 대부분의 구간이 숲길로 되어 있어 비교적 난이도가 있는 편이지만 서울의 산림자연환경을 즐기며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자연을 만나는 길이다.
11코스 : 사당역 4번출구 ~ 관음사 ~ 무당골 ~ 전망대 ~ 낙성대공원 ~ 서울대 정문 ~ 관악산역 1번 출구 약 5.7Km / 약 2시간 30분
오늘 걸었던 관악산 ~ 호암산 둘레길 코스..
남현동 유아동네숲터를 지나갑니다..
돌탑들이 보이고..
어젯밤에 비가 내린 후라 경치가 선명하게 보이고/ 남산이 선명하고, 도봉산에 운해가 멋지게 오르고 있네요..
여기서 통상 연주대로 진행을 하는데 오늘은 둘레길로 갑니다..
그런데 이곳 아래에 있는 관음사에서 인증을 해야 되는데 그냥 약 1km 정도 지나가서 다시 되돌아옵니다..
관음사 일주문에서 100m 정도 내려 가면 11코스 출발지점의 스탬프가 있습니다..
배트민터 코트장을 지나고..
조망처에서 잠시 조망을 합니다..
조망처에서 본 모습으로 아파트 앞쪽은 연립 또는 개인주택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조망처가 나와 잠시 조망을 하고 쉬어 갑니다..
잠깐 사이에 도봉산에 걸쳐 있던 운해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나무 트리 전망대인데 나무를 그대로 살려 만든 것으로 둘레길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낙성대에 도착하여 구경하고 갑니다/ 1973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강감찬 생가 일대를 성역화하여 길이 보전하고자 조성했다..
【낙성대落星垈】
강감찬의 출생지로서, 그가 출생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는 이름으로 전하여오고 있다. 강감찬의 애국충정을 기리고자 서울시에서는 1973년에서 1974년까지 2년간에 걸쳐서 이곳을 정화하면서 사괴석(四塊石)으로 409m의 담장을 쌓고 사당 안국사(安國祠)를 지었는데, 이것이 곧 낙성대이다. 안국사는 외삼문인 맞배지붕의 안국문(安國門)을 거쳐 내삼문 안에 건축되었는데, 사당 안에는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공원의 총면적은 3만 1350㎡이나 성역화된 곳은 1만 1550㎡이며, 안국사의 면적은 237.6㎡이다. 이곳에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삼층석탑이 있으며, 탑에는 ‘姜邯贊落星垈(강감찬낙성대)’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탑은 원래 강감찬이 태어난 봉천동 218번지 집터에 있던 것을 1973∼1974년 정화사업에 따라 현 위치로 옮겨왔으며, 그 터에는 따로 유허비를 세워 사적지임을 표시하였다. 탑의 양식은 단층기단 위의 삼층탑으로, 노반 이상의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졌다. 기단석은 각 면에 한 장의 면석이 둘러 면마다 우주(隅柱: 모서리기둥)가 새겨져 있다. 한 장의 돌로 된 갑석 한가운데에 옥신받침이 있다. 탑신의 옥신석에는 각기 우주가 모각되었고, 옥개석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며, 층급(層級)은 2단으로 매우 간결하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석탑의 대석을 비틀어 어기고 탑의 위층을 빼어 한 층을 낮추어 정기를 줄이고 탑 안에 있던 보물을 훔쳐갔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들은 탑만이 아니라 탑 주위에 있던 병풍바위와 선돌바위도 모두 부수고, 탑의 동쪽 구릉을 파내어 땅의 혈맥을 끊기도 하였다고 전하여온다.
고려시대에 건립된 삼층석탑으로 탑에는 ‘姜邯贊落星垈(강감찬낙성대)’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姜邯贊落星垈(강감찬낙성대)’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네요..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멋진 와송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안국사 안에는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강감찬 장군의 영정..
강감찬 전시관과 교육관이 있습니다..
【고려를 지킨 명장, 강감찬 姜邯贊】
우리 역사에서 '3대 대첩(大捷)'을 꼽는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을지문덕의 살수대첩과 이순신의 한산대첩(閑山大捷), 그리고 강감찬(姜邯贊)의 귀주대첩(龜州大捷)을 든다. 그중 고려 시대 거란의 수십만 대군을 맞아 귀주에서 섬멸한 귀주대첩을 이끈 장군이 바로 강감찬이다. 강감찬은 948년(정종 3)에 태어났다. 그의 탄생과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한 사신(使臣)이 밤중에 시흥군으로 들어오는데 큰 별이 어떤 집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가 사람을 보내 찾아보니 마침 그 집 부인이 사내를 낳았다. 그가 바로 강감찬이었다고 한다.
강감찬의 어릴 때 이름은 은천(殷川)이다. 강감찬의 아버지는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할 때 공을 세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이 된 강궁진(姜弓珍)이다. 《고려사》에는 강감찬이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신통한 지략이 많았다고 전한다.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사실 때문에 강감찬을 무인으로 알기 쉽지만, 사실 강감찬은 문관이었다. 983년(성종 2) 진사시에 합격하고, 복시(覆試)에서 갑과에 장원한 뒤 관직에 오른 후 예부시랑·국자제주(國子祭酒)·한림학사·승지·중추원사·이부상서를 역임했다.
거란의 1차 침입은 993년(성종 12)에 소손녕이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와 서경을 위협하였으나 서희의 담판으로 물리치고 압록강 동쪽에서 여진족을 몰아내고 강동 6주에 성을 구축하였다. 1010년(현종 1), 거란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두 번째로 고려를 침략했다. 우여곡절 끝에 등극한 현종은 전쟁에 미처 대비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고려군은 속수무책으로 패전을 거듭했다. 이때 강감찬은 장수로 나서지는 않았으나 왕에게 끝까지 항복하지 말 것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왕이 나주로 피신한 사이 다행히 양규(楊規)가 곽주(郭州) 등에서 거란을 크게 무찌르며 선전하여 거란을 물리쳤다.
그러나 거란은 1018년(현종 9)에 또다시 고려를 침략했다. 이때 강감찬이 나섰다. 강감찬은 흥화진(興化鎭)과 귀주(龜州)에서 뛰어난 전략과 기지로 거란군을 대파하고 승리했다. 고려는 10만의 거란을 물리친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후 대외적으로 위상을 인정받아 거란과 화친을 맺었다. 그뿐만 아니라 여진이나 말갈 등의 변방 세력과도 균형을 유지하게 되었다.
홍살문을 지나면 외삼문이 나오고..
강감찬 장군 동상을 끝으로 낙성대를 벗어납니다..
서울대학교 동물병원 옆으로 진행합니다..
화살나무가 곱게 물들었네요..
관악산 공원에 도착하여 11코스를 마무리합니다..
담쟁이 덩굴도 곱게 물들었고..
12코스 시작합니다..
관악산공원 입구(관악산역 1번 출구) ~ 관악산 계곡 캠핑숲 ~ 윤길묘 ~ 호압사 ~ 호암산 ~ 한우물 ~ 호암산 폭포 ~ 호암산숲길공원 ~ 석수역 2번 출구 7.3km 약 3시간 30분
어제 밤에 비가 내려 물레방아가 힘차게 돌고 있습니다..
호압사로 진행합니다..
호압사까지는 관악산 도란도란 걷는 길과 겹칩니다..
장승들이 길게 도열하여 산객들을 맞이해 줍니다..
나무계단길이 잘 조성되어 있고..
서울대와 관악산 정상이 한눈에 보이고..
배터민트 센터 앞에 막걸리를 팔고 있고..
12코스 5.3km 남았습니다..
개인사찰 같은 보덕사를 잠시 들러 보는데 마당이 상당히 넓습니다..
여기도 트리 전망대가 있고..
삼선동 유아 자연배움터를 지나갑니다..
천주교 삼성산 성지로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형을 받고 순교한 앵베르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가 명동 성당 지하묘소로 모셔지기 전까지 묻혀있던 묫자리이다.
【삼성산성지】
삼성산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군문효수의 형을 받고 순교한 조선 제2대 교구장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범 주교와 성모방 베드로 나 신부, 성 샤스탕 야고보 정 신부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1839년에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세 성직자는 교우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관가로 나아가 자수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새남터에서 군문효수라는 특별한 절차로 1839년 9월 21일 사형을 당했다고 한다. 세 분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월례미사가 이분들의 순교일인 21일 (9월 21일)로, 주일미사는 부활 제2주일부터 그리스도 왕 대축 일까지 봉헌되고 있다.(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호압사에서 재배하는 배추 같은데 잘 크고 있습니다..
소나무와 잣나무 구별 법..
1407년(태종 7) 왕명으로 무학대사가 창건한 호압사에 도착합니다..
호압사 연꽃이 피려고 하고 있으며, 약사전 앞에 있는 8각 9층 석탑(높이 15 m)은 2008년에 완공된 것이다
【호압사(서울)】 호압사는 조계종 본산인 조계사의 말사로 사찰 이름 '호압'은호랑이를 누른다는 뜻이다.
조선 개국과 더불어 한양에 궁궐이 건립될 때 풍수적으로 가장 위협이 된 것은 관악산의 불(火) 기운과 삼성산(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이었다. 그래서 왕조에서는 이를 제압하기 위해 숭례문(남대문)에는 편액의 숭(崇)자 위의 뫼산(山) 자를 불꽃이 타오르는 불화(火)의 형상으로 표현을 했다. 또한 삼성산의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자리에 절을 창건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호압사이다. 호압사는 풍수지리설과 비보사찰설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산의 모양을 호랑이로 본 것이며, 이를 누르기 위해 절을 창건했다는 이야기이다.(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일부 발췌)
호압사 본당인 약사전..
호압사에는 대웅전이 없고 약사전(藥師殿)이 본당이다. 약사전의 주불인 약사여래상은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8호 '석약사불좌상(石藥師佛坐像)'이다. 원래는 돌을 깎아 만든 불상이지만 개금(금칠)하여 온통 금빛이라 모르고 보면 석제인 줄 절대 알 수 없다. 대략 조선 전기에 만들었다고 추정한다.(출처 ; 나무위키)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 두그루가 있고..
호랑이 형상의 조형물..
잣나무 산림욕장이 1km 정도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데크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솔바람이 부는 길'이라는 의미의 무장애길인 호암늘솔길은 나무데크로 되어 있고 호압사에서부터 호암산폭포까지 총 1km 정도 이어진다.
2011년 산사태로 가파르게 변한 곳을 손질하여 만든 인공폭포로 높이가 75m에 이르러 서울에서 가장 큰 폭포이다. 폭포수는 산사태로 노출된 자연암반에서 나오는 물이나 지금은 가동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약수터와 쉼터가 있고..
호암산 숲길공원에 도착하여 12코스 스템프를 찍습니다..
인근 식당에서 김치찌개(20,000원)와 먹걸리 한잔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집니다..
석수역 2번 출구에 있는 13코스 출발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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